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provided by The Ancient origins. All right reserved.

구약성경에 출애급기가 있다.

모세라는 걸출한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 이집트의 건설을 위해 일하고 있을 때, 그 민족을 이끌어 홍해를 건너 원래 살던 곳으로 이주하는 기록을 쓴 책이다.

이집트에서 홍해를 건너 도착지로 정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은, 몇 십만을 거느렸다 하더라도 거리상으로 보면 길어서 1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정작 그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끌어 정착한 것은 40년 뒤였다.

이동에 필요한 1년이란 시간보다 무려 40 배나 되는 기간을 사막을 돌며 이리 저리 헤매기만 한 것이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곳에 살던 여러 부족을 전쟁으로 내 쫓고 성전을 짓고 성을 쌓았으나 그 민족을 이끈 모세 자신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아 그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역시 이집트 문물과 문화에 이미 젖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4-50년이었으니, 이집트에서 태어나 이집트의 문물과 생활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고 탈이집트 이후에 태어난 말하자면 새 백성들로만 새로운 땅 새나라 건설을 하자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이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집트를 떠난 이후 늘 쫓기고 원래 사막에 살고 있던 종족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하는 40년이었다. 이민족과의 전쟁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정착할 집도 없이 사막에서 40년을 한 민족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 중에 어려운 일이아닐 수 없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출애급기에서 우리가 배울것이 있다.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는 (그 새 나라가 타골과 토인비가 내다 본 동방의 등불이며 신라 천년의 재 탄생이 되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우민정책(愚民政策)에 따라 합리적이고 얼마든지 필요한 문자를 확장 창출해 낼수 있는 우리 동이족이 창안했던 한자를 헌신짝 처럼 버리고 선조들이 남기신 글과 문화는 물론 자신의 조상과 유래를 기록한 족보마저 읽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불행한 세대들이 모두 사라져야만 될것이라는 불가역적(不可逆的) 현안이라는 것이다.

지금 북한의 핵, 중국의 발호, 일본의 강성화, 미국의 도움이라는 압박,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40년간의 사막행진이다.

우리는 화백제도로 단 한 번의 왕권찬탈이나 정변이 없이도, 아니 임금마저도 화백회의에 의해 순리로 폐위시키면서 1천년에서 8년이 모자라는 기간동안,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본, 임금은 백성들을 아끼고 관료들을 임금이 아닌 나라에 충성하고,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부형(아버지와 형님)으로 따르고 섬기는 나라, 그래서 도덕적으로 강한 나라, 감히 그 나라를 대군으로도 침범할 수 없는 나라였던 신라(돌 같은 나라, 신라의 원 뜻)를,우리는 재건 하여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도 선거라는 제도 때문에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이 확실한 만큼, 우리는 새로운 모델을, 인류의 행복이 보장되는데 한 몫을 해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역군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새나라에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자손들에게는 새 나라를 물려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동방의 빛이 된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과거의 재현일 뿐이다.

글: 지봉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