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원래 잘 살진 않았다.

개화기 조선에 온 외국인들에게 가장 고역이었던 것이 사방에 널린 분변이었다는 기록이 많다.
70년대 시골 동네에 들어가면, 변소 이용이 어려운 그집 꼬마가 마당에 변을 누고 그것을 핥아 먹는 그집 강아지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곳은 시골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 근처였다.
6학년때 나가 본 김천 버스 정류장 앞에 비좁은 화장실이 있었고 입구에서는 책상 내놓은 어떤 아저씨가 사용료 5원씩 받고 있었다.

시골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에 공중 화장실이 있을리 없었다. 우리 동네는 선산군 무을면, 상주군 외남면으로 가는 버스가 회차하는 곳이었다. 다른 면에 비하여 교통량, 이용자가 많은 편이었다.

우리는 골목에서 뛰어 놀 때, 조심하여야 했다. 버스 이용한 사람들 중에 어두운 골목, 인적이 드문 길가를 찾아 급한 용무를 해결한 것이 흔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는 골목은 그나마 나았다. 우리가 노는 골목에는 농기계 넣어 두는 어두운 개방형 창고나 어두운 처마 밑 정도 조심하면 되었다.

신작로 건너편 골목은 집들이 골목길을 등지고 있었다. 골목길을 향하여 가게들이 열려있고 집들이 길을 향하는 우리 골목과 반대였다.

그 골목은 들어가면서부터 찌린내가 진동하였다. 조합 뒤 담 아래 그늘 진 곳은 복합적 오물 배설지였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는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 을 계기로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치루면서 였다.

대만 어느 방송사는 한국의 청결하고 수준 높은 화장실 시설과 문화를 취재하여 자국에서 방송하였다.
지금 깨끗하게 살고 있지만, 예전의 그 비위생과 역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 스트리트 뷰로 보는 고향 신작로, 왼쪽 휴대폰 가게 건물 자리에 있던 집 옛날 그 집 벽에는 커다란 가위를 그려놓았었다.

그리고 커다란 경고문 “소 변 금 지”

우린 원래 잘 살지 않았고, 우리는 이전에 깨끗하지 않았다.

글 사진: 서동혁 교수/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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