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 지쳐 몸과 마음이 고단할 때 훌쩍 떠나보자 .
-산사에 머물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생의 나침반을 다시 한번 꺼내보자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번 돌아보자 .
새벽 4 시 .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잠이 깬다 . 도량을 깨끗하게 하고 , 천지만물을 깨우며 , 중생들이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한다는 도량석이 시작된 것이다 .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목탁소리는 은은하지만 선명하다 . 서둘러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 아직 남아있던 잠기운을 찬물로 씻어낸다 . 산사의 맑은 공기를 가슴 속 깊이 들이마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 깊은 어둠 속에서도 여기저기 법당으로 향하는 발길들이 느껴진다 .
새벽 4 시 30 분 . 아침예불은 대적광전에서 거행된다 .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당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 아침예불이 시작된다 . 목탁소리에 맞춰 부처님께 절을 하기도 하고 , 일어서서 금강송을 읽기도하고 , 앉아서 스님의 독경을 듣기도 한다 .
새벽 5 시 . 예불이 끝나고 좌선 ( 앉아서 하는 참선 ) 이 시작된다 .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 . 모두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 좌선이 끝났음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나자 모두들 조용히 밖으로 나온다 . 대적광전 옆에 있는 오륜탑에서 탑돌이를 하며 행선 ( 걸으며 하는 참선 ) 을 시작한다 . 가지런히 두 손을 단전에 모으고 2 미터 간격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참선을 한다 .
6 시 30 분 . 공양은 선무도대학 생활관인 마하자관원에서 한다 . 교자상을 죽 연결하여 왼쪽에는 여자들이 , 오른쪽에서는 남자들이 공양을 한다 . 공양간은 뷔페식처럼 한쪽에는 식기들이 놓여있고 , 밥 ․ 김치 ․ 나물부침 ․ 버섯볶음 ․ 두부 ․ 물김치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 먹을 만큼만 덜어서 상 앞에 앉아 공양을 시작한다 . 음식 맛은 무척이나 담백하다 . 평소 강한 맛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으니 건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공양간보살님과 농부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며 한 입 한 입 감사한 마음으로 공양한다 .
8 시 30 분 . 선무도대학 본관에서 선무도 오전수련을 시작한다 . 선무도는 심신수련활동의 일환으로 신라시대 화랑들에게 가르쳤던 무술이다 . 사범님의 지시에 따라 스트레칭을 한 후 본격적으로 동작을 익힌다 . 마음은 앞에 있는 사범님처럼 부드럽게 하고 싶으나 ,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동작 때문에 다소 어색했으나 ,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동작에 몰두한다 .
10 시 10 분 . 선무도 수련이 끝나고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한 후 차담이 시작된다 . 스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앞에 놓인 찻잔을 받쳐 들고 차를 마신다 . 자연에 대하여 , 인생에 대하여 강의가 시작된다 . 수련생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의를 들으며 , 중간 중간 질문을 하기도 한다 . 차담도 좌선이다.
11 시 50 분 . 점심공양이 시작된다 .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예불 , 좌선 , 행선 , 선무도 수련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장기가 느껴진다 . 평소 몸놀림을 게을리 하다가 한꺼번에 몸을 많이 움직이다보니 입맛이 꿀맛이다 . 김치 , 나물 , 두부를 밥에 얹어 놓고 고추장으로 비비니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
14 시 . 선무도대학 본관 앞 공터에서 국궁수련이 시작된다 . 사범님이 발 자세 , 활 잡는 법 , 발사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 의외로 어렵다 . 분명 활시위를 당겼다 발사했는데 화살은 그대로 있다 . 헛방이다 . 수련생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오히려 얼굴이 울상이다 .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 . 이미 웃음기는 걷히고 , 과녁을 노려보는 눈매는 날카롭기 이를 데 없다 .
15 시 . 울력이란 사찰 일손을 돕는 것이다 . 사찰 주변정리를 도우며 도량을 깨끗이 한다 . 사람 발길이 닿지 않던 곳에 새롭게 길을 내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땅을 고르고 , 통나무를 자르며 계단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 무슨 사연이 있어 이곳을 찾았는지는 몰라도 ,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와 아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리라 .
17 시 30 분 . 세 번째 공양이 시작되니 살짝 허전함이 밀려온다 . 첫 공양은 신성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 두 번째 공양은 시장함으로 맛있게 했지만 세 번째는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다 . 몸을 많이 움직여 시장함이 빨리 오는 것인지 , 좋아하는 고기가 없어서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 수양이 덜 된 사실에 깜짝 놀라며 감사한 마음으로 공양을 한다 .
18 시 30 분 . 저녁예불이 시작된다 . 일상에서의 고단함에 지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기 위해 , 부처님으로부터 위로 받기 위해 찾아온 나를 만나는 순간이다 . 부처님 앞에서 불공을 드리며 땀인지 눈물인지는 모르겠지만 , 연신 옷깃으로 얼굴을 훔친다 .
19 시 . 야간 선무도 수련과 사범님들의 시범이 시작된다 . 오전에 이미 한차례 수련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진지하게 동작을 따라한다 . 사범님의 구령소리에 동작을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다 . 이어지는 사범님들의 시범 .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다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 부드러운 동작만 따라하다가 사범님들의 힘찬 도약과 자세를 보니 ,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
22 시 .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 자동차 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다 ,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니 과연 깊은 산사에 왔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뭔가를 깨닫고 싶은데 ,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한다 . 이미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실만으로도 일상 속에서의 나와는 분명히 다른 나로 변해있으리라 .
< 골굴사 템플스테이는 오후에 입실하여 오후에 퇴실하는데 , 이 글에서는 하루의 일과를 새벽 기상시간부터 취침시간까지 일정을 재구성했다 .>
글 , 사진 : 엄태성 , 연대 여행작가 http://cafe.naver.com/ys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