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이정찬 기자) 지난 9 일 문화체육관광부 ( 장관 김종덕 , 이하 문체부 ) 는 국내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중소 관광사업체의 시설자금과 일본 관광시장의 침체와 방한 일본객의 지속적인 감소 추세로 불황 상태에 있는 일본 인바운드여행업체의 운영자금으로 관광진흥개발기금 920 억 원을 긴급 융자 지원한다고 밝혔다 .
아베노믹스 이후 지속되고 있는 엔화 가치하락과 한일양국의 외교 분쟁으로 인한 일본관광객의 급감에 따른 일본인바운드업체를 위해서는 최대 100 억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
관광진흥개발기금 100 억 원의 지원으로 고사상태에 빠진 일본인바운드여행업계는 소생이 가능하며 일본관광객의 감소는 엔 저와 외교 분쟁 때문인가 ?
일본인바운드 여행업계는 사업의 한계점에 이르렀으며 수천억 원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 또한 엔저와 양국의 외교분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었지만 그 이 전에 업계의 오랜 관행인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과당경쟁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일본인바운드 여행업계는 2012 년 후반기부터 감량경영에 들어갔다 . 직원들에게는 무급휴가가 주어졌으며 정상급여의 50% 정도만 지급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이로부터 2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인바운드업체의 대부분은 개점휴업 상태이며 폐업신청을 하는 곳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 일본 인바운드 여행업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포커스 여행사는 가중되는 경영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2013 년 파산했다 .
일본인바운드 여행사업을 30 년 이상 운영해 왔던 O 여행사의 김대원사장 (63 세 , 가명 ) 은 ‘ 일본 인바운드여행사업은 그 생명력을 이미 잃은 지 오래이며 현재는 ‘백약이 무효한 상태 ’ 라고 한다 .
일본관광객은 2013 년 중국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40 년 가까이 한국입국관광객 수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 1960 년 말부터 시행된 정부의 관광산업 육성정책은 일본관광객의 유치를 그 첫 번째 목표로 삼았으며 이후 일본은 우리 인바운드 관광산업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 되었다 .
경제가 어렵던 시절 일본관광객이 소비하는 엔화는 우리에겐 천금과도 같은 가치가 있었다 .
그러나 우리 경제에 크게 보탬이 된 일본인의 한국관광은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크나큰 잘못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
일본인바운드여행업의 호시절은 짧지 않았다 .
별로 떠올리고 서글픈 과거의 기억이지만 일본인바운드여행업은 섹스관광이었다 .
참으로 살기가 어렵던 시절 , 우리에겐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는 없었고 한류는커녕 한국이란 나라를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 최신 상품으로 그득한 백화점이나 아울렛은 흑백 TV 속에서나 보는 외국의 풍경이었다 .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 역시 정비되고 자리를 갖추지 못한 그 시절 , 대표적인 관광 상품은 섹스관광이었고 일본인의 한국방문은 1990 년대 중반까지 90% 이상이 남성의 차지였다 .
당시의 관광일정을 보면 2 박 3 일의 일정이면 2 번의 엥카이 ( 宴會 ) 3 박 4 일의 일정이면 3 번의 엥카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엥카이는 Banquet 가 아닌 기생파티를 의미한다 . 요정에서의 기생파티가 한국 여행상품의 핵심이었으며 여행사의 주요 사업파트너가 관광요정이었다 .
서울의 삼청각 , 대원각 , 풍림각 , 오진암 , 경주의 요석궁 , 제주의 명월관 등은 대표적인 관광요정이다 . 당시 정부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유흥음식점이라 하여 세제혜택을 비롯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여행상품의 판매 수익 외에 요정으로부터 받는 거액의 커미션과 씀씀이 컸던 일본관광객이 뿌리는 팁과 쇼핑커미션으로 여행사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며 일본어통역사들은 두 달만 일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 벌이였다고 박옥심여사 (73 세 , 일본어가이드 35 년경력 ) 는 회상한다 .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과당경쟁의 시작
일본인바운드여행업으로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사업으로 등장하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여행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여행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 80 년대 중후반부터이다 . 신규여행사들은 여행업에 진입을 하면서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주요 도시에 영업사무소를 개설하여 영업활동을 개시했지만 대부분 정상적인 영업보다는 과당경쟁을 불러일으킨 덤핑행위로부터 출발을 했다 .
황금 알을 낳는 사업이라던 인바운드 여행업의 수익은 일순간에 곤두박질치고 일본인의 한국현지여행비 견적에 마이너스 견적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
한일양국 사회에서 섹스관광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기생파티가 도마 위로 올라오면서 인바운드여행업은 주요 수익원을 잃고 있었고 한국경제의 발전과 물가상승으로 쇼핑마저 매력을 잃고 있던 시기에 마이너스견적을 불사하는 과당경쟁은 업계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
일본인바운드여행업에 회생의 기회는 없다 .
그로부터 25 년 , 회생의 기회가 있을까 ?
25 년간 이전투구와 변칙영업의 각축장이었던 일본인바운드여행업은 아베노믹스 이후 심화된 엔저 현상으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
‘ 누구도 이 상황을 호전시킬 수는 없다 .’ 고 인바운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
년 평균 백만 명 이상의 일본관광객이 한국을 찾았으니 지난 40 년간 최소 4000 만의 일본관광객이 한국을 다녀갔다고 볼 수 있다 . 일본 전체 인구의 40% 에 가까운 수치이다 . 단체여행은 생명력이 다 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지만 일본인바운드여행사는 이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았고 세계여행의 조류인 개별여행을 위한 준비도 없었다 .
시장은 바뀌었고 여행의 패턴도 바뀌었다 . 일본인바운드여행업은 상식을 넘어선 과당경쟁행위를 수십 년간 지속해왔고 이제 그 폐해는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돌아 왔다 . 변화하는 미래에 대비한 어떤 노력도 할 수 없었던 일본인바운드업계에 정부가 제시한 100 억 원의 관광개발기금은 아무 의미 없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