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땅은 인간이 정복했다” 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계에는 아직도 미개척의 땅이 존재한다. Outback, 미듐 · 레어를 떠올리며 침이 고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아쉽게도 아웃백의 사전적 의미는 호주 오지를 뜻한다. 호주 자연의 미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자 수많은 사람이 구조요청을 하는 곳이 서호주 킴벌리 지역이다. 편안하게 즐기는 럭셔리 여행에 부족함을 느낀다면, 한 여름 습도 100%를 자랑하는 따끈한 서호주 오지로 떠나보자.
따끈따끈 서호주, 그 매력은…
서호주는 전체 호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크기의 주다. 약 210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지만, 수도 퍼스(Perth)에만 15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퍼스를 제외한 지역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쪽 킴벌리(Kimberley) 지역은 아웃백의 대표지로 영화 ‘Australia’ 의 촬영지기도 하다.
이런 킴벌리 지역에서도 벙글벙글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으로, 바다 속에 있었으나 해수면이 낮아지며 약 2천만 년 전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1980년대 우연히 인근을 촬영하던 방송사의 눈에 띄어 그 모습이 공개됐고 1987년에 푸눌룰루 국립공원 형성, 2003년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이후 수많은 사진작가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또, 그 이름에 걸맞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아웃백 경험을 선사한다.
근래에 발견된 지역답게 벙글벙글은 자신의 성역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퍼스에서 카나나라까지 국내선으로 가서, 다시 육로로 가거나 소형 비행기로 가야만 도착할 수 있다. 까다로운 접근성이 가벼운 투정이라면, 이곳의 기후는 가히 살인적이다.
일 년을 통틀어 여덟 달은 비가 오지 않으며 기온은 54°까지 치솟는다. 비가 잦은 우기는 하드코어와 익스트림이란 표현밖에 할 수 없는데, 습도가 무려 100%까지 올라간다. 여유 있는 호주인들 조차 킴벌리의 우기를 ‘자살의 계절’ 이라고 부른다니. 하드코어 캠퍼나 모험가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가 절절하게 묻어 나오는 부분이다.
일반 여행객은 육로를 이용해 인공 호수 ‘아가일’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광산 아가일 광산을 보며 아웃백의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국립공원 북쪽에는 독특한 지형의 에치드나 캐즘(Echidna Chasm)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에 자리한 캐세드럴 고지(Cathedral gorge)는 주차장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벼운 하이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좀 더 땀나는 모험을 원한다면 왕복 18㎞ 코스인 피카니니 고지(Piccaninny gorge)를 둘러보는 하루 일정을 선택해도 좋다.
오프로드를 즐긴다면 사륜구동차량을 렌트하는 방법도 있지만, 길을 안내할 가이드가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한국 두 배 크기의 아웃백에서 길을 잃고 생존법도 모르는 상황, 차마저 고장나면 집에 갈 수 있는 확률은 25% 미만으로 떨어진다. 일반 관광객은 숙식, 교통편이 포함된 투어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을 좋다.
벙글벙글? 싱글벙글 오지체험!
벙글벙글까지 여정은 대부분 근처 카나나라(Kununurra)에서 이루어지는데, 육로와 헬기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헬기로 이동하는 2박 2일 코스는, 첫 날 새벽 5시 30분 카나나라의 숙소에서 픽업이 이루어진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헬기에 오르면 눈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아웃백 지형이 펼쳐진다. 거대한 아가일 호수와 광산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은 ‘안’ 착하지만 많은 관광객이 선호한다. 푸눌루루 국립공원에 도착하면 간단한 아침식사 후 트레킹을 채비를 하는데, 코스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지만 지형 특성상 등산화를 추천한다.
노던 고지 (Nothern Gorges)를 지나 미니 팜 고지 (Mini Palms Gorge)로 이동하다보면, 자연이 창조한 놀라운 형태의 바위산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재미라면, 극단적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볼 수 있는 점이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싸이클론이 비를 뿌리다가도 몇 시간 후면 바짝 말라버리는 특이한 기후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가이드와 함께 걷는 동안 벙글벙글의 역사와 애버리진 부족의 얘기를 듣는 것도 트레킹의 묘미다. 애버리진족은 이런 극단적 자연 속에서 사는 법을 터득했고 지금도 살고 있는데, 가이드는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었을 때 해야 할 행동들과 생존법 등도 귀띔해준다. 이런 생존법들은 모두 애버리진족의 생활에서 배운 것들이다.
피곤하다고 일찍 잠드는 것은 킴벌리에서는 용서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 석양 때문이다. 해질녘, 바위산과 광활한 대지 사이로 비치는 석양은 온통 하늘은 붉게 채색한다. 그 모습은 남국의 석양과도 다르며, 아프리카 초원의 일몰과도 다르다. 오직 킴벌리만의 야생의 향기가 짙게 느껴진다.
숙소는 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위해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고 있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자.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 있고 거대한 텐트 안에는 싱글 침대 두 개가 놓여있어, 진정한 아웃백의 숙소를 기대한 여행객들에겐 오히려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식사는 캠프에서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탓에 소박한 재료로 만들어진 메뉴는 야생의 한가운데에서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식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바깥이 컴컴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TV 도 인터넷도 없는 그곳에서 참가자들은 대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팁이 하나 있다면, 자기 전 꼭 밤하늘을 봐야한다. 어릴적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던, 흔히 말하는 별이 쏟아질듯한 자연 그대로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다음날 아침은 자명종이 아닌 새소리로 깨어나, 벙글벙글의 심벌인 벌집모양 언덕을 볼 수 있는 코스로 떠난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어 캐세드럴 고지 (Cathedral gorge)에 도착하면 고대 원형 경기장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크게 퍼져, 조용히 말하던 참가자들이 놀라기도 한다.
3일째는 아침식사 후, 헬기를 타고 카나나라도 돌아간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미처 보지 못했던 벙글벙글의 모습을 하늘에서 바라보며 짤막한 여행을 추억할 수 있다.
벙글벙글 투어는 매년 4월에서 9월까지만 진행되는데, 다른 시즌에는 위험하거나 기후가 좋지 않아 캠핑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호주엔 오페라 하우스와 안락한 휴식만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여행 트랜드가 일탈의 경험과 고생(?)으로 바뀌어 가는 지금, 서호주로 익스트림 트레킹을 떠나보자. 폐 속에 쌓였던 도시의 매연과 온 몸의 스트레스를 벙글벙글의 뜨거운 햇살에 모두 태워 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