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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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 불황의 늪을 서로 먼저 탈출하기 위해 각국은 마치 냉전시대 군비경쟁에 열을 올리듯 ‘관광’에 국운을 걸었다. 총성이 없고, 피를 흘리는 자들도 없지만, 상황만큼은 세계 대전 못지않다.
개발도상국은 개발의 기회로, 선진국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시대가 도래했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는 올해를 자국 방문의 해로 선포했고, 미국조차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목적 입국에 대한 비자 면제조치를 취하며 세계인의 눈을 끌어모으기에 안간힘이다.
20개국 관광장관들이 부여에 모여 관광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일부분일 뿐이다. 너도나도 관광시장 선점을 위한 눈치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광청들은 타국에 대한 핵심 정보수집기관과 최전방 부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관광전쟁 중이다.

#경제 부흥 내건 총성없는 전쟁
굴뚝없는 황금산업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에 대한 잠재력은 이미 입증됐다. 묘하게도 신종플루가 대유행한 지난해는 사상 유래없는 전세계 관광시장 침체가 경제 불황과 겹쳤다. 당연히 경제 불황이 관광시장 침체를 야기했다는 논리가 성립하겠지만, 관광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제 부흥을 꿈꾸는 각국의 노력을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즉 관광이 경제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관광 전쟁’에 참전하는 각국의 시장 쟁탈전이 날이 갈수록 뜨겁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선전포고(?)를 한 나라는 일본. 지난 2002년 당시 고이즈미 내각이 주도한 관광산업 진흥 계획에 따라. 요코소 재팬 체제가 출범해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어서 일본은 올해 새로운 슬로건 ‘Japan. Endless Discovery(일본. 끝없는 발견)’을 내세우며 유래없는 경기불황의 해법을 관광산업에서 찾고 있다. 현재 교통성과 JNTO(일본관광청). JR(일본철도) 등 민·관이 주도하는 마케팅의 양적. 질적 규모를 보면 2011년 일본방문의 해와 맞물리면서 방문객 목표치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제조업 생산국인 중국 역시 올해를 ‘중국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여행사 인센티브 지원 등 물량 공세를 통해 전세계에 ‘중화민국에서의 여유(旅遊)’를 알리고 있다. 이미 관광지로 인기가 높은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고도. 상하이 엑스포와 광저우 아시안 게임 등 메가 이벤트를 통해 중국 여유국 주도 아래 각 성(省) 단위들이 치열한 각개전투를 벌여나가고 있다.
한국 역시 하반기에만 G20정상회의와 전남영암 F1 등을 내세워 여행자들의 맘을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하기 위해 민간 주도의 (재)한국방문의해위원회(위원장 신동빈)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홍보·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또 지난 7월에는 청와대가 관광진흥 비서직을 최초로 신설하고. 안경모 한국관광공사 전 부사장을 임명해 정책역량을 강화했다. 그 결과 올해 방한 외래객은 전년 동월 누적 대비 9.2%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연말까지 목표(850만명)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 전장으로 선택된 중국
지난해 해외여행객 4700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중국.
해외 곳곳을 누비며 돈을 뿌리는 통에 세계관광시장에선 일찌감치 ‘큰 손’으로 떠올랐다. 미래시장에 대한 기대가 큰 곳도 중국이다. WTO(세계관광기구)는 2020년엔 중국 해외관광객은 1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돈도 넘친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7월 관광시장동향 보고서를 통해 중국 아웃바운드 규모는 지난해 대비 11% 성장했으며, 소비액은 48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엄청난 인구수만큼이나 통이 큰 고객이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중국을 최괴의 고객이자 노다지로 인식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각종 중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을 쏟아내며 중국인들을 감동시킬 묘안을 모색중이다.
일본은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중국인 개인 관광비자 발급 기준을 현행 연소득 25만 위안(한화 약 4000만원)에서 3만~5만 위안으로 크게 낮췄다.
비자 발급소도 확대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3대 대도시뿐 아니라 충칭, 선양, 칭다오, 다롄 등 내륙과 동북부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비자 신청 대행사도 현재 48개사에서 290개사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일본은 이 같은 전략으로 올 연말까지 중국인 관광객 180만명을 유치하고, 2013년까지 390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태국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5월 11일부터 다음해 3월 31일까지 230위안의 태국비자 발급비를 면제해 줬다. 또 1만 달러의 보험도 무료로 가입해 준다. 중국인 상대 태국상품 가격도 평소보다 30∼50% 수준으로 내렸다.
싱가포르는 올해 세계 최고 수준급의 카지노 영업장 두 곳을 개장해 중국인 관광객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 벌금을 물리는 등 엄격한 도덕 국가가 반대여론에도 카지노 영업을 허가한 것은 ‘카지노 단골’인 중국인 관광객을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조차도 베이징에 관광청 사무소를 직접 열거나 비자면제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시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세계 각국이 전쟁터로 중국을 택한 이유는 바로 그 인적 잠재력 때문이다. 대다수 관광청들은 홍보 마케팅비용의 대부분을 중국시장으로 돌리고 있고, 이는 중국 관광시장의 반등을 위한 군자금으로 쓰여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