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재의 국내오지트레킹] 현대인이 꿈꾸는 진정한 유배지
첫번째 이야기. 강원 영월 늡다리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집을 가진 사람이 누굴까 ? 그 주인공은 영월 늡다리에 사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 집이 얼마나 크냐면 , 차를 도로변 주차장에 세우고 자기 집까지 6 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한다 . 중간에 계곡도 있고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한다 . 더욱이 대문에 ‘ 자연휴식년 ’ 이라는 표지판이 높게 걸려 일반출입이 쉽지 못하니 이 넓은 자연 정원을 혼자 두고 즐기는 셈이다 .
처음 찾아갔을 때 일이다 . 서울에서 찾아왔다고 하니 멀리서 왔다며 냉수와 커피 한잔을 대접한다 . 그는 쌀이 떨어져도 밑으로 안내려가지만 커피와 담배가 떨어지면 내려간다고 한다 .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도 길어 인상이 예사롭지가 않다 . 젊었을 때 산을 많이 타다가 , 이곳에 반해 터전을 잡았다고 한다 . 불편한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 없어서 불편한 것보다 없어져 좋은 것이 더 많다는 인상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
원래는 화전민이 살고 있던 이 장소를 그가 터를 잡아 집을 지었다 . 집이 모두 세 채인데 , 이미 공사기간이 십년이 훌쩍 넘을 정도로 미완성의 대공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 모든 자재를 지고 6 킬로미터의 거리를 왔다 갔다 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
혼자 살면 무섭진 않을까 . 그도 이곳에서의 첫날밤은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 하지만 이제는 귀신이라도 나왔으면 싶을 정도로 사람이 그립니다 . 개도 길러보려 했지만 , 워낙 깊은 산골이라 야생동물이 많다 .
그의 말에 따르면 ,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해가 일찍 지는 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 보통은 오후 세시 , 동짓날은 2 시면 해가 지니 말 다했다 .
집이 세 채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법도 한데 , 다만 밥을 먹으려면 쌀을 직접 가져와야 한단다 . 그럼 가마솥에 나무 장작불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다 .
이곳을 방문하는 데 가장 좋은 계절은 겨울이다 . 그의 표현에 따르면 문학을 모르는 이도 최소한 시 세편은 그냥 나온다고 한다 . 또한 겨울에는 계곡물이 얼기 때문에 계곡을 따라 더욱 쉽게 오를 수 있다 .
그는 이곳을 일컬어 꿈꾸는 유배지라고 칭한다 .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지만 , 그가 산길이 전부였던 젊은 시절에 이곳 늡다리 길에 반한 이후로 ,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이 유배지에서 혼자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
10 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미치도록 좋다고 하는 그 길에 내가 처음 올랐을 때는 다른 산속 길과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 미치고 환장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 하지만 그 후 여러 번 그 길을 오르며 매번 달라지는 길의 맛에 점차 빠져들었다 . 숲길 , 계곡길 , 바위길 등이 다양하게 맞물려 , 매번 다른 길의 깊이가 느껴졌다 .
이곳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에 속하지만 산하나 너머로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의 경계를 이르는 곳이기도 하다 . 태백 줄기와 소백 줄기가 나누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 백두대간 도래기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소백산과 태백산을 가르며 흐르는 내리계곡 상류쯤에 자리한 늡다리는 널빤지로 만든 널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
칠룡동 , 응애골 , 무쇠점터 , 늦은목이 , 사기점터 , 명생동 등 근방에 살던 화전민들이 이 다리를 건너 경북 봉화 춘양 , 충북 단양 , 영월 5 일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으로 백두대간에 숨어 살던 화전민들에게 소개 ( 疏開 ) 령이 내려진 이후 , 40 여년 세월 동안 버려진 마을인 셈이다 . 늡다리의 길은 그때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 그 길은 오토바이도 , 자전거도 , 수레도 , 아무것도 못 다닌다 . 오로지 걸어서만 갈 수 있다 . 그는 항상 지게를 지고 걸어서 다닌단다 .
이곳에는 시간이 멈추어 섰다 . 1980 년대의 역사로 뒤 돌아간 느낌이다 . 그보다 훨씬 오래전 역사만 이곳에 남아있다 . 전화는 군사용선을 빌어서 한 대 있다고 하는데 . 핸드폰은 먹통이고 전기는 없다 . 불편함을 좋아 하는 것인지 , 즐기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국에 여러 명이 있다 . 많은 이들이 늡다리를 와서 보고는 한마디씩 한단다 . 도로를 닦아라 , 포크레인으로 놓으면 금방이다 . 물레방아 전기를 만들어라 , 태양열 전기를 설치해라 등 … .
그는 늘 이렇게 반문한다 . 이런 곳을 지키는 이 한명쯤은 있어야 되질 않냐고 .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 한 사람쯤 지키고 , 이렇게 찾아다니는 이도 한사람쯤 있어야 될 것 같아 내가 왔다고 . 우리는 서로에게 굳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
다음에 찾아갔을 때 내 배낭에는 커피 한 상자와 담배 몇 갑 , 그리고 쌀을 5 킬로그램 지고 갔다 .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지금까지도 소중히 이어져가고 있다 .
글 ․ 사진 최욱재
테마여행사 ‘ 여행자 클럽 ’ 의 대표 . 1980 년 여행사에 입문 후 ,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 자연의 소중함을 함께 깨닫고 있는 국내테마여행의 개척자 . ( http://www.tc1.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