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 받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끊임없는 반일감정의 표출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 식민통치 시절의 평양, 사진출처:@FP

지배받는 자의 특징
(미디어원=신달파 칼럼니스트) 일본인들은 국제무대에서 존중받는다. 이번에 아시아컵 축구경기에 참가했던 일본 선수들이 우승은 놓쳤으나, 락커룸을 먼지 하나 없이 청소를 해놓고 감으로써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의 깔끔한 모습들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친일파, 과거의 잔악상, 위안부, 착취…등등의 흥분된 댓글들이 바로 올라 온다.

본문을 쓴 사람은 한국에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이 보여주는 節度있는 몸가짐에 대해서 배우자고 말하고 있는데, 뚱딴지 같이 일제군국주의 시절의 이야기와 저들 국민성을 비난하면서 이를 갈며 원한을 되씹는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전쟁은 이웃 인접국과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무력이 强盛한 나라들은 정복의 야욕으로 먼나라까지 遠征을 했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에 부단히 시달려 왔고, 그 참혹상은 되뇌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엄청난 숫자의 우리 조상들이 살육되었으며, 저들의 나라에 끌려가 노예로 살다가 죽어갔다. 우리가 인접국 영토를 무력으로 뭉개버리고, 저들 백성들을 붙들어다 노예로 삼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불행한 진실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이다. 준비하는 자가 강해질 수 있으며, 강한 자는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 법이며, 강해지면 약자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는 법이다.

恨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과거 우리를 철저히 핍박한 대상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요구하는데, 저들이 딴청을 하고 있다면, 제발 우리에게 사죄를 좀 해 주오, 안 그러면 당신들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萬邦에 떠들고 다닐거야, 그러니 이제 제발 사죄 좀 해 달라구, 흔한 사죄말고 진정성 있는 걸루…하는 애걸의 행태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

사죄요구의 行程으로 반세기가 흘렀는데 국가지도자까지 아직 그 타령이다. 자라는 10대 아동들까지도 <소녀상> 앞에 가서 상처를 되씹게 하고, 왜넘들은 나쁜 넘들이라는 嫌日思想만 刻印시키려고 한다.

그럴 시간에 저들에게 두 번 당하지 않기 위한 武力强盛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게 마땅치 않은가. 위안부 할머니들도 후손들에게 <울지 말고 힘을 길러서 저들을 언젠가는 혼내다오, 힘을 기르지 않으면 저넘들이 언제 또 올지 몰라> 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말이다. 국가수반이 속심으로는 피눈물이 나더라도 김복동할머니 영전에 넙죽 절을 하는 엉덩이를 보여서는 세계인의 안목에 未達이다. 전투 중에 전사한 충성스런 용사의 집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이, 온백성을 强盛國家의 대열로 引導하는 영도자의 위대한 모습이다.

영국이 근현대에 들어 와서 지구 곳곳에서 저지른 잔악상은 可恐할 수준이다. 아프리카에서 실어낸 흑인노예들에게 저지른 참상은 인간으로서 입에 담기도 힘들며, 基督의 國家라고 도저히 稱할 수 없는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영국을 잔악한 야만의 민족이라고 욕하고, 영국왕실을 만고 인류의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지배자의 자리에서 저지른 악행은 후일 역사에는 기록될지언정, 그들이 莫强한 국력을 유지할 적에는, 과거야 어쨌든 이젠 善隣友好의 관계를 맺겠다고 줄을 서는 것이 국제정치의 원리인 것이다.

지금 진정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 내 나라, 내 민족에게 과연 어떤 이익을 도모하는일인가, 저들은 그렇게 심악한 죄를 짓고도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데, 우리가 또 쳐진다면, 후일에 또 다시 침탈될 수도 있다는 엄연한 原理는 모르는가.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많은 백성으로만 만들려 하는가.

지도자들이 어린 시절의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냉엄한 국제정세를 바로보지 못하는 것이다. 큰 산봉우리 같이 높은 나라에 가서, 동반한 내 백성은 피가 흐르도록 얻어 맞는데, 속수무책인 자들이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 온백성은 커녕 한 명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역사를 운운하는 모습이 可觀아닌가.

어두운 과거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未來의 强兵富國을 건설하자고 앞장서서 선도할 英雄의 登場을 팔천 만 동포가 목을 빼고 苦待하고 있다.

오래전 어떤 지인은 여행 중에 일본인 행세를 하며 다녔다고 한다. 한국인이라고 하는 것 보다 일본인이라고 함으로서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대접을 더 잘 받을 수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국력이 보아줄 만한 수준이 되었기에 그럴 일은 없겠으나, 근간의 흐름을 볼 때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제라도 약장수의 말재간에 속아서 사는 바보가 되지 말고, 오래동안 잘못 길들여진 독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후대들을 악의 세력들에게 지배받게 하거나,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과거처럼 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적들에게서 그들의 우수한 점을 배우는 민족은 다시 지배받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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