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여름 빼면 뭐 있나?” VS 바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게 피서냐?”

488

일찍이 휴가비를 넉넉히 저축해둔 사람이야 비행기타고 준비된 휴양지에서 안락한 휴가를 즐기면 된다지만, 올드보이 ‘오대수’처럼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사는 기자에게 넉넉한 휴가비란 사막에 수박밭만큼이나 낯선 단어다. 그렇다고 여행지 기자라는 신분으로 올 여름을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은 뜨거운 여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꿋꿋하게 밀리는 도로를 뚫고 산이든 바다든 계곡이든 마감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파라다이스로 떠나는 수밖에… 결심을 굳혔다면 이제 기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어린 시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갈림길에서의 혼란을 다시금 재현하는 어려운 결정이다.
말초신경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비키니가 부르는 바다와 마디마디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차가운 계곡을 품은 산. 그들의 끝장 토론을 이제 시작한다. 이를 위해 산 전문가로 통하는 등산 동호회 회장님과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모임의 집행부가 기자에게 도움을 줬다. 산과 바다의 끝장 토론은 이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구성했다.

사회자=바야흐로 여름입니다. 다들 휴가 계획은 잡으셨지요?

바다=아, 여름하면 바다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난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바다가 제격입니다. 시원한 파도소리와 고운 모래해변은 그야말로 여름의 상징이죠. 물론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를 자랑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보너스죠! 보너스.
산=여름휴가가 눈요기나 하라고 주워지는 것은 아니죠. 인터넷만 잠깐 찾아봐도 널렸는데…바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에서 진정한 휴식은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 산에는 시원한 계곡이 바다역할을 대신하구여.
바다=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휴가라… 참 말은 좋네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한 벌에 몇 십만 원 하는 등산복을 구비하고, 또 등산화까지 착용해야 하는 건가요? 울창하고 높은 산을 오르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지는 의미라면 바다도 할 말 많아요. 저 끝없는 수평선의 아득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바다를 무시하고 싶진 않아요. 일반적으로 우리 주변에 오를 산은 충분하지만, 바다까지 가려면 휴가기간 외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까요. 다만 해변의 모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해변이나 그로 인한 수질오염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여름철 바닷가 한번 다녀오고 나서 피부병이나 안과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다=아니 그렇게 따지면 산에 올랐다가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는 사고도 얼마나 비일비재합니까? 더군다나 평소에 체력관리 못한 사람들은 휴가 첫날 산에 올랐다가 골병든 삭신을 다독이다보면 어느새 휴가기간은 싹 지나가버리죠.
사회=자자. 상대방에 대한 비방 보다는 각자가 지닌 장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산=이제 등산은 만인이 즐기는 레포츠입니다.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면서 이제 아이와 여성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요. 또 우리나라에 가득한 다양한 산들은 각자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백두대간의 중심인 가리왕산은 주목군락지가 있고 석회암 절리동굴인 얼음동굴이 특징입니다. 또 덕유산은 향적봉에서 남덕유까지 17㎞에 이르는 장대한 산줄기가 자랑입니다. 또 하나의 산이 계절마다 혹은 매일매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산이 지닌 매력입니다.
바다=우리나라는 산이 가득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가입니다. 게다가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3면에 접한 바다는 각각의 특징을 지니고 있죠. 생태의 보고 갯벌이 펼쳐진 서해, 남국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남해, 완벽하게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동해바다까지. 산이 다양한 만큼 바다도 바라보는 시선과 태양빛에 따라 무수히 많은 표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얀 모래사장이 아니라 검은색 자갈들이 흑사장을 이룬 학동 몽돌해변이나 기암괴석이 으스대는 동해 추암해변은 그야말로 빛의 마법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몇 군데 지역을 추천해 주셨는데, 산은 이런 곳이다, 바다는 이런 곳이다를 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나만이 알고 있는 지역을 추천해주세요
산=누가 뭐래도 지리산이죠. 전 시 한수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뱀사골 지나 노고단 가는 길 안개가 내렸다/느닷없이 나무의 뼈들이, 그 뼈를 싸고도는/수액이 빛나는 게 보였다/나이테가 견디어 온 한 해 한 해의 금들/나무의 아픈 허리를 자꾸 흔들어댔다/임걸령표지판 아래 꽃들이 길을 열어보였다’

지리산의 사계를 고스란히 온고 오는 구름과 야생화는 산의 웅장함과 아기자기함을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물론 다들 알고 있듯이 산행 초보자가 지리산을 즐기기엔 무리가 따르는 산이죠. 그렇기에 산에 대해 알아갈 수록 산사나이들은 지리산의 매력으로부터 헤어 나오긴 어렵습니다.
바다=시로 지리산을 표현하신다면 저도 문학가의 힘을 빌리겠습니다. 고산 윤선도가 우리 문학사의 굵직한 획을 그은 작품을 남긴 곳. 바로 보길도 예송리 해변입니다. 이곳을 대표하는 것은 1㎞에 걸쳐서 해변을 뒤덮은 깻돌이라 불리는 까만 자갈이예요. 이 곳 해변을 따라 이어진 상록수림 또한 바닷가근처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풍경이죠. 동백나무를 비롯해 생달나무, 광나무, 멀구슬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 사이로 이름 모를 새들이 진저리치듯 울어대는 모습.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사회=과연 산이나 바다 무엇을 선택하기 어려운 만큼 각자의 매력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관광자원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 토론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관광지 보존과 개발, 결국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요.
바다=사실 정확히 알고 보면 우리나라만큼 천연 관광자원이 가득한 곳도 드물지요. 외국의 유명관광지와 비교해서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도 하곤 하는데 그런 무식한 말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자연경관은 그야말로 차별화되는 관광콘텐츠입니다. 대한민국 지도를 거꾸로 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바다’를 통해 관광 대국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만 해도 마리나나 유람선 잠수 등 관련 산업이 발달해 있는 반면 우리는 겨우 해수욕장 관리를 운운하는 정도였어요. 해양 관광은 테마가 풍부한 관광자원입니다.
산=저는 중동의 두바이처럼 천문학적 거금을 들여 관광명소를 건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전통의 초가집 한옥마을, 강물에 나부끼는 황포돛대 등 지나간 문화조차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문제는 그러한 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천혜의 자연자원뿐 아니라 5000년 유구한 역사가 스민 문화재적 자치를 지닌 사찰이나 물건도 충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요. 그렇기에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이 복원을 통해 새로운 유산으로 다시 태워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