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다리사이로 본 태국] #1 태국, 처음 만나는 자유

“ 장님 코끼리 만지듯 ” 이라는 뜻의 ‘ 맹인모상 ( 盲人模象 )’ 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는데 , 요즘도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 말 그대로 , 장님들이 자기가 손으로 더듬어 본 코끼리의 신체일부만 가지고 “ 코끼리는 기다란 뱀같다 “ ” 아니 , 코끼리는 커다란 기둥 같다 “ 라고 서로 싸우는 형국을 일컫는 사자성어이다 . 즉 ,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옳다고 고집한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될 것 같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 , 태국만큼 이 ‘ 맹인모상 ( 盲人模象 )’ 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나라도 없다고 본다 .

태국을 상징하는 동물이 코끼리 ( 태국어로는 ‘ 창 ’ 이라고 한다 ) 인 점도 있겠지만 , 그보다는 태국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태국을 수십 차례나 드나들었지만 , 솔직히 아직도 태국의 ‘ 쌩얼 ’ 을 제대로 못 보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 웬만큼 태국을 안다고 자신하다가도 , 어느 순간에 “ 도대체 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가 뭘까 ?” 라는 혼란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태국의 실체가 사실은 코끼리의 꼬리부분에 불과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 또 어떨 때에는 꼬리가 아닌 코끼리의 코 부분을 만졌던 건 아닐까 ? 라는 의문에 빠져들곤 했던 것 같다 .

앞으로 할 태국이야기가 비록 필자가 만진 코끼리의 ‘ 꼬리이야기 ’ ‘ 코 이야기 ’ ‘ 다리이야기 ‘ 에 불과하더라도 , 현명한 독자여러분들은 이 모두를 입체적으로 종합해서 ’ 코끼리의 본 모습 ‘ 을 제대로 가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첫 번째 이야기 : 태국 , 처음 만나는 자유 >

10 여 년 전이었던가 ? 태국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은 한 마디로 ‘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움 ’ 이었다 . 지금은 ‘ 수완나품 공항 ’ 이 메인공항이지만 그 당시는 ‘ 돈 무앙 공항 ’ 으로 입국을 하였는데 , 출국심사대를 빠져나오자 코 끝으로 훅 불어 닥치던 열기 가득한 공기가 심장을 마구 뛰게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 하와이나 사이판 등에 도착하면 맡게 되는 달콤하면서도 꽃향기 섞인 열대지방 특유의 공기와 일견 비슷하지만 , 또 다른 무엇 ( 어찌 보면 조금은 역겹고 조금은 퇴폐적이라고 할 수 있는 ) 이 들어있음이 분명한 낯선 냄새가 외려 더 ‘ 자유스러움 ’ 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

“ 아 , 난생 처음 만나는 이 자유 !”

한국에서도 자유가 아닌 적이 없었건만 , 태국에 발걸음을 내딛던 그 때처럼 ‘ 프리덤 ‘ 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생하게 내 온 몸을 휩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뻣뻣하고 경직된 몸과 마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키던 편함과 해방감은 , 현대식 공항인 ‘ 수완나품 공항 ’ 을 드나들면서는 조금 줄어든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태국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무엇보다도 자유스럽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드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모르긴 몰라도 , 많은 사람들이 태국을 찾는 이유 중에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이 ‘ 자유로움 ’ 이 아닐까 싶다 .

한국에서처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마음가는대로 움직이고 행할 수 있는 자유 !

“ 길거리 리어카에서 산 팟타이나 로티를 우물거리면서 카오산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 자유 ’ 를 실감나게 해주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

“ 한국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언감생심이던 ‘ 헤나 ’ 나 ‘ 레게머리 ’ 도 맘만 먹으면 뚝딱 해 치울 수 있다 ”

“ 한국에서 머리를 박박 밀고 다니면 사회에 불만이 있는 문제아 취급을 받겠지만 , 태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

“ 코끼리 무늬가 그려진 ‘ 알라딘 ’ 바지에 민소매 티셔츠 하나면 외출준비 끝 !”

이외에도 마음만 먹으면 , 거기에 필요한 소소한 돈만 있으면 ,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 이게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마음도 외형을 따라간다고 ,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으면 마음까지 편하고 자유스러워 지는 법인 것 같다 .

태국이 좋은 또 한 가지의 이유는 , ‘ 자유로움 ’ 외에도 ‘ 다양함 ’ 이라고 생각된다 . 거창한 사회학적 인류학적 이유 댈 것 없이 , 먹는 것 하나만 봐도 태국은 ‘ 다양함 ’ 의 극치이다 . 비싼 전통요리부터 길거리 좌판음식까지 — 먹을거리만 해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참으로 다양하다 .

두세 명이 먹을 경우 한 끼에 천 바트를 훌쩍 넘기는 음식들도 있지만 , 길거리 리어카식당 ( 벤더 ) 에서는 2~30 바트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 무삥 ( 구운 돼지고기를 막대에 끼운 것 )’2 개 20 바트에 5 바트 짜리 ‘ 카우 니여우 ( 찹쌀밥 )’ 면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 질의 차이가 난다고 ?

그러면 , 방콕에서 가장 핫한 쇼핑 몰인 ‘ 터미널 21’ 의 5 층 푸드코트 ‘ 피어 21’ 로 가보자 .

100 바트 ( 우리돈 약 3500 원 ) 로 카드식 쿠폰을 사면 , 메인요리 음료수 심지어 후식이나 과일까지 먹어도 잘만 하면 돈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 우중충하고 다소 불결하게 보이는 로컬식당의 밥값이 대략 40 바트 ( 약 1500 원 ) 이니 , 국수나 덮밥같은 메인요리만 놓고 보면 ‘ 피어 21’ 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 고급 쇼핑몰의 분위기 좋은 창가 좌석에 앉아 방콕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우아하게 식사를 해도 , 길거리식당의 밥값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으니 선택의 폭이 넓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

숙소 또한 마찬가지다 .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은 하루 150~200 바트 하는 게스트 하우스 ( 도미토리를 이용하면 더 낮은 금액으로도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 ) 에 머물면 되고 , 조금 여유가 있는 관광객들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업그레이드를 하면 될 것이다 .

다른 나라 (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 ) 에 비하면 ,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수준급의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물 수 있다 .

도쿄의 그 닭장 같던 캡슐호텔에서 머물던 돈으로 , 에어컨 냉장고 샤워부스가 딸린 제법 번듯한 태국의 호텔에서 잘 때의 그 행복함이란 !

조금 사치를 부린다면 , 역시나 상대적으로 적은 숙박료로 세계 최고 수준의 오리엔탈이나 힐튼 쉐라톤같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투숙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먹고 자고 하는 기본적인 것 외에도 , 태국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선택의 폭이 넓은 다양한 관광지 여행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중심부만 놓고 보면 결코 뉴욕이나 도쿄 서울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을 세계적인 도시 방콕을 비롯해서 , 푸켓 파타야 치앙마이 아유타야 칸차나부리 등 그 도시만의 개성과 장점을 지닌 수많은 관광포인트들이 즐비하다 . 게다가 남태평양의 섬들이 부럽지 않을 ‘ 피피 ’ ‘ 코 사무이 ’ ‘ 코 창 ’ 등 , 눈부신 바다와 해변을 가진 야자수 우거진 천국같은 섬들은 또 어떤가 ?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 목긴 카렌 족 ( 빠둥 족 )’ ‘ 아카 족 ’ 등의 고산족들 또한 , 태국의 다양함과 매력을 더해 주는 요소일 것이다 .

‘ 자유로움 ’ 과 ‘ 다양함 ’ 외 , 태국을 선호하는 여행지로 손꼽게 해주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 입출국의 자유 ’ 일 것이다 .

특히 한국인들은 입국 시 3 개월 무비자 스탬프를 찍어주는데 , 체제기간이 끝나도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주변국에 가서 한 발만 내딛고 오면 다시 3 개월 체류를 허가해 주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다 . 이것을 ‘ 비자 런 ’ 이라고 하는데 , 이를 이용하면 거의 무기한으로 태국에 머물 수가 있다 . 실제로 태국교민의 상당수가 이 ‘ 비자 런 ’ 을 이용 , 별도의 비자취득 없이도 별 탈 없이 거주하고 있다 .

아니 , 이제는 ‘ 거주해 왔다 ’ 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 태국정부가 이 ‘ 비자 런 ’ 을 지난 8 월 12 일부터 금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

실제로 ‘ 비자 런 ’ 만으로 10 년 이상을 태국에서 문제없이 살던 교민들이 부랴부랴 ‘ 워킹 비자 ’ 나 ‘ 은퇴 비자 ’ 를 만드는 사례도 발생했고 , 주변국가로의 출입국 기록이 있는 여행자들이 입국을 취소당하거나 별도의 서류제출을 강요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

급기야는 태국 곳곳에서 유유자적 ‘ 자유 ’ 를 누리던 고수들이 비자갱신을 위해 부랴부랴 하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

‘ 무당 파 ’‘ 곤륜 파 ’ 가 아닌 ‘ 만곡 ( 曼谷 – 방콕 ) 파 ’‘ 청만 ( 淸澫 – 치앙마이 ) 파 ’‘ 파이 ( 巴易 – 빠이 ) 파 ’ 등 초야에서 기거하던 수많은 장기여행자들이 허겁지겁 하산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 웃어서는 안 될 대목인데도 실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도리가 없다 .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행 초기의 서슬 퍼렇던 기세와는 달리 , 태국의 강경방침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아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

아무튼 , 태국에서 거주하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자유롭게 머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앞서 언급한 ‘ 자유로움 ’ ‘ 다양성 ’‘ 입출국의 자유 ’ 외 , 태국은 그 못지않게 ‘ 양면성 ’ 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태국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 태국여행에서 받은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폄하하거나 심지어 악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어찌 보면 애태파 ( 愛泰派 ) 나 혐태파 ( 嫌泰派 ) 나 , 서론에서 얘기한 ‘ 맹인모상 ( 盲人摸象 )’ 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

코끼리 코를 만져본 사람들은 ‘ 너무 부드럽다 ’ 고 말하는 반면 , 꼬리를 잡아본 사람들은 ‘ 너무 뻣뻣하고 거칠다 ’ 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과연 ‘ 태국의 진짜 모습 ’ 은 어떤 것일까 ?

까도 까도 양파같은 태국이야기를 ,‘ 장님 코끼리 어루만지듯 ’ 하지만 ‘ 자유롭고 편견 없이 ’ 함께 해보고자 한다 .

글/사진 조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