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원 = 정현철 기자 ) 영국 런던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을 차로 내려가면 영국의 남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 그곳으로 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잉글랜드의 남부 시골 마을에서는 마치 시간이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적어도 수세기 전 그 집들이 세워졌던 그 시절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삶이 거기서는 그냥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절박하고 각박한 세상에 그런 마을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듯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 수백 년은 되었음 직한 나지막한 집과 반질반질하게 손이 간 정원에는 어느 계절에 가도 온갖 화초가 만발해 있다 . 열 채도 안 되는 마을 상점들은 구멍가게라고 불러야 마땅할 크기이고 창문 진열장에는 아기자기하게 물건들이 장식품처럼 진열되어 있다 .
대낮인데 마을 길거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 시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으로 밥을 먹고 사는지가 이런 마을을 지날 때마다 정말 궁금하다 . 가끔 주인 모르게 산책 나온 개들만 하품을 하면서 마을 가게를 기웃기웃하는 길손들을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
그런데도 이런 마을들이 영국에서 가장 잘 사는 마을들이라니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다 . 이렇게 신비스럽도록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과 들판과 언덕의 3 개 주군 ( 州郡 `county) 인 서리 , 켄트 , 서섹스를 나는 영국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
영국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브라이턴 (Brighton) 은 해외로 아직 여행을 가지 않으나 기차여행이 시작되던 빅토리아 시절 (1837~1901 년 ) 에는 잉글랜드 북서부 바스 (Bath), 블랙풀 (Blackpool) 과 함께 영국인의 3 대 휴양지였다 . 특히 브라이턴은 갓 결혼한 부부의 신혼여행지였다 .
영국 해변가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높고 크고 길게 바다로 들어가게 지어진 목조부두 (pier) 가 있다 . 브라이턴에도 부두가 두 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 하나는 불이 나서 바다 중간에 무슨 설치미술처럼 앙상한 기둥들의 구조물로만 남아 있다 . 그런 곳에는 항상 싸구려 기념품과 잔돈푼을 노리는 사행성 게임기 , 얄궂은 그림이나 내용의 엽서와 발행된 지 상당히 오래된 듯 염가로 파는 각종 사진집들을 파는 가게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들이 손님들을 부른다 .
이런 부두에 오면 영국인들은 부모님 손을 잡고 나들이 와서 아이스크림 먹었던 어릴 때나 친구들과 낄낄거리면서 배회하던 십 대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누구나 느낀다 . 그래서 끝이 언제 날지 모를 정도로 오래가는 경제불황으로 살기가 힘들어진 영국인들이 다시 국내여행을 하기 시작하는데 브라이턴도 요즘 다시 뜨는 관광지 중 하나다 .
이제 브라이턴 해변을 오른쪽으로 끼고 드라이브를 시작하자 . 목적지는 깎아 지른 듯한 하얀 절벽으로 유명한 비치 헤드 (Beachy Head) 이다 . 162m 의 절벽은 정말 흰 페인트를 칠한 듯 완벽한 백색이다 . 절벽 끝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 . 철조망도 가드레일도 없다 . 정말 바람 불 때 균형을 잘못 잡으면 그냥 끝이다 . 그래서 투신자살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만 그래도 아무런 장치가 없다 . 영국인들이 자살 장소로 가장 아름답다고 칭하는 경치이다 .
그런데 사실 여기 비치 헤드를 브라이턴에서 그냥 차로 휙 달려오면 정말 기막힌 경치를 놓치게 된다 . 이 길을 제대로 보려면 브라이턴과 비치 헤드 사이에 있는 시포드에서 내려 해변 길 (20 ㎞ ) 을 걸어서 와야 한다 . 쉬지 않고 마냥 걷는다면 5 시간에 오지만 누가 이 길을 그냥 달리듯 오겠나 ? 멀리 보이는 비치 헤드와 중간의 칠자매라고 불리는 세븐 시스터즈 (Seven Sisters) 절벽을 보면서 그냥 걸어오는 사람은 없다 . 반드시 경치를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 그것도 앉아서 조용하게 … .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온 삶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서 영국 도보여행자들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도보 코스를 걸어야 한다 . 종착지 비치 헤드 언덕에는 펍이 있다 . 그곳에서 ‘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시면 ’ 시인 박인환의 시 ‘ 목마와 숙녀 ’ 처럼 우리 ‘ 인생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
말이 나온 김에 ‘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 ’ 가 깃든 ‘ 몽크 하우스 ’ 를 한 번 들러보자 . 별로 멀지 않다 . 자동차로 30 분 거리다 .
로드멜이라 불리는 인가가 10 채도 안 되는 정말 조그만 마을에서 울프 부부는 결혼 7 년 뒤인 1919 년부터 1941 년 , 즉 버지니아가 자살할 때까지 22 년을 같이 살았다 . 그러고도 심신이 병든 아내를 평생 옆에서 돌 본 순애보의 전형 남편 레너드 울프는 이집에서 1969 년 눈을 감을 때까지 28 년을 더 살았다 . 집 안은 흡사 버지니아 울프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로 보존하고 있다 . 하얀 침대보가 씌워진 그녀의 창가 싱글 침대가 그렇게 외로워 보인다 .
이왕 온 김에 근처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 바네사 벨의 집인 찰스턴 팜 하우스도 들렀다 가면 금상첨화이다 . 차로 20 분 거리다 . 화가였고 실내 장식가였던 안주인이 구석구석 잘도 장식과 치장을 해 놓았다 . 벽이나 문 하나도 그냥 두질 않았다 . 모든 곳에 채색이 되어 있다 . 이집이 바로 유명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주말 토론 장소였고 숙소였다 . 울프 부부와 언니 벨 부부를 비롯해 블룸스버리 그룹의 ‘ 개방결혼 ’(open marriage) 의 난장판이 여기서 벌어졌다 . 아무리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사회였다고는 하지만 참 대단하다는 감탄 내지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 홈 카운티 ’(Home County) 와 ‘ 사우스 다운스 ’(South Downs) 라 불리는 이 지방의 평화를 누리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 . 휴일 오후 점심 뒤 훌쩍 드라이브 나와서 시골 마을 펍에서 차 한 잔에 머리가 핑 돌 정도로 단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사치가 내가 영국에서 ‘ 유형생활 ’ 을 하는 보상이다 . 버지니아 울프 몽크 하우스 바로 앞에 그런 펍이 있음은 참 위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