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치뼈를 겨냥한 첨단(尖端)의 소뿔 열정적인 태양의 도시, 마드리드의 ‘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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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권호준 기자) 스페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열정’이다. 전통 춤 ‘플라멩고’의 강렬함이나 월드컵에서 그라운드를 누비는 스페인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그 열정이 머릿속에 온전히 각인될 정도다.

스페인에서 가슴속 뜨거움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열정은 바로 ‘투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뤄지는 아슬아슬한 마지막 춤. 그 찬란한 황홀경! 마드리드에서 열린 투우경기를 보면 삶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스페인을 대표하는 붉은 정열의 문화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각각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모든 것들은 단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비판할 필요도 없다.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개고기를 먹는 문화를 비판하는 국가도 부지기수인 것처럼.

스페인의 ‘투우’ 문화도 마찬가지다. 소들의 돌진을 피해 이리저리 멋들어지게 움직이는 투우사들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시위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누가 옳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투우경기가 열리는 일 년 내내, 전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경기장을 찾아 투우사의 몸짓에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스페인에서 투우는 이미 스포츠를 넘어서 국기(國伎)가 된지 오래다.

투우 시즌은 매년 3월, ‘발렌시아 불축제’에 시작돼 10월 사라고사의 ‘피랄축제’까지 지속된다. 본격적으로 경기가 펼쳐지는 때는 여름시즌으로,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열린다. 때로는 경축일 같은 특별한 날에 열리기도 한다.

투우는 투우사 마타도르(Matador) 1명이 2마리의 소와 대결하며, 1회 진행할 때마다 3명의 마타도르가 등장한다. 따라서 1회에 총 6번의 투우가 진행되며 투우 1번시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다.

약 2시간여동안 투우경기를 관람할 수 있으며, 경기시작은 투우장을 양지와 음지로 갈라놓을 정도로 해가 기운 일몰 후 시작한다.


투우가 국기인 만큼 투우경기장이 스페인 전역에 산재해 있다. 그 중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라스 벤타스(Las Ventas) 경기장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총 2만 5천석 규모로 스페인 투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벤타스역을 나오면, 그야말로 바로 앞에 라스 벤타스 경기장이 보인다. 경기 당일의 입장권 구입은 푸에르타 델 솔 광장 근처의 공영 입장권 판매장에서 오전 중에 구입할 수 있다. 경기일 오후부터는 직접 투우장의 매표소에서 구입해야 한다. 여행 안내소에서는 투우장의 목록과 연중 경기 일정을 얻을 수 있어, 쉽게 투우경기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입장권 가격은 좌석의 위치가 볕이 드는지의 여부에 따라 조금 다르다. 솜브라(Sombra:그늘), 솔이 솜브라(Sol y Sombra: 처음엔 볕이 들지만 나중엔 그늘이 되는 자리)와 솔(Sol: 볕이 계속 드는 자리)로 구분되며 솔 티켓이 가장 싸다.

돈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보통 솔 티켓을 선택하려 하겠지만, 마드리드의 강렬한 태양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부디 태양과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티켓을 구매하자.

# Toros Me Mata! (투우가 날 미치게 해!)

스페인 최대 규모의 투우장 라스 벤타스 투우장은 얼핏 보기엔 스페인 특유의 평화롭고 고전적인 매력을 갖춘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투우사와 소의 혈투가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경기장 주변은 이미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투우는 투우사를 소개하는 장내 행진으로 시작된다. 투우사를 반기는 함성소리가 이미 경기장 안을 가득 메운다. 투우사는 주역 마타도르(Matador), 작살을 꽂는 반데릴레로(Banderillero) 두 사람, 말을 타고 창으로 소를 찌르는 피카도르(Picador) 두사 람, 조수 페네오(Peneo) 까지 여섯 사람이 중심이 돼 행한다. 투우사 소개가 끝나면 경기장 한편의 문이 열리고 소가 뛰쳐나오며 경기가 시작된다.

경기용 소는 투우장에 내보내기 전 24시간을 캄캄한 암흑의 방에 가둔다. 파네오가 먼저 등장해 카포테(capote)라는 빨간 천을 이리저리 흔들면, 어두운데 있다 갑자기 밝은 햇살 속에 나온 소는 난폭해지며 질주한다. 피카도르는 말을 부리며 창으로 소의 곳곳을 찌른다. 흥분한 소는 자기 성질을 억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곧 반데릴레로가 나타나 소의 목과 등에 작살을 꽂는다. 소에게 돌진하며 작살을 꽂기 때문에 소의 뿔에 찔리진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생긴다. 작살이 꽂힌 소는 더욱 미쳐 날뛰며 장내를 흥분감에 휩싸이게 한다.

이때 주역 마타도르가 붉은 천인 물레타(Muleta)와 검(劍)을 들고 등장해 거의 미쳐버린 소를 상대로 교묘하게 피하며 소를 다룬다. 투우사는 붉은 천으로 소를 유인하며 싸우는데, 장내의 흥분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소의 목을 관통해 심장을 찔러 죽이고 투우가 끝난다.

마타도르가 소를 상대해 죽이기까지의 마지막 순간은 투우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복장을 갖춘 투우사가 자신은 별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유연하고 교묘하게 소를 피하는 장면은 고전무용이나 발레의 동작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조금 전까지 투우사를 위협할 정도로 힘이 넘치던 소가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 새삼 생과 사의 갈림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소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환호하고 열광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처럼 소의 생명도 고귀한 존엄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매년 투우축제에서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고, 투우 경기장 근처에서는 투우반대 시위가 열린다. 또한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은 지난 7월, 투우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며, 투우 자체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투우가 스페인만의 강렬하고 독특한 문화를 대변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투우사가 자신의 생사를 걸고 성난 소를 향해 맨몸으로 돌진하는 용맹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희열을 느낀다. 투우경기를 관람하며 단지 생명을 앗아가는 인간의 잔혹함을 비판만 한다면 그것은 스페인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강렬한 태양과 투우사의 붉은 망토가 한데 어우러진 눈부신 정열이 스페인에선 맑은 공기와 함께 은은히 새겨져 있다. 투우 경기 전 투우사들이 가슴에 모자를 대고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하는 투우사들이 계속 머릿속에 어른거린다.

사진제공: 스페인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