“넘어지더라고 그냥은 일어서지마라, 그 주변의 흙이라도 움켜쥐고 가져와라.”(転んでもただでは起きるな。そこらへんの土でもつかんで来い)라고 하는 명언을 남긴 타이완 출신의 일본 기업가가 있다.

위의 문구가 다소 길어 앞의 구절만을 제목으로 한 것이 미스터 누들로 불리는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의 전기다.

조숙한 실업가로 인생에 갖은 신산(辛酸)을 거듭하다가 48세에 세계의 식생활을 바꾼 발명으로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96세로 타계할 때까지 왕성하게 현역으로 활동한 안도 모모후쿠는 2018년 가을 NHK의 아사도라(朝ドラ: 아침드라마) 만푸쿠(まんぷく)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안도 모모후쿠는 일본통치하의 타이완 쟈이(嘉義 : 행정구역 개편으로 그가 태어난 곳은 현재의 타이난시다 )에서 1910년에 태어났으며 원래이름은 우바이푸(呉百福)다. 원래는 타이완이지만 후에 일본에 귀화한 사업가로 닛신식품(日清食品にっしんしょくひん)의 창업자로 1958년에 인스턴트 라면, 1971년에 컵라면을 발명해 전 세계에 보급해 명성을 떨쳤다.

타이완에서 태어난 안도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형 둘과 여동생과 함께 타이난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는 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했다. 조부모의 장사를 보고 흥미롭게 여긴 그는 22살에 자산가였던 부모가 물려준 돈으로 일본제 메리야스를 판매하는 회사를 설립한다. 그러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아예 일본으로 건너가 청년사업가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환등기, 막사주택제조, 군용기 엔진부품 군수공장도 경영했다. 이 때 국가로부터 지급된 물자를 빼돌려 팔았다는 누명을 쓰고 헌병대에 수속돼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한 내장질환으로 2차례 개복수술도 받았다. 삼등시민이며 외국인인 타이완 출신이란 신분 때문에 구속된 면도 있었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효고의 사업체들도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이 끝나자 1948년에는 GHQ에 탈세혐의로 체포돼 스가모(巣鴨)구치소에 수감됐다. 예전에 사업을 하면서 고용한 청년에게 현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소득 원천 징수를 안했다는 이유로 납세의무위반으로 몰린 것이다.

전쟁 전후의 두 차례 구속은 모두 누명이 벗겨져 풀려났지만 40대 중반에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1957년 지인의 의뢰로 이사장으로 근무했던 신용조합이 파탄나 오사카부 이케다시의 임차주택을 제외한 전 재산을 잃었다.

안도는 그러나 “잃은 것은 재산일 뿐 경험은 피와 살이 돼 몸에 붙었다”(失ったのは財産だけ。経験は血や肉となって身についた)면서 다시 분발한다.

 

그러면서 자택 뒷 마당에 간소한 오두막을 짓고 새로운 상품 개발에 도전한다. 인스턴트 라면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전구를 매달고 매일 자전거로 양념과 조리 기구를 운반했다.
밀가루, 녹말 참마 치킨 시금치 탈지분유 등 온갖 식재료로 인스턴트 라면연구를 한 것이다.

그가 인스턴트 라면에 착안하게 된 계기는 전후의 식량난으로 오사카 역 근처 암시장의 포장마차 풍경이었다. 안도 모모후쿠는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한 그릇의 라면을 먹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것을 보고는 “역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먹지 않으면 옷이고 집이고 예술, 문화 따위는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일본인은 면을 특히 좋아해 포장마차 앞에 늘어선 긴 줄에 큰 수요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확신했다.

또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간단하고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보존성이 있는 라면을 시도하기로 했다. 하루 평균 4시간을 자며 1년간 꾸준히 연구한 그에게 최대의 장애물은 면의 장기보존에 필요한 건조였다. 연구를 거듭해 ‘면을 기름에 튀기면 수분이 증발되고 이때 수분이 빠져나온 면의 미세한 구멍은 나중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다시 수분을 흡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순간유열건조법(瞬間油熱乾燥法)이라 한다.

유열건조법은 아내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덴푸라(天ぷら)에서도 힌트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안도 모모후쿠가 자란 타이난의 이몐(意麺)이 인스턴트 라면의 뿌리라는 설도 있다. 이몐(意麺)은 적당히 뜨거운 물에 살짝 면을 데친 뒤 건져 올리면 며칠간 보존이 가능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안도는 1958년 치킨라멘을 발매했다. 국물용 닭 뼈 토리가라(鶏ガラ)와 형신료를 삶아 만든 스프로 넣고 삶아서 먹을 수 있도록 한 인스턴트라면은 마법의 라면(魔法のラーメン이라 불리며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타이완 출신으로 설움을 받으며 재산도 날리고 48살에 시작한 사업이 빛을 보게 된 것인데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너무 늦다고 하는 것은 없다. 이 발명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48년이 필요했다.”(人生に遅すぎることはない。この発明にたどりつくために、私には48年の歳月が必要だった) 때마침 치킨 라면 발매당시는 일본에서 TV가 보급되는 시점이어서 광고의 혜택도 누렸다.

닛신식품은 창업 5년만에 연간매출 43억엔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안도 모모후쿠는 61세이던 해이며 치킨라면 발매 13년 후인 1971년에 세계를 놀라게 한 컵라면(カップヌードル)을 발명한다. 컵라면의 힌트는 치킨 라면을 미국시장에 팔기 위해 현지시찰을 했던 1966년에 찾아왔다. 미국 바이어에게 치킨 라면 제품 소개를 해야 하는데 사발과 젓가락이 없어 시식을 할 수 가 없었다. 이 때 한 수퍼의 구매담당자가 면을 두 개로 쪼개고 종이컵에 담고는 뜨거운 물을 부워 익힌 뒤 포크로 시식을 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안도는 식습관의 벽을 넘는 것이 세계진출의 열쇠라는 것을 직감하고 5년 동안 연구해 컵라면을 발표했다. 하지만 초기에는 매상이 신통치 않았다. 기존의 봉지형 인스턴트 라면보다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끈질기게 영업은 시도했지만 매상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기회가 아주 우연하게 찾아왔다.

1972년 2월 일본 학생 극좌파 조직인 연합적군(連合赤軍)의 아사마 산장(浅間山荘)사건이 발생했다. 극좌파 학생들이 산장 여주인을 인질로 10일간 경찰기동대원과 대치하며 농성을 벌인 아사마 산장인질극은 일본열도가 TV 중계로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본 희대의 사건으로 시청률이 89.9%를 기록했다. 이 때 도시락도 얼어붙는 혹한의 날씨에 경찰기동대원들에게 지급된 것이 닛신식품의 컵라면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을 기동대원들이 식사로 먹는 장면이 TV에 반복적으로 비쳐졌다. 이 바람에 닛신의 컵라면은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컵라면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세계 각국의 메이커들도 컵라면 시장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이로서 봉지라면과 컵라면을 포함한 ‘인스턴트라면’이란 사실상 새로운 음식장르가 만들어졌다. 안도 모모후쿠는 이때 업계내의 경쟁과 절차탁마가 있어야 기업이 성장한다면서 특허를 독점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허가를 내 줬다.

컵라면이 성공하고 일본에서 쌀이 남아돌자 정부는 그에게 컵라이스 개발을 의뢰한다. 상품 개발은 성공적이었고 시식회의 정치인들 모두 극찬했지만 사업은 30억엔의 손해로 끝난다. 컵라이스 하나 가격이 라면 10개라 시장성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실패하는 함정은 칭찬이 한가운데 있다”(落とし穴は、賛辞の中にある)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81년 사장자리를 잠시 장남에게 주고 회장으로 물러난 안도는 ‘일본인은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4년간 일본각지를 돌며 향토요리 시식여행과 함께 라면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한 중국, 중앙아시아 이태리여행도 간다.

그리고 1987년에는 식문화 탐구를 위해 누들 로드 조사단(麺ロード調査団)을 구성해 식문화 연구가인 오쿠무라 아야오(奥村彪生)와 함께 상하이, 난징, 양저우, 광저우, 샤먼, 베이징, 청두, 시안 란저우, 우루무치 등 중국전역을 돌며 300가지가 넘는 면을 시식하는 한편, 문화인류학자 이시게 나오미치(石毛直道)로 하여금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각지에 전래된 면의 역사 연구를 의뢰해 계보도를 완성하도록 한다.

회장실 뒤에 조리장(調理場)을 설치하고 몸소 상품개발에 나서며 젊은 시절 인스턴트 라면 개발 오두막의 열정을 이어간 안도의 도전은 90대에도 계속된다. 91세가 되던 2001년 그는 우주식품라면의 개발을 선언하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2005년 7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소이치野口聡一)가 탑승한 미국의 디스커버리 스페이스셔틀이 발사돼 우주정거장에서 그가 우주용라면을 먹는 장면이 중계되기에 이른다.

노구치가 우주에서 먹은 닛신의 라면의 명칭은 스페이스 람(スペース・ラム)으로 무중력 상태에서 스프가 걸쭉해 튀지 않도록 공을 들인 제품으로 간장(しょうゆ), 카레, 돈코츠(とんこつ), 된장(みそ)라면의 4종류였다.

라면을 우주공간에까지 가져간다는 꿈을 이룬 안도 모모후쿠는 2007년 1월 닛신식품의 초출식(初出式 신년의 첫 제품 생산 행사)연두 소감을 발표한 다음날 96세로 세상을 떠난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그의 부음을 접하고 세계 식문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를 기리기 위해 ‘미스터 누들에 감사’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미디어원=박상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