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于山國) 」과 「耽羅國」이었던 울릉도와 제주도옛 우산국(于山國)을 찾아서 [Ⅰ]

‘ 우산국 ’ 이었던 ‘ 울릉도 ’ 와 ‘ 독도 ’

지금은 아름다운 우리 섬인 ‘ 제주도 ’ 와 울릉도 남쪽 바다 큰 섬 , 제주도 ( 濟州島 ) 는 탐라국 ( 耽羅國 ) 이었고 , 동쪽바다 울릉도 ( 鬱陵島 ) 와 독도 ( 獨島 ) 는 우산국 ( 于山國 )) 이었다 . 지금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

‘ 우산국 ’ 의 이야기는 이번 호부터 옛날 , ‘ 우산국 ’ 이었던 ‘ 울릉도 ’ 와 ‘ 독도 ’ 의 역사와 민속을 옛 문헌과 현지답사를 통하여 엮어나갈 것이다 .
( 탐라국 이야기는 ‘ 우산국 소개가 끝난 후 계속될 예정 )

고려사 권 58 울릉도 조 ( 條 )
6 세기 초 무렵 , 동해안의 두 섬인 무릉 ( 武陵 = 울릉 ) 과 우산 ( 于山 = 獨島 ) 에는 자그마한 섬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 고대 조선에서의 부족국가의 하나였던 ‘ 우산국 ’ 이었다 .

이 섬나라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생활방식은 오직 바다만을 상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 우산국의 본거지인 무릉 ( 울릉도 ) 이 바로 주생활의 본거지였다면 우산은 어물의 수획지 역할을 했다 .

두 섬은 우산국인들의 생존의 공급지인 동시에 생거지로 이용되었기에 부족민들이 힘을 다하여 이 곳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 획득한 어류 ? 해산물은 나라와 생명을 지키는 기본이 되었다 .

이러한 관계로 본거지인 무릉 ( 울릉 ) 을 지키고 우산 ( 독도 ) 을 활용하는데 있어서는 다른 민족의 어떠한 침략도 없는 독점적 상황에서 통괄하여 왔다 .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점차 우산국 어민들 가운데는 육지까지 왕래하며 다소간의 견물교류를 넓히며 교환도 하기에 이른다 .
그러니까 바다 가운데 고립돈 섬사람이면서도 직 ? 간접적으로 육지의 본토민과 왕래가 빈번해졌음을 몇 몇 옛 문헌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

‘ 고려사 권 58 울릉도 조 ( 條 )
「 ‘ 우산과 무릉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았으며 , 바람이 잔잔하여 청명한 날씨에는 서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 」 ‘

‘ 신증 동국여지승람 ’ 강원도 울진현 조 ( 條 )
「 ‘ 하나는 무릉이며 , 하나는 우릉 ( 羽陵 = 于山 ) 이다 . 두 섬은 현의 정동해 가운데 있다 …… 」 ‘

이와 같은 옛 문헌들에서 오늘의 울릉도와 독도는 밝은 날에는 본토인 강원도의 울진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

‘ 신증 동국여지승람 ’ 강원도 울진현 조 ( 條)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옛 ‘ 우산 ’ 또는 ‘ 익릉 ’ 이라 했던 오늘의 ‘ 독도 ’ 를 자기들 섬이라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 좁디 좁은 섬나라에서 살다보니 별별 욕심을 다 부리며
북해도와 러시아 사할린 사이에 있는 ‘ 쿠릴열도 ’ 의 영유권을 러시아와 겨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서쪽이 되는 ‘ 독도 ’ 가 또한 제 것이라고 이름도 ‘ 다케시마 ( 竹島 )’ 로 부르며 ‘ 국제사법재판소 ’ 에 제소하려고까지 한다 .

참으로 답답하여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 다음 호에는 우산국이 어느 때부터 우리나라가 되었는지 ? 줄거리를 이어나가기로 하겠다 .
글 심우성 선생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 민속학자

* 이번 호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원로 민속학자이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를 지내신 심우성 선생의 ‘ 옛날에는 「 于山國 ) 」 과 「 耽羅國 」 이었던 울릉도와 제주도 ’ 의 역사적 고증과 현장답사에 기초해 ‘ 독도는 우리땅 ’ 이라는 명제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다.(편집국 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