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온 국민을 놀라게 만든 IMF 총재 깡드쉬가 왔을 때, 당시 우리 대통령과 글라스를 마주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는데, 우리 대통령은 와인글라스의 아랫부분을 잡고 깡드쉬는 윗부분을 잡고 있습니다. 깡드쉬는 아시다시피 프랑스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리는 가장 예의와 격식을 중요시하는 외교석상의 공식만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와인글라스를 잡을 때 반드시 아래 가지부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외국사람, 그것도 와인의 나라 프랑스 사람은 윗부분을 잡을까요?
이것은 와인을 마시는데 어떤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말입니다. 커피 마시는 법이 따로 없듯이 와인 마시는데도 까다로운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대로 마셔도 됩니다.
와인을 잘 마시는 서양 사람들에게 와인은 우리의 된장국이나 콩나물국처럼 식사 때 목을 축이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 다도(茶道)처럼 엄격한 격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와인에 대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왜 와인의 색깔을 보고, 향을 맡고, 혀를 굴리면서 맛을 보라고 까다롭게 구는 것일까요? 이는 사람들이 와인 마시는 것과 와인을 감정, 즉 평가하는 일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와인을 마실 때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이고, 와인을 감정한다는 것은 상당 기간 훈련을 거친 전문가들이 와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엄밀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와인을 감정할 때는 규격에 맞는 글라스를 선택하고 체온이 전달되지 않도록 글라스의 아랫부분을 잡고 색깔, 향, 맛 등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대개 와인의 가격도 이런 감정가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와인을 감정하지 않고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식사 때나 모임에서 즐겁고 편한 마음으로 와인을 마시면 됩니다. 오히려 따라 준 와인을 밝은 곳에 대고, 색깔을 살펴보고, 코를 깊숙이 집어넣어 냄새를 맡는다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셈이 되어 상대에게 실례가 될 것입니다.
글라스를 잡는 방법
먼저 식탁으로 가져온 와인이 어떤 것인지, 상대가 와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구하기 힘든 고급 와인이라면 상대방도 귀하게 취급하면서 와인을 감정하듯이 맛이나 향을 음미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도 있겠지만, 보통 와인이라면 평범하게 마실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상대에게 와인을 접대할 때는 상대의 의견을 참조하거나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글라스를 잡을 때도 위쪽이나 아래쪽 어느 쪽을 잡아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래 전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고인된 북한의 김정일이 글라스를 마주치는 장면을 보십시오. 위쪽 볼 부분을 잡으면 체온이 전달되어 와인의 온도가 변한다지만, 그 짧은 시간에 체온으로 온도가 얼마나 변하겠습니까? 너무 엄살 부릴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실 때는 이미 화이트는 차게, 레드는 그 온도에 맞게 나오기 때문에 와인의 온도에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와인과 친해지려면 와인을 처음부터 너무 어렵고 까다로운 술로 바라보지 말고, 어느 곳에서든지 아무나 마실 수 있는 평범한 술로 편하게 생각합시다. 와인은 격식으로 마시는 술이 아닙니다. 와인은 그 향과 맛을 즐기는 아름다운 술, 살아있는 술, 건강의 술입니다. 와인과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글/ 김준철 서울와인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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