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들

사진: Shutter Stock

(미디어원=신달파 칼럼니스트) 장마철에 천둥번개 소낙비가 퍼붓고 나면, 온갖 개구리, 두꺼비 다 나와서 울어댄다. 땅이 마르고 가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뱀 개구리 모두 몸을 감추고 조용하다.
탈탈 털은 신발짝이나, 총애 받던 누님의 아우나, 통성으로 무한 축복을 빌어주던 목사와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蹤迹이 五里霧中이다. 신바람이 나서 웃어대던 面相들이 오버랩 되고, 그들의 기고만장한 목소리들이 허공에 메아리친다.

홍길동은 홍판서를 진정 아버님이라고 불러 보고 싶었으나, 종내 허락받지 못하고, 찢어지는 어린 가슴을 부여안고 울면서 산중으로 들어간다.
방랑시인 김병연(김삿갓, 金笠)은 애비가 애비인 줄도 모르고 들입다 욕을 해대고서 壯元及第를 했다가, 嗚呼! “痛哉라, 이게 아니구나”, 유랑길에 나선다.

上典을 外面하고, 주군을 배신하고, 장수의 수급을 베어서 적에게 갖다 바치고 돈냥이나 받아서 致富하거나, 스카웃되어서 출세한 자들의 고사가 역사서에 許多하다. 권력의 역동과 함께, 그때마다 배반과 변신의 귀재들이 항상 등장하는 것이 역사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 부처. 공자가 가르친대로 모두가 오로지 올곧게만 지내 왔다면,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無味乾燥하고 따분했겠는가. 아니 모두가 의롭다면 그런 선각자들이 아예 등장할 動機조차 없을 것이다.

최고의원회의에서 巨頭랍시고 꺼덕대던 자들이, 백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인정 못 하겠수다. 그럼 해산이오 어쩌구하더니, 진짜 解散되어버리고 赤蔽靑山그룹이 들어서서 그동안 孕胎해있던 숱한 무당개구리들을 解産해냈으니, 오라, 역사의 수레가 마침내 軌度離脫에 들어서는 順序로구나.
수십 년, 집사노릇을 했다는 자들이 ‘무슨 일 있었어?’ 하는 표정으로 아침에 풀려나면, 주군은 지저분한 죄과가 드러나고 모진 수모를 겪는 일이, 요즘 赤蔽靑山 보는 재미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다.

아침저녁으로 마누라보다 더 근접해서 밥자리, 옷자리, 잠자리까지 챙겨주고, 아침저녁 출퇴근에 깍듯이 경례로 배웅하고 맞이하던 충성스런 어린 녀석이 하루 아침에 육군대장을 헌병대 철창안에 처넣다니, 근년의 배반사 중에 가장 자극성 강한 사례다. 朴大將의 찢어지는 가슴을 위로하고 싶다. “사령관님, 張飛는 밤새 아랫넘이 목을 베어서 가져 가기도 했답니다. 목이나 한 번 만져 보면서 참으십시오.”

獄中의 女人, 그녀의 심정을 십분지 일이라도 아는 자가 있는가? 자신의 錯午와 凡失에 대한 自責도 크지만, 그의 周邊에서 알장대던 비굴한 웃음들이 밤새 그를 잠못들게 괴롭힐 것이다.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스스로는 賢明하게 한다고 해왔는데… 흐르는 눈물을 누가 있어 닦아 줄 것인가. 아버지가 꿈에라도 나타나 위로해 줄까.

홍길동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서러움이 뼈에 사무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慘憺을 超越하여, 일신을 연마했고, 결국 악을 징벌하는 쾌남아가 되어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을 박대했을망정) 홀로 있을 때는 남모르게 아버지 아버지를 속으로 불렀을 것이다.
김병연이 삿갓을 쓰고 나는 죄인이요 하면서 천하를 流浪할 적에, 그 이의 마음에 무엇이 일어설 게 있었겠는가, 길을 걸으면서 呪文처럼 아버지, 아버지, 잠자리에 들어서 별을 보면서도 아버지, 아버지… 그 외 다른 무엇이 있었겠는가.

학생들 앞에 나서서 가르친다고 떠벌떠벌 하면서도, 천군만마가 내 발 아래다 지휘봉을 휘두르면서도, 내가 진짜 愛民愛族의 眞髓요 하면서 유권자를 희롱하면서도, 잊지는 말자.

아버지를 저버린 김병연의 悔恨으로 가슴을 치지만, 홍길동처럼 아버지가 야속했어도, 모두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어쩌랴. 아버지의 강토가 비열한 세력들에게 유린될 때, 壯烈하게 일어서서 적들을 징벌할 우렁찬 양심과 기상들이 아버지의 아들인,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있음을 잊지는 말자.

진정 이 땅의 아버지들의 아들들이라면,
스스로 지식과 양심과 명예를 자랑하는 자들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더 잘 알 것이며, 향후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더 잘 알 것이다. 지금의 世態에 대하여 후손들의 평가가 어떠할지 짐작이 안 되는가.
우리들의 아버지, 이 나라와 선조들이 준엄한 눈으로 지금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아침에 나가서 등교하는 어린 것들을 보라,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 보는 얼라들의 눈이 진정 더 무섭다, 안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