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칼럼] 미북 회담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미디어원=박상후 칼럼니스트)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정연설과 베트남에서의 미북 회담 전망 등과 관련해 논란이 분분하다. 마치 베트남 회담에서 종전 선언이라도 나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끝나는 것 아니냐고 비관론에 빠진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전적으로 대외요소에 달려 있고 미리 예단해서 절대로 비관론에 빠질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미군은 철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미군철수가 없는 한 북한이 무력으로 침공해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국군의 경계태세가 허물어지고
여러모로 안보태세에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자살이나 다름없는 대규모의 군사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내에서는 미군이 철수한다, 안 한다 여러 추측이 나돌았지만 결국은 대한민국 내 우파의 희망이나 현 정권의 속내와는 무관하게 미국이 결정한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회담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는 좋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폼페오도 “비핵화는 김정은의 약속…이행할 것으로 기대”라고 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외교적 수사를 두고 감정까지 섞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한국인은 아주 강하다.

트럼프를 두고 한국인들은 그를 장사치라느니 배반했다느니 하는 비난을 하기 일쑤다. 외교라고 하는 것은 비즈니스와 그 속성이 같다. 한국사회가 사농공상의 틀에 아직도 갇혀 국제정세를 보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 그의 최선은 미국의 국익 극대화인데 설령 우리의 희망에 어긋난다고 해서 배반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한편으로 비핵화를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하면서 북한에 시간을 더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과 함께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유도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상력을 조금만 동원해도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체제붕괴가 가속화 될 것이다.

미국과 함께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간은 북한의 편이 아니다. 현 정부는 북한과 관련돼 미국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미국은 전통적인 동맹, 가상적의 프레임이 사라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인 수를 두고 있다.

베네주엘라 사태만 봐도 우리로서는 바다건너 먼 나라 얘기일수 있지만 그 나비효과는 엄청나다. 북한의 배후인 중국에 물적 심적으로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중인 중국은 벌써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이 보낸 협상대표 류허를 테이블 맞은편에 두고 한껏 조롱하고 호통 치는 장면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외교적 프로토컬로 보자면 담임 선생님이 잘못한 학생을 복도에 꿇어앉히고 꾸짖는 식인데 국내언론에는 전혀 의미가 소개되지 않아 한국인들은 알 리가 없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베트남 회담일정과 관련해 야당의 반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정부도 고려대상이 아닌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야당이 트럼프의 안중에 있을 리 없다. 당대표를 선발하는 그들만의 잔치에 누가 등판했는지 미 트럼프 행정부가 알기나 할까 의문이다.

국제정세를 보는 한국정치인들의 시각은 아직도 구한말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의 외교관 소에지마 타네오미(副島種臣)가 1873년 청나라 동치제와 회견하기 전 삼궤구고두를 거부하고 선채로 세 번 목례를 함으로서 동아시아 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것과 동시대 조선의 외교관들은 크게 대조적이었다. 1883년 조선의 전권대사 일행은 미국을 방문해 체스터 아더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려 당황케 한 적이 있었다. 미합중국 대통령을 황제로 알았던 당시 위정자들이 벌인 촌극이었던 것이다.

국제정세는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미북 회담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이벤트라 블랙스완(Black Swan)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레이 라이노(Grey Rhino)다. 벌써부터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인데 북한을 벌하여 주소서 라면서 마냥 희망 섞인 우리만의 바람으로 그를 우러러 본다거나 아니면 그의 행동이 우리의 희망과 다르다고 해서 ‘장사치’라 비난하는 것은 조선시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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