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에 이어 요즘엔 지리산 둘레길이 대세다 . 둘레길의 미덕은 조용한 발걸음에 있다 .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좋지만 시끌벅적한 소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 사뿐히 내려앉는 낙엽처럼 조용히 걸어야 제 맛이다 . 그래야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이 걸쳐 있는 3 개도 ( 경남 , 전북 , 전남 ) 5 개 시 ㆍ 군 ( 구례 , 남원 , 산청 , 하동 , 함양 ) 16 개 읍 ㆍ 면 80 여 개 마을을 잇는 길이다 . 현재 전 구간이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모두 연결될 경우 장장 300 여 km 에 이른다 . 지리산길은 넘어가기보다 에돌아가는 수평의 길을 제안한다 . 산이 있다면 정상에 오르고 , 고개가 있다면 고개를 넘어가는 일에 치중하지 않아 더욱 여유 있다 .
둘레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 마을 사람들이 들일 나가던 길 ,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길 , 장보러 가던 길이였다 . 그런 길들을 모아 지리산 둘레를 둥글게 연결했을 뿐이다 . 낯선 나그네에게 길을 열어주고 , 헤매지 않도록 안내판을 세워둔 것이다 .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지나고 있다 . 외지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놀랍기도 하고 , 한편 반갑기도 한 심정으로 길을 걷는 나그네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 그러니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거나 농작물을 밟거나 따는 행위는 조심하도록 하자 .
둘레길은 어느 구간을 선택해도 지리산이 주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아기자기한 시골 정경을 느낄 수 있다 . 다만 숲길과 고갯길 , 옛길 , 강변길 , 논둑길 , 마을길 등 구간에 따라 특성이 다르니 걷는 이의 체력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 1~5 구간을 찾는 둘레꾼이 많은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둘레길 7 구간을 추천할 만하다 . 산청군 어천마을에서 덕천서원이 있는 원리마을을 잇는 구간으로 아름다운 계곡과 숲길 , 오지 마을인 마금담 마을 , 역사적인 볼거리가 있는 단속사지 , 산천재 , 덕천서원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
7 구간 코스는 어천마을 – 청계저수지 – 점촌마을 – 정당매 – 단속사지 – 운리마을 – 백운계곡 – 마근담마을 – 덕산재 – 덕산시장 – 덕천서원으로 이어지는 길로 21.5km 정도 된다 . 7~8 시간을 걸어야 하는 긴 구간이므로 아침 일찍 출발해야 저물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
먼저 시작점인 어천마을을 나서 1001 지방도를 따라 걷다보면 청계저수지와 점촌마을이 나온다 . 지리산 자락인 웅석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 봉우리는 곰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진다 . 길은 다시 정당매와 단속사지로 이어진다 . 절은 무너져 내리고 삼층탑 2 기만 남아 있는 단속사지는 신라 경덕왕 때 신충이라는 신하가 지리산으로 출가해 지었다고 한다 .
호젓한 숲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백운계곡과 산청의 오지마을인 마근담에 이른다 . 막힌 담에서 유래했다는 지명만 봐도 얼마나 깊은 골인지 알만하다 . 긴 임도를 걸어 내려가면 남명 조식이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산천재가 나온다 . 조식은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거두로 알려진 인물이다 . 명종 , 선조에게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지만 한 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는 데만 힘썼다고 한다 .
이곳의 옛 지명인 덕산을 따라 덕산재라고도 불리는 산천재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440 년의 매화나무가 있어 인상적이다 . 이 남명매는 강회백이 젊은 날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는 정당매 , 원정 하즙이 심은 남사마을의 원정매와 더불어 ` 산청 3 매 ` 를 이룬다 .
남명 선생 관련 유적지가 한군데 더 있는데 7 구간의 끝 지점인 덕천서원이다 .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선생이 강학하던 자리에 제자들이 서원을 세우고 공부했다고 한다 .
시천면은 산청 곶감의 생산지로 마을 앞 좌판이나 덕산시장에서 곶감을 보면 옛날 임금께 진상하던 곶감을 한번 맛보는 것도 좋겠다 . 덕산장날 (4, 9 일 ) 에 찾게 된다면 지리산에서 채취한 온갖 산나물이며 산약초들을 구경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