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정운찬 위원 – “젊은이여, 세계를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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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글로벌 대학생 홍보단 워크샵' 인증서 수여 후,  (좌측부터)허향진 제주대학교 총장, Ochieng Stanley Hawi(고려대), 정운찬 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티엔엘뉴스=성연호 기자) 다음은 제주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진행된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글로벌 대학생 홍보단 워크샵’에서 정운찬 위원장의 특강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서울대 총장 시절, 대학생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데 갖추어야 할 네 가지의 필수 덕목을 항상 당부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라. 여행을 많이 해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놀고, 다양한 친구들을 골고루 사귀어라.”입니다.

현대 경제학의 양대 조류를 대표하는 당대의 석학 폴 새뮤얼슨과 밀턴 프리드먼이 벌인 장기간의 논쟁에서, 프리드먼이 저 유명한 ‘하버드 신동’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학창 시절 그가 섭렵한 고전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낙제생 존 에프 케네디에게 실의와 좌절을 딛고 세상을 보는 거시적 안목을 틔워 줌으로써 20여 년 뒤 강대국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게 해 준 밑바탕은, 아버지가 권한 이탈리아 여행이었습니다.
<해저 2만 리>,<80일간의 세계일주>와 같은 소설을 통해 1세기 전에 이미 달나라 여행과 원자력 잠수함을 정확히 그려낸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무한한 상상력 또한, 그가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서 폭넓게 사귄 여행가와 지리학자 친구들과의 교류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분들의 행복한 일화와는 달리, 저는 학창 시절 너무나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에 독서며, 여행이며, 놀이며, 친교 같은 것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꿈이었습니다. 미래의 글로벌 리더인 여러분에게 유독 이 네 가지를 당부하는 뜻은, 그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인생 선배의 회한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오신 글로벌 대학생 홍보단 여러분! 꿈과 도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멋진 꿈을 지닌 자로서, 미래를 향해 웅비하는 진취적인 자아의식을 발전시키십시오. 꿈은 항상 실현시킬 힘과 함께 주어집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주도가 뉴세븐원더스 재단의 세계 7대 자연불가사의라는 아름다운 도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이 멀리서 찾아와주신 것도 아름다운 꿈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자신이 살았던 시기에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의 화가였지만 세월을 한참 앞서간 화가입니다. 활동하던 당시에 그는 주위의 시선이나 관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I dream my paintings and then I paint my dream.”(난 내 그림을 꿈꾼다, 그리고 난 그 꿈을 그린다.) 그는 이처럼 꿈을 놓지 않아 지금은 피카소, 클림트 등과 함께 세계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먼저 이상을 꿈꾸고, 그 꿈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는 항상 자신의 꿈을 믿는 자의 것입니다.먼저 용기를 가지고 새로움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위기라는 것은 위험과 기회를 합친 말입니다. 기회가 온 것이 틀림없는데, 단지 그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위기는 보통 분명한 신호와 함께 옵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가장 명확한 기회입니다. 세상에 위험을 동반하지 않은 기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회로 만드느냐, 아니면 그대로 위기라는 함정에 빠지고 마느냐는 우리의 태도와 대응방법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제는 역사이고(Yesterday was history), 내일은 예측하기 어려우며(Tomorrow is mystery), 오늘은 선물(Present is present)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위하여 살고, 미래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학문과 책을 항상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학문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창의적인 전문가를 지향해야 합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수입니다.항상 즐기면서 탐구하시기 바랍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공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경기 중 1학년 때부터 초등학생을 가르쳤고, 경기고 2학년 때에는 입주가정교사를 했습니다. 이때 저는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도시락을 싸갈 수 있었고, 교과서 이외의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교사 월급을 받으면 즉시 청계천으로 달려가 헌책을 샀고, 남은 돈은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책 가운데 하나가 <각국의 부의 성격과 원인에 대한 고찰(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즉 우리가 흔히 <국부론>이라고 부르는 애덤 스미스의 고전을 축약한 문고판 영문서적이었습니다. 비록 사전을 뒤져가며 띄엄띄엄 읽었지만, 교과서에 실린 고전을 내 힘으로 해득한다는 것은 억누르기 힘든 기쁨이었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처음으로 마음을 굳힌 동기는 고전의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라, 내가 경제학의 고전을 원서로 읽었다는 사실이 유발한 감동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어서였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입주가정교사를 했는데, 제 전임가정교사가 훗날 육사 경제학과 교관을 하던 중 통혁당 사건으로 20년을 감옥에서 지내신 신영복 선배님이었습니다.
7년 선배인 신 선배가 우연히 저를 만나 추천해준 책이 영국 경제학자 존 힉스의 <사회구조론 : 경제학 개론(The Social Framework : An Introduction to Economics)>과 전석담의 <조선사교정(朝鮮史敎程)>이었습니다. 청계천에서 구한 <사회구조론>은 사회과학 전반을 다루면서도 경제학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세상의 3분의 2가 경제라면 경제학은 한번 도전해 볼 만하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발행된 <조선사교정>의 저자는 유물사관에 입각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다 월북한 경성경제전문학교 경제학과 교수였고, 이 책은 일종의 좌익 교과서였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후 나름대로 시대에 대해 분노의 몸짓을 한 것은 그분을 통해 엿보았던
우리 시대에 대한 저항정신의 덕이 컸습니다.
대학생 때 완독했던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미국 유학 시절 거시경제학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미시경제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케인스라는 거물 경제학자가 나타났습니다.
“개별적으로 옳은 것이 반드시 전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라는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 , 예를 들어 저축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미덕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일반이론>을 발표하자 경제학계에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이처럼 몇 권의 책들은 젊은 시절 제 운명과 진로를 좌우할 정도로 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해야 합니다! 차세대 글로벌 리더인 여러분들은
세계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과 인간애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다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높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공공정신과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심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합니다.
두뇌만 가지면 위험하고, 가슴만 가져서는 공허합니다. 도서관에 불이 켜져 있는 한 미래는 밝다고 하지만, 젊은이의 미래는 들판에도 있고 공장에도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외치는 비판적 젊음,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젊음, 지구촌을 무대로 하는 개방적 젊음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세계를 가슴에 품는 인류보편의 인간애를 지니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만질 수조차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가슴으로 느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가슴으로 생각하고, 힘든 일일수록 가슴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가슴의 크기로 승부하는 것은, 잔머리로 상대를 시험하고 잔재주로 일을 꾸미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며, 훨씬 더 효율적이고 궁극적입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다는 자신감과 자긍심, 그리고 이 넓은 사회에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고 믿는 겸손함과 경건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눈앞의 명성에 눈이 어두워, 지위에 걸맞은 책무를 잊은 지식인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 준 것은 국어시간에 배운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이라는 단편이었습니다. 오래 전 떠나온 고향마을 언덕의 바위가 떠올라, 단편의 주인공처럼 바위를 간절한 바람을 키웠습니다.
고향에서 부지런히 농사를 짓던 이웃 아저씨들과,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들과,
세파에 시달려 온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도 함께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식구들을 먹이고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새벽부터 논밭으로 달려 나가고, 시장에서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아우성을 치는, 이 땅의 농부와 상인들 그리고 공장에서 날밤을 새우는 근로자들이야말로 존경받아야 마땅한 이 땅의 주인공입니다.
공자가 자신의 수레를 모는 번지에게 가르친 인(仁)은, 나 자신을 사랑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뛰어난 제자 안연에게는 인(仁)이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망ㆍ감정을 이겨내고 사회적 법칙인 예를 따르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조했습니다.
날카로운 지성은 따뜻한 감성을 감싸야 하고, 따뜻한 감성은 외유내강의 덕성으로 품어 안아야
한 인간이 완성됩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리더십, 그리고 사사로운 인연을 뛰어넘은 공평무사한 리더십을 함양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강자를 위해 봉사하는 데 쓰지 말고,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선량한 리더십을 길러야 합니다.
더 큰 가슴을 열어 보일 때 진실한 대화가 가능하고, 상대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넉넉한 가슴으로 상대를 대할 때 비로소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햇빛을 본 것 자체가 행운이었습니다. 딸과 아들을 합쳐 열을 낳고,
그 가운데 몇을 병으로 잃으신 어머니는 마흔이 넘은 연세에 다시 임신을 하자 더럭 겁부터 나셨답니다. 그래서 저를 안 낳을 작정으로 익모초라는 독한 약초를 진하게 달여서 오랫동안 장복을 하셨습니다. 익모초에 관계없이 저는 태어났고, 어머니 뱃속에서 내성을 길러서 그런지
감기 한번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후 저는 온 세상이 베풀어 주는 갖은 혜택과 세상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온갖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를 키워준 따뜻한 세상과 내가 만난 세상 사람들의 온정 덕이었습니다.
지난 60여년을 더듬어보니, 정말 제 생애는 이름 그대로 ‘운이 가득찬’ 삶이었습니다.
가난해도 품격을 지키라던 부모님, 수호천사 역할을 해주신 스코필드 박사님, 취업부터 결혼까지 또 한분의 아버지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신 조순 선생님 등등 삶의 고비마다 은혜와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 덕분에저 역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초등학교 때 놀러가서 뵙게 된 친구 아버지, 이영소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님의 중학교 학비 지원 약속에 힘입어 경기중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학장님의 소개로 같은 수의과 교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제 인생의 행운이자 전환이었고, 행로의 영원한 나침반이었습니다. 조순 선생님은 흔들리던 제게 경제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고, 제 학문과 인생과 가족의 영원한 스승이 되어 주셨습니다.
제 자신을 되돌아 볼 때마다 E.H. 카의 ‘우연을 매개로 한 역사적 필연’이라는 역사적 법칙이 저라는 개인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저는 여지껏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거나, 대한 적은 없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들은 짧은 3박 4일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함께 보냈습니다.이 만남을 소중히 여기시고, 교류하십시오. 인생의 처음과 끝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에서 출발합니다.
돈을 남기면 하수, 업적을 남기면 중수, 사람을 남기면 고수란 말이 있습니다. 친구와 은인은 형제나 연인처럼 같이 나눈 것도 없는데, 나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미래의 글로벌 리더로 가는 길도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람에 대한 지식이 산지식이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지식이 참지식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활기찬 시절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하늘은 결코 더 큰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소명은 학창 시절부터 창조력을 키우며, 자기 조국을 넘어 지구촌의 내일을 책임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을 공부하거나 잘 알려진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젊은이에게 주어진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영역에 과감히 도전해야 합니다.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의 필수조건입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의 몫이며, 인생의 가치는 자신의 몫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준비를 마쳤으면 기회를 찾아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행운을 잡을 수 있습니다. 행복과 행운은 명사가 아니라 매순간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제주도 역시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꿈이 실현된다면, 제주도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면서도 자연의 원형을 가장 잘 보전한 환경귀감 사례로, 지구촌 환경보전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을 지키고 보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앞장서서 하나뿐인 지구도 지키고, 자연과 인간과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땅, 제주도를 지구촌 곳곳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자기 몸을 뜨겁게 태워주는 연탄 한 장이 되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인류애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고, 세계를 품기 바랍니다.
항상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