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산사] 수종사

흙빛 구름이 강 아래로 짙게 깔린다 . 세찬 비바람을 만난 탓이다 . 가슴 속에선 몽글몽글 그리움이 일렁인다 . 언제부턴가 비 내리는 날이면 동일한 감정이 반복된다 . 그리곤 홀연 떠난다 . 잊혀질듯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살포시 뿌려놓았던 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몸을 섞어 만들어내는 큰 물 , 두물머리다 . 비가 그친 후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녘 호수를 본적이 있는가 . 고요해서 좋고 , 아무도 모르게 미치도록 그리워할 수 있어서 좋다 . 그리움을 토해내듯 가파른 흙산을 오른다 . 양수리의 수채화풍 정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운길산이다 . 운길산 중턱 어디선가 가슴을 마구 휘젓는 소리가 들린다 . 풍경소리다 . 은은한 녹차향이 풍경소리에 실려 코끝에 젖어온다 . 그곳은 작은 절집 수종사였다 .

버릴 수 없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해답이거늘 …


 수종사로 올라가는 명상의 길, 그리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석간수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주저한다 . 설령 바지는 젖을지언정 두물머리는 비가 오는 날 , 혹은 비가 그친 후 찾는다면 그 감동이 오히려 배가 된다 .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휩싸인 호수는 꿈을 꾸듯 비현실적인 몽상과도 같은 그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는 조선 초기 학자인 서거정에 의해 동방의 사찰 가운데 제일의 전망이라는 칭송을 얻기도 했을 만큼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 허나 최고인 만큼 가는 길은 그리 수월치 않다 . 채 포장도 되지 않는 좁은 흙바닥 길인데다가 움푹 패인 요철로 차 한대도 조심스럽게 지나가야할 형편 . 경사도 아주 가파르다 . 5 분도 지나지 않아 차를 두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

‘ 드르륵 드르륵 ’ 돌 밀리는 소리에 , 요철에 끼인 듯 타이어는 헛바퀴만 돈다 . 아뿔싸 ,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무 타는 냄새까지 난다 . 마음이 불안해진다 . 내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이 차가 조금이라도 흠집날까 노심초사다 . 이것이야말로 집착이구나 . 교묘하게 시간을 잡아먹고 단순한 기쁨까지도 가로막는 집착 . 물건에 대한 집착은 사람에 대한 집착보다도 몇 곱 절 더 질긴 듯 하다 . 머리가 지끈거린다 . 버릴 수 없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바로 집착에 대한 해답이거늘 … . 금세 차로 오르기를 포기하고 한 편에 세워두고 걷기 시작한다 .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 시원한 냉수 한 모금이 그리워진다 하더라도 마음은 이렇게 평온한 것을 … . 7 월의 녹음 짙은 숲이 그늘이 되어주고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말동무가 되어주니 숨은 헥헥 차올라도 차에 대한 미련일랑 사라진지 오래다 .

처마 끝 풍경에 바람의 길을 묻다
수종사는 규모가 작은 사찰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찬사를 받았던 절집이다

30 여분 올라갔을까 . 어느새 수종사 일주문 앞 . 그리고 명상의 길로 접어든다 . 비온 뒤라 그런지 산자락에 드리운 더없이 맑은 기운에 온 몸에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 개운하다 . 마치 객들을 맞이하는 냥 눈앞에 커다란 석조불상이 나타난다 .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는 다시 길을 오른다 . 갑자기 산바람이 부는 듯 싶더니 어디선가 뎅그렁 풍경소리가 들려온다 . 수종사가 다다랐음이다 . 절집의 유래는 이렇다 . 오대산에서 요양하다 배를 타고 환궁하던 세조는 두물머리 쯤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게 된다 . 소리를 좇아 들어선 곳은 운길산의 자그마한 동굴 . 그곳에 18 나한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신비하게 여겨 절을 짓도록 하고 , 이 굴에서 떨어오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린다 하여 수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한다 . 그렇다면 남도의 어마어마한 사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그맣고 아담한 사찰인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글속에 시조 속에 오르내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 아마도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일렁이게 할 만큼 청아한 소리를 내는 이 그윽한 풍경소리에 이끌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그윽한 풍경소리에 뺏긴 마음 , 맑은 녹차 향 앞에 내려놓고

  다도의 예를 가르쳐주고 있는 팽주보살과 삼정헌 내부의 모습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 카메라 하나만 덜렁 둘러매고 온 터라 우산이 있을 리 만무하다 . 사찰 초입에 보이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에 일단 몸을 피해본다 . 뜻밖의 행운이었다 . 한 여름 비가 쏟아지는 삼정헌의 통유리 창 . 안개가 깔린 두물머리의 풍경이 한 폭에 찍히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 팽주 보살 ( 차를 따라주는 사람 ) 이 가만 다가와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을 건넨다 . 그리곤 영 익숙치 않는 객을 위해 친절히 다도의 법을 가르쳐준다 . 해남에서 온 설록차이며 ,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스님께서 무료로 드리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 한국 최고의 물맛이라 전해지는 수종사 석간수로 우려낸 그윽한 설록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풍경은 실로 한잔에 몇 만원씩 하는 인테리어가 멋진 어느 강변의 카페보다도 더 훌륭했다 .

묵언 . 누구나 이곳에서 서면 너무나 아름다운 정경에 마음을 뺏겨 도리없이 묵언할 수밖에 없다.
묵언. 누구나 이곳에서 서면 너무나 아름다운 정경에 마음을 뺏겨 도리없이 묵언할 수밖에 없다

“ 그럼 오는 손님들 모두 무료로 드리는 건가요 ? 그렇게 드리면 돈이 … .”
“ 네 , 수종사에 오시는 분들 누구든 이 곳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편히 쉬었다 가라고 만든 곳이 바로 이 삼정헌이지요 .”
속세에서의 물욕이 그대로 발가벗겨진 것 같아 말끝을 살짝 흐린다 . 그렇다 . 삼정헌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 한잔의 베품을 선사하는 주지스님의 마음처럼 깊은 산속 옹달샘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 다산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등 옛 시인 묵객들이 교류하며 차를 즐겼다고 전해지는 수종사에는 그래서 수많은 문인들이 남긴 글귀들이나 시조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
묵언하라 ! 절경에 넋을 잃어 그 마음 빼앗기더라도

대웅전의 앞마당에 있는 팔각오층석탑

수종사는 국보나 보물이라고 내세울 것도 없이 그저 대웅전과 산신각 , 응진전 , 요사채가 전부다 . 허나 그 규모는 작지만 모자람도 없이 넘침도 없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 삼정헌 옆 ‘ 黙言 ’ 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는 나무로 만든 팻말이 눈에 띈다 . 검을 묵 말 언 . 순간 영화 달마야 서울가자에서의 묵언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지만 금세 그 의미를 깨닫고는 입을 다문다 . 세상사 시끄러운 일들 모두 수종사에서 다 벗어버리라는 뜻과 함께 묵언 앞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정경에 넋을 잃고 마음을 빼앗겨 도리 없이 묵언할 수 밖에 없음을 아는 부처님의 뜻일 게다 .
해탈문의 모습. 양쪽 담장 중에 왼쪽 담장 한면이 비어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웅전 앞에 서니 멀리 북한강과 함께 양수리 강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처마 끝 풍경들은 바람이라도 불새라면 그윽한 소리를 뿜어댄다 .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 조그만 해탈문을 지나면 해우소다 . 사람의 생리작용을 처리하는 화장실이라지만 해우소 역시 세조가 기념으로 심었다는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가 배경이 되어주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 해우소와 해탈문 그리고 은행나무라 … . 참으로 묘한 조합이다 .

세조가 심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 수종사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절을 찾은 이들이 세운 듯한 작은 돌탑들이 옹기종이 서 있다 . 멀리 양수리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나씩 쌓아올린 돌에는 과연 무슨 소망이 들어있을까 . 그들의 소망이 가만 비를 통해 가슴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 질퍽질퍽한 산을 내려와 차에 몸을 싣는다 . 시동을 켜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듣고 싶던 옛 노래 ‘ 비와 당신의 이야기 ’ 가 울려 퍼진다 . ‘ 비의 낭만보다는 비의 따스함 보다 그날의 애절한 너를 … .’ 노래가사처럼 절집 자체의 낭만보다는 바람결에 그윽이 우는 풍경소리에 애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수종사 . 비가 오는 날이면 또 그 가파른 산길을 다시 오르고 싶어질 것 같다 .

< 여행 즐기기 >
▷ 함께 가볼만한 곳

다산 정약용 생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는 조선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고향이다 . 한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여유당은 유적지로 조성돼 그의 인품과 학식을 배울 수 있다 . 또한 정약용의 묘도 두물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

남양주종합촬영소
아시아 최대의 영화촬영소이다 . 또한 ,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는 관람체험시설은 오픈세트와 실내에 위치한 전시시설이 있으며 , 이중 주목할 만한 시설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 취화선 ” 이 제작된 민속마을 세트와 2002 년 가을에 개장한 영상 미니어쳐 체험전시관이 있다 .

자료출처:한국관광공사 손은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