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배경이 된 꿈꾸는 자의 눈동자를 찾아서
VARADERO – 투명한 햇빛마저 반사되어 더 찬란히 빛나는 그림
우리나라에서 쿠바로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캐나다 항공의 에어텔을 이용해 쿠바의 바라대로에 도착했다 .
바라대로란 선박 수리소라는 어원을 가진 카리브해에 가장 큰 휴양지 중 하나로 히카코스 (Hicacos) 반도에 위치해 있다 . 쿠바에 도착한 스페인들에 의해 원주민들이 쫓겨난 후 선박수리소로 사용되었지만 19 세기 이후 새하얀 모래와 유리알처럼 투명한 바닷물에 반해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거듭나며 지금의 모습이다 .
콜럼버스는 쿠바를 발견하고 “ 인간이 본것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라고 했다 한다 . 20km 가 넘는 희고 고운 모래와 길게 뻗은 푸른 해변이 매력적인 바라데로 . 에메랄드빛 지중해 바다위로 뭉게구름들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황홀했다 .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열에 나를 내려 놓아도 될 만큼 천해의 선물은 아낌없이 매혹적이고 수심도 얕아서 수영하기에도 그만이고 다양한 수중 생물과 산호 물고기들과 때때로 뛰어노는 돌고래의 몸짓은 여행자의 마음에 수채화를 그린다 . 발을 담그면 코발트 빛 물에 카리브해 바다 위로 펼쳐지는 붉은 빛 석양은 아직도 가슴에 뜨겁게 새겨져 있는 듯 하다 .
이틀째: 바라데로에서 130km 떨어진 쿠바의 수도 하바나로 향했다 .
하바나 – 쿠바의 수도로 캐리비안에서 가장 큰 도시
차창 밖으로 2 만 그루가 된다는 쿠바의 대왕 야자수가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 하바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 쿠바의 명물인 화려한 색깔의 올드 카들이 한 가득이다 . 쿠바가 휴양지로 각광 받던 1950~60 년대 미국의 부호들이 가져온 차들인데 혁명 이후 미국과의 국교단절로 의해 강제로 추방되면서 남겨진 흔적이다 .
형형색색 반질반질 손질된 올드카는 하바나의 낡고 퇴색한 건물들 틈 사이에 포인트처럼 꽂혀있어 움직이는 박물관을 보고 있는 듯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
하바나에는 15 세기에서 19 세기까지 지어진 스페인식 건축물이 가득해 마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낡은 유럽식 건축물들은 남미의 화려하고 강렬한 원색들과 적절히 섞이어 묘한 느낌을 풍긴다 . 개방적인 중축이나 개축이 없으므로 고스란히 보존 아닌 보존이 된 것이다 . 하바나의 색채는 그대로인 것에 신선함이 베어 있다 . 현기증나게 선명한 색들과 5 세기에 걸친 세월의 감미료는 매력적으로 뿜어져 전세계 여행자를 모이게 했다 .
맨 먼저 찾아간 곳은 30 여년에 걸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 광장이다 . 고혹적인 성당의 광장엔 전통의상 과야베라를 입은 사람들 , 꽃과 갖가지 머리 장식으로 멋을 내고 관광객의 사진 모델을 하는 사람들과 , 시가를 파는 사람들과 연신 시가 연기를 날리는 사람들로 한가롭되 자잘한 운치가 있었다 .
이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골목엔 헤밍웨이가 애착을 가지고 즐겨 마셨던 모히또로 유명한 바인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 (La Bodeguita Del Medio) 가 있다 . 이 곳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 나의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에 있다 ” 라고 말한 헤밍웨이에 말 때문이라고 한다 . 비좁아 보이는 입구에 들어서면 칠레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낙서로 가득찬 벽이 나온다 .
헤밍웨이처럼 다듬어 지지 않는 야성미를 가진 대문호가 좋아했다하니 모히또의 맛이 궁금했다 . 모히또는 럼주와 민트를 넣어 만든 칵테일로 쿠바에서 처음 만들어졌다한다 . 맛은 레몬보다는 부드럽고 새콤달콤했다 .
헤밍웨이는 쿠바를 열망했고 사랑했다 . 20 년동안 쿠바에 머물면서 20 세기 문학에 기여한 작품들을 집필했고 , 마지막까지도 쿠바를 놓지 않았던 마초 헤밍웨이 , 비로소 이곳에 와보니 그의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쿠바이었기에 가능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기운들과 문화 , 인종 , 기질의 다양성은 어느 곳에도 찾지 못한 쿠바의 보물들인 듯하다 .
그 여운을 담고 대성당 광장에서 남쪽으로 2 블록을 내려와 하바나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오비스뽀 (obispo) 거리로 향했다 .
구건물과 현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길거리 어디에서나 전문가 수준을 넘는 라이브 연주와 춤으로 가득 메워진곳 . 마치 도시 전체가 음률과 흥겨운 춤사위로 들썩이는 듯 했다 .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obispo 거리를 거닐다 동쪽 끝까지 가다보면 아르마스 (plaza de Armas) 광장이 나온다 . 광장을 둘러싸고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과 예쁜 바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었다 . 광장에 한켠에는 빛바랜 헌책 가판대와 화가들의 예술 작품이 평온해 보였다 .
어느 노화가의 그림 속엔 예술가의 정열이 넘치고 어느 작품은 남미 특유의 느긋함과 재치가 녹아있다 . 길거리를 걸으며 먹는 쿠바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맛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는 사이 화려함과 거대함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다다랐다 .
규모도 웅장하지만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이곳에서 보니 기분이 묘했다 . 건물의 돌계단엔 핀홀 카메라로 흑백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유명한 할아버지가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포시 미소지어 주시는 인자한 미소가 인고의 시간을 보낸 자들의 여유같아 보여 마음이 훈훈해졌다 .
아르마스광장에서부터 시작되서 럼박물관 , 혁명박물광 , 대성당에 이르는 올드 하바나 , 낭만과 자유를 갈망하는 쿠바인들의 춤과 노랠 즐길 수 있는 올드 하바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다 . 올드 하바나의 거리는 참으로 낡았다 . 지금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과 공기는 쿠바인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 무성연화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흐르는 듯 하다 탱글탱글하게 튀어 오르는 농밀하고 유괘한 음악과 , 거리낌 없이 흔들어 대는 자유분방함과 만나 하바나 곳곳에 스며든다 . 음악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곳의 무한대의 음악에 심취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지만 그 이면에는 슬픈 흥망의 과정이 있다 .
콜롬버스가 쿠바를 발견했을 때 타이노족등 원주민들은 약탈자들의 고된 노역으로 혹사되다가 멸족되었다고 한다 . 그 이후 18 세기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수많은 곡절과 시련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 음악에 본줄기가 됐을 것이다 . 아프리카 토속 리듬과 스페인등 유럽문화가 섞여 춤을 추기에 적합하게 진화된 단손 (Danzon) 과 살사 , 쿠바 음악의 토대인 쏜 (Son) 을 듣고 있자니 온몸 구석구석 휘감는 선율에 흥겹다 못해 날아갈 듯 하다 . 음악의 거장들이 모여 만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공연했던 Nacional 뮤직홀에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체계바라의 흔적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
하바나의 입성이 실감난 것은 내무성 건물 벽면 전체에 설치되어 있는 체계바라의 단호한 듯 이상을 꿈꾸는 듯한 얼굴 이었다 . 전 세계가 열광하고 혁명으로 대변 되는 피 끓는 정의 , 개혁의 아이콘인 체계바라 . 혁명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주장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독재와 쿠바를 지배하려는 미국에 맞서 인종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자유를 얻고자 했던 쿠바의 역사이다 .
그의 어록 hasta la victoria siempre(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 의 뚯을 되새기며 , 체계바라가 바라보고 있는 7 만 2 천평에 달하는 혁명 광장에 들어섰다 . 광장 중앙에는 하바나에서 가장 높고 혁명의 불꽃이 사라지지 않는 , 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 기념탑 이 있다 . 기념탑을 둘러보고 말레콘 해안으로 향했다 . 말레콘 해변은 중심부에 위치하며 쿠바인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낚시하는 사람들 , 달콤한 연인들 ,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간지럽게 들리는 곳이다 .
모든 것을 집어 삼킬듯 넘실대는 파도로부터 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7km 방파제를 쌓았다 한다 . 거친 바람이 불면 폭풍처럼 일어나는 파도에 도로위에 자동차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는데 그날의 바람은 부드러웠다 .
말레콘 해변에 떨어지는 붉은 노을의 잔향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할 만큼 진했다 . 하바나의 매력을 온몸으로 흡수하느라 분주했던 몸을 쉴 수 있게 보금자리로 이동했다 .
쿠바는 늘어나는 관광객을 위해 민박집을 허가 했다 . 까사의 표시인 비대칭 닻 모양을 뒤집어 놓은 파란 문양은 외국인 전용이다 . 쿠바의 까사는 대부분 오래 됐지만 높은 천장과 현지인의 생활 흔적이 잘 베어 있어 여행에 풍성함을 더해 준다 . 뿐만 아니라 운 좋으면 우리가 만난 아주머니의 넉넉하고 푸짐한 인심에 여정의 노곤함을 스스르 풀 수 있어 좋다 .
다음날 아침 귤과 구아바 주스 . 햄과 오믈릿으로 조촐한 아침을 먹고 트리니다드 (TRINIDAD) 로 향했다 .
트리니다드 (TRINIDAD)- 파스텔 물감들의 연주가 담장마다 꽃을 피우는 마을
트리니다드는 하바나에서 8 시간 정도다 .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 때 터미널을 병품처럼 둘러싸고 있는 한 무더기의 까사 주인들이 진풍경을 이뤘다 . 여기저기서 가격을 흥정하느라 분주 했고 우리도 애교 섞어 가며 가격을 깍는 데 성공했다 .
까사에 짐을 잠시 풀고 도시의 매력을 찾아 나섰다 .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된 트리니다드는 동화속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 작달막한 건물들과 도시의 현란했던 색채는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에 온기를 빼앗겨 숨을 죽여 은은하게 반짝였다 .
동네 상점에선 수작업으로 옷과 가방을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고 들어가 봤다 . 뜨개질된 옷이 좀 큰 듯하자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즉석에서 수선해 주셨다 . 빨간 머래 앤이 썼던 모양의 모자도 구입하고 때깔나는 새 옷을 입고 특색있는 골목을 누볐다 . 청아한 하늘 아래 신발사이로 전해지는 오돌토돌한 자갈길을 걸으며 완만하게 걸쳐진 언덕배기의 마요르 광장으로 향했다 . 나즈막한 정원과 아담한 벤치들 사이로 한때 사탕수수로 영화를 누렸던 화려한 건물들이 섞여있었다 .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생동감 있는 음악은 사탕수수 제배에 희생된 노예들의 영혼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애잔하면서도 흥겹다 . 끌려온 자들의 힘들었던 시간에 바치는 진혼곡은 아닐까 ?. 길거리에 마주하는 쿠바인들은 친절하고 유쾌해 보였다 . 열대기질의 느긋함도 있고 모든 것을 다해 이룰 것이 없어서일까 넉넉하진 않지만 그들이 가진 한 템포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다 .
해가 기울자 이곳저곳에서 정열적인 쿠바인들의 춤과 음악의 활기가 스멀댄다 . 저렴한 랍스타로 저녁을 먹은 후 온몸에 세포마저 신나서 일어날듯 흔들어 대는 쿠바인의 정열 댄스에 박수만 칠수 없던 나는 이들과 섞여 럼주를 마시며 한바탕 살사를 추었다 . 소소한 일상의 축제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
다음날 아침 우리를 기다린건 증기기관차 일정 이었다 . 마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소녀가 된 듯 들떠 역을 찾았다 .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화통 소리마저 청명한 30km 대로 가는 증기기관차는 색달랐다 . 중간에 멈추기도 하며 느릿한 완행의 여유로움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초록의 웅대한 자연과 맞물려 무한할거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
1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곳은 과거 시대를 호령했던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 1830 년대 스페인들이 노예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노예의 탑 나무 계단의 삐그덕대는 소리는 노예들의 허물어져 가는 절규처럼 들렸다 .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무심한 듯 평화로운 대지는 역설적이게도 달콤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흘린 땀과 피의 잔인한 시대의 기록인 것이다 .
이 농장의 엇갈리는 소리가 나를 잠시 숙연하게 만들었다 . 기적을 울리는 증기 기관차를 타고 돌아온 트리니다드에서 오토바이를 개조해 노랗고 앙증맞은 꼬꼬 택시를 타고 안콘 해변으로 향했다 . 안콘 비취는 트리니다드로부터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변으로 호젓하고 평온한 곳으로 쿠바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 여행의 막바지라 아쉬움이 밀려온다 . 이 느긋함을 끝으로 열흘간의 여정이 여물어 간다 .
쿠바엔 세상을 바꿀 놀라운 방법은 없었다 . 쿠바 , 굳은 표정기의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 때론 펄떡이는 심장으로 불타는 혁명으로 대변된 나라 . 잔혹한 역사의 부산물들이 관광 상품이 되고 , 공평함이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느린 시간을 만들었지만 적어도 내가 지나쳐온 사람들의 표정은 넉넉했고 밝았다 . 고된 역사 속에서도 스스로 탈출구를 찾았던 사람들 , 이념도 음악 없이 살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묶어 놓을 수 없는 나라 . 나누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흡수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 나라의 매력은 넘치고 흘러 아직도 내 가슴을 두드린다 .
글 사진: 이혜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