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탐방] 감성 자극하는 추억의 보물창고

563

(미디어원=박 슬기기자) 추억은 아련하고 서글프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다. 추억이 깃든 물건을 마주할 때 괜스레 가슴이 저리는 이유다.

하지만 느낌은 따뜻하다. 거기엔 그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이렇듯 추억과 기억을 품은 공간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 시절의 물건이 잊혔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련한 그 시절로 여행을 다녀왔다.

근현대사라고 하면 물먹은 솜처럼 한없이 무거운 느낌이 든다. 우리 역사에 개항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분단, 군부독재와 산업화,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등 굴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전혀 무겁지 않다. 건물 외벽에 붙은 박물관의 부제(副題)도 ‘추억의 골목동네 달동네’다. 그곳에는 1960∼1970년대의 추억 어린 물건이 가득하다. 깃털처럼 가볍고 햇살처럼 따스하기만 하다.

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가득 쌓인 잡동사니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톰과 로봇 태권 브이의 인형부터 각종 장난감, 시계, TV, 라디오, 카메라, 아코디언, 가게 카운터 금고, 양은 도시락과 주전자, 고무신, 케첩 통과 간장 종지까지….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취급하던 만물상처럼 없는 게 없어 보인다. 고물상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듯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은 바로 최봉권(64) 한국근현대사박물관 관장이 20대 초반부터 30여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모은 것들이다.

누군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소중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오래된 생활유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모은 것은 자그마치 7만여 점에 달한다.

최 관장은 2005년 파주 교하에 박물관을 열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신도시 부지로 수용되면서 문을 닫았고, 그로부터 5년 후 이곳 헤이리 예술마을에 박물관을 재개관했다.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1960년대 전후의 동네를 고스란히 재현한 풍물관(지하 1층), 학교와 주변 등을 중심으로 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문화관(지상 1,2층),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관과 추억의 소장품관(지상 3층)으로 구분돼 있다.

50여 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은 매표소 옆에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우선 1960∼1970년대의 허름한 골목이 그 시절의 영화라도 보는 듯 ‘짜잔!’ 하고 눈앞에 나타난다. 지금은 중년이 된 아빠·엄마와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우리 할아버지·할머니가 지나온 시간이다.

‘금촌상회’란 간판을 단 가게에는 태양, 한산도, 백조, 거북선 등 지금은 자취를 감춘 담배와 어느 집이든 하나씩은 있었던 비사표 성냥, 남양 분유 깡통, 사탕과 껌, 파일럿 잉크, 비닐우산, 공책 등이 진열돼 있다. 아련한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미소를 감출 수 없게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다. 계단을 내려가면 허름한 집들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50여년 전의 동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계단에서 보면 전깃줄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이어진 전봇대 뒤편으로 기와나 양철지붕으로 덮인 허름한 건물들이 빼곡하다.

참기름 집, 얼음집, 한약방이 있고, 버스정류장과 시장도 보인다. 2개 층을 합한 크기의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운 동네의 규모도 대단하지만, 마을의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50여년 전으로 거슬러간 듯 무척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