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훈이 만난 사람 제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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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이라 불리는 사람, 유현웅, 사진: 작가 진의준

[미디어원=강상훈 기자]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지난해 봄, 기자가 주연배우로 공연을 하던 극단성좌의 연극 ‘허풍’이 있던 대학로였다. 카메오로 연극에 참여하기로 한 그를 처음 마주하고 느낀 첫인상은 참 형언하기 어려웠다. 일단은 참 범상한 사람은 아니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 외양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후, 실제로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겉모습에서 비쳐진 것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특이하기만 한 사람이면 이렇게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다름’이 우리가 같이 배워야할 ‘다름’이기 때문에 참 값지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유현웅, 그의 현재 신분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그리고 사업가이기도하고 요트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요트의 선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선장대신 캡틴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기억하고 부르고 있다.

또 하나 그가 정성을 들이고 있는 신분이자 직업은 마술사이다. 그가 적을 두고 있는 동부산대학의 학과가 마술학과이다. 그가 이 과를 택한 건 마술을 통해 사회의 많은 소외된 이웃과 단체들에게 올곧고 즐거운 재능기부를 통해 사랑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KTX편으로 부산을 갔다. 인터뷰를 하러 가는 날 마침 그가 고아원에서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재능기부로 마술쇼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부산역에서 만나서 가기로 했다. 필자를 기다리고 있던 그의 손에는 캔 커피 하나가 들려 있었다.

차안에서 말없이 3시간여를 입 다물고 왔을 기자를 위한 배려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작은 행동에서 부터 진솔한 마음이 느껴졌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에 그가 공연하기로 한 고아원으로 향했다. 늘 그렇지만 자비로 꼼꼼하게 소품을 준비하고 공연 시작 전 내내 연습을 계속하는 그의 모습에서, 고아원생들만을 위한 공연이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마음으로 완벽을 기하는 그의 자세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그의 정성 덕분이었을까 마술이 시작되자 고아원 아이들의 환호성도 매우 크고 분위기도 상당히 좋았다. 기자의 인터뷰에 같이 자리한 탈렌트 안홍진군과 함께 아이들의 사진 촬영요청도 계속되었다. 고아원을 떠나기까지 내내 행복하고 눈시울 가득한 시간이었다. 유현웅 그의 행보가 참 아름다웠다.

고아원에 자원봉사 나온 분들과의 이별의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유현웅은 그의 요트에 자원봉사 나온 모든 분들을 초대했다. 아마도 그이기에 가능한 마음씀씀이 담긴 아름다운 초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봄 바다에는 살짝 찬바람이 불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긴 그의 요트가 있는 정박장에는 그가 매주 진행하는 번개 요트 세일링을 경험하기 위해 벌써 십여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광안리 바닷가와 해운대 바닷가를 한 시간여 항해를 한 후 요트 정박장에 내려 주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현재 대학생이긴 하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에서 유학도 했다.

50대 중 반에 접어든 인생은 구구절절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잘할 수 있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만학으로 마술학과를 택한 것까지의 인생이 그러했다.

지금 그의 몸은 마르고 다소 야윈 형색이지만 사진으로 본 젊은 시절 그의 외형은 아주 살찌고 건장했다. 사람 좋아하고 술을 무던히도 좋아했던 그는 알콜 중독으로 두 번이나 정신 병원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를 끝없이 신뢰하며 지금의 온전하고 힘찬 봉사의 삶을 살아가게 만든 힘은 그의 아내였다고 한다. 지금의 그는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는다.

부산에 살고 있던 총각인 그가 처녀시절 아내가 거주하던 대구까지 수시로 다녔던 얘기 밤차가 끊겨 기차역에서 밤을 새우던 얘기 등 한 동안 멈출 줄을 몰랐다. 인터뷰 내내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어 주고 응원하며 자리를 뜨지 않는 그의 아내의 모습에서 그의 말에 충분한 신뢰가 갔다.

그가 요트에 초청하는 사람들은 일체의 비용 없이 모두 무료다. 왜 자비를 들여서 요트에 그리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느냐고 물었다. “어느 날 광안대교를 운전하며 지나가는데 요트를 보고 무아지경과 자유를 상상하고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꼭 요트를 사고 나와 타인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나누어 삶의 힘이 되고 풍요가 되자는 결심을 했다.” 생뚱하지만 재미있는 그다운 대답이었다.

그의 가족은 전부가 학생이고 대학생만 3명이 있다. 그는 마술학과를 아내는 조리학과를 그리고 장남은 컴퓨터 공학과를 다닌다. 학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부담이 없냐는 질문에 아내와 아들은 장학생이고 공부 못하는 본인만 학비를 부담하니 괜찮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요즘의 그는 페이스북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간다. 그의 바람대로 요트를 장만하고 지인들을 초청했더니 아무도 오지 않더란다. 그래서 남들 다한다는 SNS를 통해 홍보를 하고 초청을 했더니 많은 이들이 그의 진정성을 알고 초청에 응하더란다. 그래서 지금은 그 무엇 보다 SNS활동에도 열심히 한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후 그의 페이스북을 들어가 보았더니 이번에는 동남아 학생 돕기 홍보를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기자는 희망도 재능기부도 다 좋지만 생계는 어떻게 책임지고 있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27년 째 일본인들을 상대로 일을 해왔고 15년째 역시 같은 업종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부족하지만 밥은 먹고 산다고 너스레를 떤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일본인 지인들로부터의 문의와 주문 등 많은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자유로운 스스로의 삶답게 두 명의 아들들도 자유롭게 그리고 창의적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울타리만 되어 줄 뿐 삶의 형태는 오롯이 그들의 몫이므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50이 넘은 나이에 꿈을 향해 요트를 장만하고 대학을 입학하고 하는 일련의 일들은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고 하소연 하는 우리 가장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그가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이러한 삶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사람과 술에 빠져 많은 시간을 낭비했지만 이미 그러한 질곡을 겪었기에 스스로 더 채찍질하며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살기에 계속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게 아니겠냐고 조심스러운 스스로의 진단을 내린다.

된다는, 이루겠다는 일체의 의심 없는 믿음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살 거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물씬 행복이 묻어난다.

한국과 일본 민간인들이 한·일 간 고대 뱃길 고증을 위해 통나무 배를 타고 경남 거제에서 대마도를 향해 출항했던 일본 시마네현 교사들이 주축이 된 민간역사연구 모임인 가라무시회(대표 모리 유타카)와도 15년간 인연을 이어 오며 도움을 주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일본인들의 진정한 노력에 힘이 되고 싶었다.”며 정치가 풀지 못하는 한일관계에 민간인 우호 증진의 물꼬 역할도 계속 하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우선은 최고의 마술사가 되겠다고 한다. 그를 위해 새벽 2~3시까지 잠을 아껴 연습에 연습을 거듭 한다고 한다. 그렇게 닦은 마술로 전국 방방곡곡 가리지 않고 다니며 행복과 웃음을 선사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이 되고 행복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후 요트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마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알리며 꿈과 희망을 나누는 삶을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50이면 청춘이라고 힘차게 말하는 유현웅 그에게서 특이함이 아니라 ‘다름’을 보았고 그 건강한 ‘다름’이 나를 향함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고 희망을 향하는 것에서 더 아름다웠다.

그가 모 방송국과 모색하는 아름다운 마술쇼가 이뤄지고 또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가 더 많이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는 더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져도 내가 아닌 소외되고 어두운 곳의 이들에게 그 모든 사랑을 쏟아 부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요트를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유현웅, 탈렌트 안홍진과 함께 했다.
유현웅캡틴의 든든한 버팀목 그의 아내, 장혜정
마술을 통한 재능 기부를 하는 유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