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국민들이 “중국에 주권을 팔지 말라”고 항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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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대통령궁에서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 지도자로는 2005년 이후 13년 만에 필리핀을 방문했다. 필리핀국민들은 항의에 나섰다. 연합뉴스

(미디어원=박상후 칼럼니스트) 중국 주석 시진핑이 필리핀을 방문해 필리핀과 영유권분쟁을 빚어왔던 남지나해 해역에서 자원을 공동개발하기로 하는 양해각서에 20일 서명했다. 그러나 일대일로 협력 양해각서 등 29개 협약 서명과 관련하여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가 필리핀의 주권을 중국에 팔아치운다면서 거세게 항의시위를 벌였다. 필리핀이 중국의 빚 수렁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현지인들은 “중국 물러가라, 정부는 시진핑에 양보해선 안 된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진핑이 필리핀을 방문한 것은 중국 국가원수로서는 13년 만의 일이다. 전임 아키노 정부는 중국과 남지나해 영유권 분쟁을 벌인 끝에 국제중재재판소까지 호소해 중국의 주장은 법적 효과가 없나는 판결까지 얻어냈는데 두테르테는 취임한 뒤 중국을 방문해 240억 달러의 경제원조약속을 받았다.

그 대가로 두테르테는 이번에 양국간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해역에서 중국과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공동개발을 하겠다고 서명했다. 두테르테는 마닐라에서 루손남부에 이르는 600킬로미터에 달하는 30억 달러가 소요되는 철도개발을 하려하자 중국이 이 돈을 대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리핀인들은 마닐라의 중국영사관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한편 중국의 경제원조 대가로 필리핀을 팔아넘긴다고 두테르테에게 경고했다. 필리핀을 친미국가에서 갑자기 친중으로 바꾼 것은 물론 경제적 침투를 교두보 삼아 필리핀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우려한 것이다. 필리핀인들이 중국을 혐오하는 데는 이 밖에도 자세한 배경이 있다.

필리핀 인구는 대략 1억으로 중국계는 2%미만인 100여만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필리핀 경제의 60%를 화교가 장악하고 있다. 최고 부호로 재산이 183억 달러에 달하는 스즈청(施至成)은 유통업의 거두인 SM 그룹주이며 필리핀 최대은행 BDO도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다.

또 필리핀의 유명맥주인 산 미구엘은 차이치원(蔡啓文), 페스트푸드 체인인 JOLIIBEE는 천쟈오중(陳覺中), 불고기 체인인 사오카오셴성(燒烤先生)은 셰즈청(謝志成)등 필리핀인들의 의식주와 관련된 사업은 거의가 중국계다.

최고 부호 10명 가운데 7명을 차지하는 중국계 가운데 가장 돈이 많은 올해 92세의 스즈청(施至成)은 젊은 시절 필리핀에 주둔한 미군을 상대로 담배를 거래해 크게 부를 일궈 필리핀 최대의 유통그룹인 SM을 설립했다. 필리핀내에 60개의 대형 쇼핑몰을 가지고 있는 SM은 두테르테가 집권하자 더욱 더 성장했다.

친중에 기운 두테르테 덕분에 중국에 7개의 매장을 열었다. 특히 텐진에 들어선 40만명이 동시에 쇼핑할수 있는 텐진빈하이청(天津滨海城)에도 SM백화점이 입점했다. 두테르테가 집권한 2년여만에 스즈청의 재산은 30억 달러가 늘어나 일가의 재산은 필리핀 GDP의 5%가 넘을 정도가 됐다.

두테르테 집권이후 중국의 필리핀 침투는 노골적이다. 지난세기 미공군의 기지가 있었던 클라크 기지는 1995년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그런데 여기에 에너지기업으로 군수기업이기도 한 거저우빠(葛州壩)그룹이 20억달러를 투입해 공단을 조성한다면서 이미 진출한 상태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도 중국인이 쇄도하고 있다. 마닐라에는 이미 10만명의 중국인이 들어왔다. 절대수치로는 많지는 않지만 대다수가 부호들이라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다. 마닐라의 노른자 지역인 Bay Area의 부동산 가격은 27%나 올랐다.

이 뿐만 아니라 카지노에도 중국인이 몰리고 있다. 원래 마카오로 몰렸던 중국인들이 시진핑정권의 반부패 단속이 강화되자 마닐라 카지노로 몰리면서 거래 자금이 60억 달러까지 급증했다. 중국 부호들은 마닐라 카지노에 검은 정장에 이어폰을 낀 하수인들에게 전화로 원격 도박을 하는 풍경이 목격되는데 마카오 카지노에서는 원격 도박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상당한 빈부격차가 엄존하고 있는 필리핀에서 중국계 편중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에 이어 두테르테가 필리핀을 친중국가로 몰아가면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국의 돈이 앞으로 더 큰 멍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