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극 ‘미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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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meta)드라마’라는 용어가 있다. 명칭이나 개념이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극에 대한 연극, 또는 극중극이 있는 연극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소설에 대한 소설, 소설 속의 소설, 고전 소설 형식이나 내용의 차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메타소설(metafiction)’에서 파생된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메타소설의 효시라는 얘기도 한다. 메타드라마는 비극적이거나 부조리한 현실세계의 이야기를 희극적인 대사와 연기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서울 대학로 무대 위에 올려진 창작초연 연극 ‘미친극'(최치언 작ㆍ이성열 연출)이 메타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극중 등장인물들이 쓰고 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본에 의한 연극이 무대 위에서 교차로 전개되면서 혼란스러울 정도의 극중극이 펼쳐진다. 극중극 안에 또 하나의 극이 있고, 끝에 가서는 그때까지의 모든 상황이 한 여성작가가 쓰고 있는 희곡의 일부라는 것이 드러난다. 극 전체로 볼 때 주인공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우습게도 사채업자다.

연극은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연출가(장성익 배우)가 쓰고 있는 희곡의 내용이다. 이 희곡에는 술집에 나가는 장미(김민선)와 그녀의 남편인 극작가 도연(김승철)이 등장한다. 또 장미에게 돈을 빌려준 후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차용계약서에 따라 장미의 남편이 되는 사채업자 방학수(김학수)가 나온다.

다른 한 축은 작가 도연이 쓰는 희곡의 내용이다. 도연의 희곡에는 거꾸로 연출가가 등장한다. 또 이 연출가에게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채권액만큼을 연출가가 만드는 연극에 투자해 수익을 나누기로 한 사채업자 방학수가 등장한다. 연출가가 쓰는 희곡, 즉 장미와 도연이 등장하는 연극의 연습을 하는 배우 네 명도 있다.

연출가와 작가가 서로를 등장시키는 희곡을 써내려가는 것이나 사채업자가 두 희곡 모두에 등장해 한쪽에서는 빚 못 갚는 남의 부인을 아내로 삼고, 다른 한 편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들먹이며 연극투자자가 된다는 설정은 황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설정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 황당함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인간의 욕구가 그려진다.

방학수는 거액을 연극에 투자했다며 연출가가 쓰고 있는 작품의 이름을 ‘착한 남자 방학수’로 고칠 것을 주문한다. 그는 작품의 내용은 물론 배우들의 연습장에도 나와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는 두 개의 희곡에서 연출가에게는 공연의 성공을, 장미에게는 사랑을 강요하는 욕망의 주체다.

‘미친극’의 연극적 재미는 극이 종반으로 치닫으면서 농도가 진해진다. 도연과 연출가는 희곡의 마지막 장면을 매듭짓지 않는다. 그에 따라 방학수의 욕망이나 그가 원하는 극중극의 해피엔딩은 이뤄지지 않는다. 방학수는 결국 그들을 모두 죽인다. 도연 또는 연출가의 얘기가 극중 제3의 작가인 여성작가의 머리 속에서 놀고 있는 희곡의 일부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면은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처럼 방학수의 좌절은 반복되고 그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연출가의 피묻은 원고뭉치, 무대 위의 허리 잘린 감나무, 극 마지막 부분의 목이 잘린 도연의 이미지는 이 연극이 자아내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강화한다.

메타드라마는 극중극 형식을 갖고 있어 자칫하면 혼란스러움과 난해성을 야기할 수 있다. ‘미친극’에는 서로 다른 극중극 또 그 극 속의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이해의 어려움을 완화하는 장치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장미와 극작가 남편 도연의 말과 행동은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금홍과 이상의 이미지를 연상케한다. 관객은 장미와 도연의 그런 장면이 우선 익숙하다. 또 장미와 도연은 종종 "…하시와요." 등 옛스러운 말투를 씀으로서 관객이 극중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성열 연출이 이끄는 극단 백수광부의 창단 15주년 기념공연 중 첫번째 작품이니만큼 백수광부 배우들이 자존심을 걸고 연기를 펼친다.

공연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2월23일~31일, 이어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새해 1월8일~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