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조정래 소설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로 역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역사를 알기위해 소설을 읽고, 그 중에서도 해방 이후의 역사를 알기 위해 ‘태백산맥’을 읽는다. 설사 소설 속 내용이 가슴이 아릴 정도로 슬프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읽고 가슴에 새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말처럼, 문학은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 ‘태백산맥’의 문학적 배경이 되는 전남 벌교도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멀리로 바라보이는 벌교읍은 절로 감탄이 흘러나올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었다. 서북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어져 나간 산들과 동남쪽으로 긴 자취를 끌며 펼쳐진 들판과 포구, 그 가운데 감싸이듯 시가지는 아스라하게 멀었다. 그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의 경치….” -태백산맥 중에서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가 되는 벌교를 찾는 길은 무척이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지만, 그 과거가 모여 현재의 원인을 이루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던가. 소설은 허구지만, 현실보다 더 진실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태백산맥이 시대를 넘어 아직까지도 한국의 대표문학으로 자리 잡은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광주터미널에서 1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달리면 벌교읍에 도착한다. 먼저 벌교읍과 순천시의 경계로 벌교 읍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진트재(50m)로 향한다.

정상에 올라 순천 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이고, 목포와 부산을 잇는 2번 국도에는 많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만끽하며 오밀조밀한 벌교 읍내를 바라본다. 벌교는 소읍이지만 그 안엔 얼마나 많은 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을까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국문학의 고전이 된 태백산맥을 아직 안 읽어봤다면,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을 이용해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10권을 독파하고 주말을 이용해 벌교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것이다.

수탈의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 벌교는 이념이 자라기에 알맞은 곳이다. 현실보다 더 생생히 온 몸을 부대끼며 역사를 살았던 275명의 삶이 재현된 별교에서 새로운 역사의식을 갖게 되길 기대해 본다.

진트재 고개 아래에 있는 철길은 빨치산인 하대치 등이 순천행 군용기차를 급습해 탈취한 군수품과 무기들을 조계산으로 옮기는 작전을 펼치던 곳이다. 선로를 따라 자갈로 된 기찻길을 걷다보면 소설에서 빨치산들이 넘나들던 뱀골재 너머의 첨봉산이 위용을 드러낸다.

벌교버스터미널 옆길을 따라 오르면 바로 태백산맥문학관이 보인다. 문학관 옆에는 2008년 복원된 무당의 딸 소화의 집이 있다. 소화의 집으로 숨어든 빨치산 정하섭과 소화의 금지된 사랑이 이루어졌던 장소라 더욱 애틋한 감정이 전해진다.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태백산맥 중에서

현부자네 집은 제석산 중턱에 우뚝 자리를 잡고 있다. 기생들을 불러 술판을 벌이면서 중도들판을 감시했을 2층 누각이 눈에 띄는데,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라는 말과 함께 소작농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덕을 내려와 조정래의 옛집을 찾아간다. 태백산맥은 작가가 3년간 벌교에서 살았던 경험 덕분에 탄생했다. 한국전쟁 이후 10세 때부터 12세까지 벌교에서 살아가며 얼마나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고 가슴 아파했을까.

서민영의 야학이 열렸던 회정리 교회와 주리 입산한 집 아이들이 다녔던 어린이 집을 지나 소화 다리에 도착한다.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소화다리는 빨치산의 인민재판, 국군과 경찰의 색출작업 때마다 피로 얼룩진 다리다. 좌·우익의 참살이 앗아간 죄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해 가슴이 아프다.

소화다리 위쪽에는 벌교의 명물이라고 하는 횡갯다리(홍교, 보물 제304호)가 보인다. 바닷물 위에 놓인 유일한 홍교라는 횡갯다리는 빨치산들이 지주들에게서 빼앗아 온 쌀을 소작인에게 나눠주려고 쌓아 놓았던 다리다.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를 모방해 만들었다고 하며, 다리 밑에 거꾸로 매달린 용머리가 인상적이다.

#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높은 담장이 길게 이어진 김범우의 집이 나타난다. 양심적이고 품격있는 지주였던 아버지 김사용 밑에서 태어난 민족주의자 김범우는 작가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지만, 상것들이 보지 못하게 높이 올린 담장은 낡아 허물어져 가고 집도 기운 것이 세월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담장 너머엔 자신의 땅이었을 고읍 들판이 펼쳐져 있다.

소설에서는 M-1 고지라고 이름 붙여진 벌교공원과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정에 오른다. 김범우의 집 너머로 보이던 고읍들판과 일제강점기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농민들이 일일이 등침으로 돌을 날라 만들었다는 중도방죽이 한 눈에 들어온다. 20리의 방죽을 쌓으며 농민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한을 품었을까.

끝으로 염상진의 목을 사흘간이나 내걸었던 벌교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염상구가 형의 시신을 거둠으로써 이념보다는 피가 훨씬 진하다는 것을 보여줘, 이데올로기가 아닌 삶의 현장성을 중시하는 작가의 신념을 느낄 수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돼 휴전 직후까지 오 년간의 시간을 벌교를 무대로 담고 있다. 수탈의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 벌교는 ‘토지’의 무대 평사리처럼, 소설로 인해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찾아가는 길
자가용: 1번 경부고속국도=>천안JC=>25번 천안논산고속국도=>논산JC=>25번 호남고속국도=>고서JC=>주암IC=>27번 국도=>15번 국도=>2번국도=>벌교읍.

대중교통: 서울에서 광주나 순천으로 간다. 광주는 녹동행 버스, 순천은 해남행 버스가 벌교를 경유한다. 버스는 수시로 있으며, 벌교 주요 기행장소는 모두 도보로 가능하다.

▶맛집
40년은 이어온 국일 식당은 남도서 손꼽히는 한정식 백반집이다. 벌교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해, 30여가지 반찬과 함께 꼬막정식을 즐길 수 있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인 1만3천원.
문의: 061-857-0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