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원하의 취중진담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들어라 잔을 들어라 위하여 위하여/ 목마른 세상이요 시원한 술 한 잔 그립다.
가수 안치환이 부른 ‘위하여’다.
‘위하여’는 우리의 회식자리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건배사’가 되어버렸다.
직장마다 또는 지역마다 ‘위하여’도 제 각각이다. 인터넷 싸이월드에서 검색된 ‘위하여’는 참으로 다양하다. 지금도 어느 술자리에선가는 이런 다양한 구호(?)를 외치며 술잔을 높이 들것이 아닌가. 어느 블로그에 베스트 10에 선정된(자체 선정이겠지만) 건배제의사를 보면 작금의 세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 구구팔팔 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고 3일째 죽자 ▲ 나이야 가라: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활력 있게 살자 ▲ 개나리:계급장 떼고 나이는 잊고 리랙스(relax)하자 ▲ 나가자: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 마음도둑:마음껏 고객의 마음을 훔치자 ▲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눔세 ▲ 초가집: 초지일관 가자 집으로(2차 없이)
한국에 주당(酒黨)이 있다면 중국에는 주귀(酒鬼)가 있다. 주귀는 말 그대로 술귀신. 이들도 첫잔을 들면서 건배를 제의한다.
우리의 주당들이 ‘위하여!’ ‘나가자!’ 등의 건배(乾杯)를 제의 할 때 북한에서는 ‘축배!’를 중국에서는 간베이(干杯), 일본에서는 간빠이(乾杯)를 외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건배사가 해마다 새로 창작되고 있어 재미있다.
사학의 명문인 연세대에선 ‘위하延!’을 고려대에선 ‘위하高!’를 건배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건배사가 마치 구호 같은 느낌이 든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지화자!’가 한국적 흥겨움을 가득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운율도 좋아 건배의 말로 제격이라고 밝힌바 있고,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씨도 ‘이규태 코너’를 통해 상서롭고 흥을 돋우는 고유의 매김 소리인 ‘지화자!’나 ‘상사디야!’를 건배용어로 삼자고 제안했었다.
미국과 영국의 치어스(Cheers), 캐나다의 토스트(Toast), 독일의 프로스트(Prost)가 오랜 세월 건배사로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건배사가 다양하다는 것은 주당의 한 사람으로서 즐거운 일이다. 올 연말에는 어떤 재미있는 건배사가 나와 주석(酒席)의 흥을 돋울 것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술을 마시며 건배하는 풍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오고 있는 풍습이다. 중국 동한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 “술잔 가득 술을 따르고 그걸 다 비었음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는 걸로 보아 지금의 건배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또 明대 사람인 양군겸의 소담(笑談)에는 “술잔에 한 방울이라도 남기게 되면 다시 한 잔을 벌주로 내린다”고 했다. 진정한 애주가들은 이처럼 술 한 방울이라도 매우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술은 양식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건배사 뒤에는 술잔을 부딪친다. 이는 동서양이 거의 비슷하다.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설은 각기 다르지만 중세 시대에는 와인을 마시면서도 와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와인을 마시려고 입을 벌리면 그 때, 악마가 입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따라서 와인을 마실 때 잔을 세게 부딪쳐 소리를 내면 악마가 놀라서 달아난다고 생각해서 이 같은 행동을 했다는 설과 결투할 때 취하는 매너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기원 전 3세기 로마와 전쟁을 하던 카르타고군은 로마인이 즐겨 마시는 포도주에 마취제를 넣어 로마병사를 모두 잠들게 한 후 승리했다. 그 후 서양인들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같은 병의 술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그 술의 안전함을 확인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건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올 연말에도 주당들은 ‘위하여’를 외치며 술독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내 몸을 ‘위하여’ 적당한 선에서 술잔을 물리칠 수 있는 기술이 필요 할 때다.
글 김원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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