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도시 서울, Modern Metro Politan City의 명성에 걸맞게 초현대식으로 지어진 고층 건물이 빼곡하지만,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곳곳에 보석들을 숨겨두고 있다. 모두가 하나되어 경제성장만을 외치던 70년대와 80년대, 잿빛 하늘과 탁한 공기는 도시를 온통 짓누르고 있었고 도시민의 삶 역시 칙칙하고 어두운 색일 수 밖에 없었다.
성장의 댓가로 대대로 물려 받은 모든 아름다움을 송두리채 앗긴 듯 했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서울은 다시 고귀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 어느 곳과 견주어도 이제 서울은 움추릴 것이 없다. 오랜 역사와 문화와 정신이 고스란히 간직된 고도 서울,….. 이 가을 서울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다.
창덕궁은 조선조 태종(재위 1400~1418)이 경복궁의 동쪽에 재위 5년 되던 해 건조했다. 임진왜란으로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선조 40년(1660) 이후 재건했다. 임진왜란 후에 재건된 건물은 순조3년(1803)에 소실, 다음 해에 재건되었다. 인정문은 영조24년(1748)에 건립된 것이다. 교태전(交泰殿)과 강녕전(康寧殿)은 1917년에 경복궁에서 이건되었다. 또 종묘는 조선조 역대의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묘우(廟宇)로, 중국 옛양식을 모방해서 정전의 남동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원년(1608)에 제1~11실을 재건했다. 후에 영조2년(1726)에 제12~15실, 헌종2년(1836)에 제16, 17실, 고종7년(1870)에 제18, 19실을 증축했다.
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 또는 비원(祕苑)은 창덕궁 북쪽에 위치하며 북악산 남쪽기슭의 구릉과 못을 이용한 광대한 회유식정원(回遊式庭園)이다. 궁원(宮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후원(後園)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 때 임금의 산책지로 설계된 후원(後園)으로 1405년(태종 5년) 10월에 별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후 1592년(선조 24년)에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9년(광해군 1년)에 중수했다. 많은 전각(殿閣)과 누각과 정자가 신축, 보수되어 시대에 따른 특색을 보여 준다.
정원에는 왕실 도서관이었던 규장각과 더불어, 영화당(映花堂), 주합루(宙合樓), 서향각(書香閣), 영춘루(迎春樓), 소요정(逍遼亭), 태극정(太極亭), 연경당(演慶堂) 등 여러 정자와 연못들, 물이 흐르는 옥류천(玉流川)이 있고, 녹화(綠化)된 잔디, 나무, 꽃들이 심어져 있다. 또한 수백종의 나무들이 26,000그루 넘게 심어져 있고, 이 중 일부는 300년이 넘은 나무들도 있다.
창경궁을 합한 창덕궁의 총면적 약 0.674km2(20만 3769평) 중 창경궁은 약 0.177km2(5만 3600여 평)이고, 비원은 약 0.205km2(6만 1937평)이다. 창덕궁 과 창덕궁 후원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