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년 역사에 빛나는 순례자들의 성지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며 , 각각의 종교가 내세우는 신념과 규율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 하지만 종교의 가장 큰 목적은 인간의 삶을 더욱 나은 쪽으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있지 않을까 .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신을 믿는 여부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 할 도시이다 . 인간은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 순례자 ’ 일 테니까 . 현재 속의 과거가 살아 숨 쉬는 세계 3 대 종교의 성지 ( 聖地 ), 예루살렘으로 떠나보자 .

낙타와 이스라엘 시가지 전경. 낙타의 평온한 모습이 도시의 모습과 어우러진다.
현재 속에 과거가 숨 쉬는 도시

다윗왕이 수도 예루살렘을 3 천여 년 전에 건설하고 , 그의 아들 솔로몬이 첫 성전을 건축한 이후 , 그 도시명은 바로 경이롭고 성스러운 도시 , 그 자체가 되었다 .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이기도 한 예루살렘 안에는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믿는 세계 3 대 종교가 공존하며 , 이 3 대 종교의 성지 ( 聖地 ) 가 곳곳에 있다 .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40 여 분 정도 달려 성도 ( 聖都 )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 이곳 동예루살렘에는 기독교 ,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의 성지가 한자리에 들어서 있어 ,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과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 유대인은 이곳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지만 , 기원후 70 년 로마군에 의해 회당은 불타고 , 유대인들은 무려 2,000 년 동안 세계를 떠도는 크나큰 아픔을 겪었다 . 기독교인에게도 예루살렘은 제 1 의 성지로 , 올리브산 ( 감람산 ) 은 예수가 예루살렘이 입성한 뒤 자주 찾았던 곳이며 예수가 부활 후 승천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 그 밖에도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 , 다윗왕의 무덤 등 상징적인 곳들은 무수히 많다 .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모리야 바위 위에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에게도 메카 ,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는 중요한 도시다 . 오늘날 예루살렘 성벽 안쪽에는 이슬람 사원인 알 아크사 사원이 있다 . 이처럼 세 가지 유일신 종교들은 이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 각 종교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성지순례의 절정을 이루는 중요한 성지인 것이다 .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 안에 있는 기독교 성지에 더 많은 이슬람인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와 독특한 문화가 혼재한다 .

통곡의 벽에서 비아 돌로로사까지

전 세계 유대인의 중요한 순례지인 통곡의 벽 (Wailing wall) 에 들어선다 . 현재의 예루살렘 성에서 헤롯왕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고 ,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는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의 성지로 점철되는 곳이다 . 하지만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으로 다수의 사상자까지 나게 돼 , 통곡의 벽에는 오랜 기간 이어진 슬픔이 묻어난다 .
통곡의 벽.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북적인다.비아 돌로로사 표지판. 총 14처소가 있는 슬픔과 고난의 길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 남자와 여자가 들어서는 입구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 복장도 민소매 셔츠는 허용되지 않으며 , 무릎 위 이상의 바지나 치마는 입으면 안 된다 . 또한 이곳에서 기도한 후 나올 때는 뒷걸음질 쳐 나와야 된다 . 이곳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각자 기도하거나 , 종이에 자신의 간구함을 적어 벽에다 끼어 넣는 사람들 , 아예 작은 책상과 의자에 자리를 잡고 성경을 읽는 이도 볼 수 있다 . 종교적 갈등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 짧게 기도하고 광장을 나와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박물관에 있는 고대이스라엘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보면 , 정말 정교하고도 세심하게 만들어 놓아 시선이 자연스레 머물게 된다 . 한참을 구경하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둥글게 생긴 흰 지붕의 건물을 보게 된다 . 그 유명한 사해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의 서적관이다 . 사해문서는 1947 년 2 월 , 한 베두인족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쿰란동굴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 우연히 발견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위대한 발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 귀중한 문서이다 .

이제 박물관을 나와서 다시 통곡의 벽 광장을 지나면 , 아랍 상인들의 상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 그 길을 따라 죽 걸으면 , 골목길 끝에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슬픔의 길 ) 가 있다 .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던 고난의 길이다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한발씩 올라가는 장면이 눈에 선해 , 벌써부터 눈이 시리다 . 약 1.6km 정도의 구간인 이 길에는 14 개의 처소가 있는데 , 예수의 마지막 여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표지가 곳곳에 있다 .
고대 이스라엘 미니어처. 사람들에 대비해 보면,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다.제12처소. 예수가 숨을 거둔 장소이다.
예수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다

비아 돌로로사의 마지막 유적지들이 있는 곳 , 성묘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를 찾는다 . 이 교회 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유해가 내려지고 , 묻혔다가 부활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서기 335 년 처음 세웠다 . 1960 년 본격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7 년 현재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 안으로 들어가면 , 성유석 ( 기름부은 돌 ) 을 볼 수 있는데 ,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기 위해 염했던 돌이라고 한다 . 순례자들이 뿌린 기름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돌을 손으로 만지며 , 그 당시 광경을 묘사한 모자이크를 바라보면 ,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든다 .

성묘교회 안에는 비아 돌로로사의 10 처소부터 14 처소까지가 있다 . 각각의 처소를 따라 걸어가면 , 예수의 옷이 벗겨지고 , 십자가에 못 박히고 , 숨을 거두고 , 종부성사가 이뤄져 무덤에 안장되기까지의 여정을 느낄 수 있다 . 긴 세월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와서 예수의 마지막 길을 순례했다 .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과 방문객들이 이 길을 걷고 있으며 , 성경에 쓰인 과거의 이야기들을 현재의 유적지들 속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 그야말로 과거의 현재가 끊임없이 이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

유대교와 기독교의 발원지이고 ,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곳이지만 , 전쟁과 파괴 , 지배가 반복된 불행한 도시이기도 하다 . 도시 하나가 수천 년 전부터 기구하고 복잡한 역사를 가져온 것이다 .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기구한 일생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 나라 잃은 유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맞물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종교적인 대립과 갈등보다는 우리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통곡의 벽에서 만난 휠체어를 끌며 성지순례를 왔다는 어느 노부부의 환한 웃음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

가는 길
현재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까지 직항노선으로 대한항공이 주 3 회 운항하고 있다 . 국영 이스라엘항공인 엘알과 터키항공 , 우즈벡항공 , 네덜란드항공은 북경 , 타슈켄트 , 암스테르담을 경유지로 운항하고 있다 . 직항의 경우 12 시간정도 소요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