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반도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는 우리에게 축구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국가이다 .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 작은 나라가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은 휴양지로 꼽힌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이나 달마티아 해변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등 세계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
여행자들의 기착지 자그레브
한때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발칸의 6 형제 가운데 하나인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중부유럽 교통의 요지로써 동과 서를 향하는 여행자의 기착지로 이름을 알렸다 . 그렇기에 자그레브는 동서양의 가교다 . 러시아를 횡단해 런던까지 이어지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자그레브를 통과하며 이스탄불과 베오그라드 , 빈 ( 비엔나 ) 과 서유럽이 연결되어 있다 .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 ( 다뉴브강 ) 지류인 사바강과 도심을 감싼 메드베드니카 산은 흡사 서울을 떠올리게 한다 . 지난 1991 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겪게 된 처절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옛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
자그레브 역사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그라덱 (Gradec) 과 캅톨 (Kaptol) 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언덕에 집중돼 있다 . 이 도시는 크게 3 부분으로 나눠진다 . 중세도시의 품격 있는 건축물이 가득한 올드타운과 크로아티아 경제 중심지임을 실감할 수 있는 상업지구 로워타운 , 그리고 고층건물이 늘어선 신도시 신 자그레브까지 .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라면 으레 그렇듯 구획 별로 정리된 시간의 흔적들이 마치 문신처럼 도시에 새겨져 있다 .
평화롭지만 지루하지 않은 도심여행
자그레브 도시 여행은 자그레브 중앙역 광장에서 시작한다 . 역 광장에 늠름히 서있는 크로아티아 국부 토미슬라브 왕의 동상을 지나쳐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반 요셉 옐라치치 광장에 이르는 길이 자그레브 관광의 핵심 루트다 . 스토로마이어 , 즈린스키 등의 예닐곱 개 공원이 이어지는 이 코스는 말발굽과 같다고 해서 ‘ 레누치의 푸른 말발굽 ’ 으로 불린다 . 레누치는 18 세기 자그레브를 설계한 도시설계가로서 영화에나 나올법한 별칭을 얻게 되었다 . 이 코스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작은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리고 거대한 수목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될 만큼 상쾌하고 평화롭다 .
자그레브의 심장 옐라치치 광장 . 많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약속 장소로 이용되고 그렇기에 가장 많은 자그레브 시민들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 1848 년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옐라치치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광장이다 . 이 광장부터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 트램만이 들어올 수 있는데 자그레브에서 가장 복잡하고 번화한 지역이다 .
옐라치치 광장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자그레브에서 가장 유명한 상징물 자그레브 대성당 (Zagreb’s Cathedrale) 을 볼 수 있다 .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하늘을 지르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 성 스테판 성당 ’ 이라고도 불린다 .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대성당과 이름이 똑같은 이 성당은 100m 가 넘는 2 개의 첨탑이 인상적이다 . 성당 앞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황금빛 ‘ 성모 마리아 ’ 가 감탄을 자아낸다 .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 반짝이는 마리아상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어 보는 이를 온기로 감싸준다 . 성당 내부는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는 의자와 대리석 제단 , 바로크풍의 설교단 , 13 세기 프레스코화 등으로 채워져 시간에 녹슬지 않은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관광객을 압도한다 .
성당을 나와 곧 발길에 닿는 돌락 시장은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 재래시장 특유의 활기가 넘쳐흐르는 이곳에 이르자 이내 아드리아해 (Adriatic Sea) 를 내리쬐는 햇살을 머금고 자란 향긋한 과일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 이외에도 자그레브 중심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 (Lotrscak Tower) 탑이나 타일로 지붕을 엮어 크로아티아 국기를 떠오르게 하는 성 마르크성당 (St. Mark Church) 은 구시가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
자그레브 여행의 묘미는 걷는데 있다 . 시가지가 그리 크기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명한 건축물들이 구시가지에 밀집해 있는 이유가 크다 . 산책하듯 걸으며 때로 푸른색 트램을 타고 자그레브 시민들의 삶 곳곳을 누비는 데 하루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오판은 금물이다 .
역사 속에 녹아 있는 문화의 향기
하루 동안 자그레브를 순회했다면 이제는 보다 세밀하게 크로아티아 문화를 감상할 시간이다 . 자그레브에는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 , 공연장이 가득하다 . 저마다의 특징과 분위기로 역사 속 크로아티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
자그레브 중심가에서 서쪽에 위치한 미마라 (Mimara) 박물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현대미술 전시관이다 . 1987 년 문을 연 이 박물관에는 유럽뿐 아니라 쉽게 접하기 힘든 동유럽 , 중동의 작품들도 꽤 많이 소장하고 있다 . 사실 박물관 내부에 소장된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미마라 박물관의 외형은 하나의 커다란 예술품 그 자체다 . 3,700 여점의 작품을 기증한 ‘ 안테 토피치 미마라 ‘ 의 이름을 딴 이 박물관에서는 고흐와 렘브란트를 비롯한 유명 화가들의 회화 작품 , 다양한 종류의 조각품 , 유리공예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
자그레브를 하루 만에 모든 관광을 끝냈다면 그 말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 일목요연하게 정돈된 문화재와 자연 그 자체가 자그레브 방문자에게 나침반이자 축소된 지도이고 ,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자그레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가슴 깊은 감동을 알고 싶다면 여행자는 더 많은 시간을 자그레브와 공유해야 할 것이다 .
가는 길
전세기를 제외하면 인천국제공항에서 크로아티아로 바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 일단 유럽의 주요 도시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만일 대한항공을 이용한다면 인천 ~ 빈 직항 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비행시간은 약 12 시간 . 두브로브니크까지 비행기로 약 1 시간 30 분 정도 소요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