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간 강태공 [8] 월출산편

산으로 간 강태공 [8] 월출산편

아름다움이 눈에 닿았는데 왜 눈과 가슴에 이슬이 맺힐까?

산은 내게 굳이 오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 역시 구태여 가지 않겠다고 한 적은 더더구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데면데면한 우리가 만나 온 세월은 10년을 쌓아 간다.
그 앞에서 나는 서러움도 눈물도 슬픔도 많이 쏟아 냈다.
그때 마다 말없는 그는 무언의 답을 준다.
그리고 나에게 매년 두세 살의 나이도 덤으로 준다.
단풍인들 산이 아니며 초록인들 산이 아니며 하얀 눈인들 산이 아닐까?!
겉이 어떤 모습을 지녔던들
그는 그대로 산이다.
그런 그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오늘 또 짧은 이별을 한다.

토요일 이른 새벽 전남 영암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산이 힘들지 않은 곳이 있으며 또한 어느 산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 마는 영암의 월출산은 산행 내내 눈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그런 산이다.
그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립공원이라는 벼슬을 얻은 것만 봐도 그 산이 어떨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월출산 뿐만 아니라 이왕 가는 김에 영암도 더 즐기고 싶어 영암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월출산, 영암아리랑, 왕인박사 외에 딱히 홍보할 만한 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氣’를 매개로 한 행사와 시설들이 특히 눈의 띄었다.
웃음이 나왔지만 월출산이 남도의 평야 한 복판에 그토록 장엄하게 서 있는 걸 생각한다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5시간여를 달려 금릉경포대에 도착했다. 늦가을 산행임에도 꽤 많은 산행객들이 벌써 부지런한 발걸음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오르는 코스가 가파르길 바라고 또 어떤 이는 내려가는 하산길이 가파르지만 짧기를 바라는 이들로 보통은 나뉜다.
금릉경포대에서 출발하여 천황사 주차장을 날머리로 산행코스를 정한 건 아무래도 월출산의 백미인 구름다리는 산행 마지막에 즐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경포대에서 출발하여 경포대 삼거리를 지나 바람재 삼거리 까지는 보통의 수준으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즐기는 마음으로 오르면 된다. 바람재에서 구정봉을 지나 용암사지로 가는 방향을 잡을 수 있으나 바람재 삼거리에서 구정봉에 올랐다가 되돌아 오는 길을 잡아야 한다.
바람재 능선에 서면 왜 바람재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실감케 하기라도 하 듯 심한 바람이 분다. 나머지 계절은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겠으나 겨울철은 바람재를 지나기 위해서라도 방풍대비를 철저히 해야 안전한 산행이 될 것 같다.
아홉 개의 웅덩이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정봉(九井峰:743m)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정봉 정상에는 안개와 빗물들이 모여 사시사철 마르지 않은 작은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 개구리가 서식을 한다는 뉴스까지 보도된 적이 있으니 구정봉에 오르는 분들은 눈 여겨 보고 사진에 담아도 좋을 듯 하다.


월출산의 또 하나의 명물인 남근석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음혈 또는 음굴 동굴 또한 사시사철 작은 샘이 있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바람재에서 구정봉 정상까지는 300미터를 왕복하는 길이라 시간은 30여분 걸리는 게 정상적이나 구정봉 정상에 오르면 사진에 담을 풍광이 너무도 많아 자칫 1시간을 넘기기 일쑤니 단체 산행객들과 버스를 이용해서 가시는 분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 하겠다.
되돌아 온 바람재를 지나 월출산의 주봉인 천황봉을 향하여 가다 보면 월출산의 기운을 대변해 주는 남근석과 만난다. 남근석의 정상에는 철쭉이 있었으나 고사하여 최근 복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구정봉에서 남근바위를 지나고 하늘에 닿는다는 통천문 삼거리를 지나기 까지는 들머리에서 바람재까지의 산행로 보다 오히려 더 힘들고 다소간의 주의를 더 요한다.
통천문 삼거리에서 바람폭포로 향하는 좌측의 계곡 길을 선택 할 수도 있고 구름다리를 가실 분들은 우측으로 향하면 된다.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은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기 때문에 지쳐 있거나 초보 산행객들은 물기가 많은 날은 가지 않을 것을 권한다.
양쪽의 코스 둘 다 짧지만 어디에서 접하기 어려운 난 코스 이기 때문에 세심한 발걸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고소 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구름다리 방향으로는 가지 말아야 한다.
구름다리는커녕 가파른 철재 계단에서 주저 앉아 오도가도 못하는 분들이 필자가 간 날에도 여러 분 계셔서 일행들을 난처하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
산은 어디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처럼 사시사철 옷만 갈아 입을 뿐 어디로 떠나지 않으니 무에 그리 욕심을 내는가!
다시 가서 보는 산은 또 다른 즐거움이니 늘 무리 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찔한 구름다리를 건너서 계속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보면 천황사지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부터 대부분 이용하는 천황사지 주차장 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산의 품에 안겼다. 영암이라는 지명이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인데 과연 그럴 만한 바위가 월출산에는 그득 하다.
저 넓은 평야에 어찌 그리 홀로 솟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월출산은 아름답고 신비하고 볼거리까지 풍부하다.

누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월출산이라고 답하겠다 한다. 장엄한 금강이나 설악에 비길까마는 아름답고 설악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듯한 그 절경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년 봄 새 기운 돋을 때 다시 찾기로 마음을 먹고 월출산을 뒤돌아 보며 아름다운 영암을 떠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