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 추억과 공존하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 ( 避馬 ) 에서 유래했다 .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종로를 지나다 말을 탄 고관들을 만나면 ,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
이 때문에 서민들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길 양쪽에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다니는 습속이 생겼는데 ,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 서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피맛골 주위에는 자연스럽게 선술집 · 국밥집 · 색주가 등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했다 .
피맛골은 종로 교보문고빌딩 후문 ,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건물 샛길에 있다 . 교보문고 길 건너에도 피맛골이 있어 , 꽤 여러 군데 산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원래는 현재의 종로구 청진동 종로 1 가에서 6 가까지 이어졌으나 , 지금은 종로 1 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 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 매력적인 곳이다 . 지금도 길 양쪽에 해장국 · 생선구이 · 낙지볶음 · 빈대떡 등을 파는 식당과 술집 · 찻집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추억의 맛을 잊지 못하고 오는 단골손님들로 북적인다 .
1980 년대 초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 , 2003 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을 허가함에 따라 청진동 166 번지 일대부터 건축공사가 시작되었다 .2004 년 1 월 공사현장에서 조선시대 건축물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장대석 10 여 점과 기와 등의 유물이 발견됐으며 , 문화재철이 같은 해 4 월부터 신축공사터 2600 여 평을 시굴 · 조사한 결과 주춧돌 · 적심 ( 주춧돌 주위에 채우는 보강용 돌무더기 )· 다집층 등 건물터 흔적과 도자기 조각 등의 추가 유물을 발굴했다 .
이어서 2009 년 청진동 재개발로 600 년간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고 서울의 전통 거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재기됐다 . 이에 기존 개발된 지역을 제외하고 종로 2 가에서 종로 6 가에 걸쳐있는 피맛골은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하여 예전 피맛골의 모습을 재현하기로 했다 .
재현된 피맛골은 기존의 피맛골에서 입점한 상점들과 외부에서 입점한 상점들이 옮겨와 깔끔한 외관을 보여준다 . 새롭게 입점한 외부 상점들 중에서는 커피숍과 호프집과 같은 기존의 피맛골에서 볼 수 없었던 상점들을 볼 수 있다 .
이제 피맛골을 찾는 사람들은 재현된 피맛골과 기존의 피맛골 , 그리고 재개발로 곧 사라질 피맛골을 동시에 만난다 . 사람들은 재현된 피맛골의 깔끔한 외관에 만족스러워하기도 하고 , 사라질 피맛골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 그리고 남아있는 피맛골에서 옛사람들과 옛날을 추억한다 .
초딩은 모르는 피맛골 길라잡이
서울 종로의 교보문고 뒤편 피맛골 골목은 공사 중 임을 알리는 바리케이드가 온통 시선을 가로 막고 있다 . 그리고 그 바리케이드에는 서울의 상징 ‘ 해치 ’ 가 그려져 있다 . 가만히 서서 ‘ 해치 ’ 의 설명을 읽어보니 해치라는 상상의 동물은 신라 시대부터 관복에 사용하는 등 일찍이 우리 민족과 연을 맺어 왔단다 . 오랫동안 우리와 더부살이를 해오던 해치는 새 보금자리에서만 서식하려나 보다 .
탑골공원 왼편에 자리한 사라져가고 있는 피맛골 주점골목을 찾았다 . 헝클어진 전깃줄과 과거가 고스란히 적혀있는 낙서된 골목 , 그 사이로 ‘ 우뚝 ’ 솟아있는 마천루와 양복을 차려입은 회사원들이 바쁜 걸음걸이로 지나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 아주 가끔씩 한가득 짐을 실은 자전거가 피맛골에 남은 몇몇 주점들 사이를 곡예 하듯 빠져나간다 .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려는 듯 열어놓은 ‘ 일지매 ’ 라는 주점의 출입문에는 ‘ 신경질 나게 싼 집 ’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촬영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주점 주인은 흔쾌히 허락하며 오히려 예쁘게 찍어달라고 너털웃음을 보인다 .
조금 더 걸어가 보니 주점 앞 파라솔 밑에 노인 4 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 피맛골의 과거를 회상하며 막걸리를 들이키는 듯 그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 노인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미래를 이야기 한다고 했던가 ?
이번엔 새로운 피맛골이 들어선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발길을 돌렸다 . 신도시에 새로 들어선 상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 젊은이들이 찾는 커피전문점이나 치킨 집 사이로 15 년간 족발 집을 하다 지난해 새로운 상점에 터를 잡은 ‘ 장원 족발집 ’ 을 찾았다 . 깔끔한 인테리어와 밝은 분위기에 젊은 커플도 부담 없이 담소를 나누며 피맛골의 신 ( 新 ) 향취를 즐기고 있었다 . 가게 주인은 기존의 낙후된 분위기에서 밝고 산뜻한 상점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손님들에게도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
르메이에르 피맛골을 지나자마자 안내간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한 노인을 만났다 . “ 이야기가 끊겼어 . 높은 양반들의 말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서민들의 골목을 손자에게 이야기 해줄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쉽지 ” 라는 노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
과거와 현재에 인위적인 금을 긋는 것은 그곳에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의 가변성을 ‘ 전통 ’ 이라는 이름으로 무턱대고 붙들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
전면적인 개발의 삽이 퍼올려지던 피맛골이 다음 달부터 옛 원형을 보존하며 단장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 변화하는 피맛골이 어떤 모습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 피맛골의 과도기는 이제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