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원 = 김인철 기자 ) 지난 5 월 초 미국에선 ‘ 제 5 의 메이저대회 ’ 라고도 부르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 상금 1000 만 달러 · 약 109 억 원 ) 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 같은 시기 아프리카 동남쪽 모리셔스 (Mauritius) 라에선 아프라시아뱅크 모리셔스오픈이 열렸다 . 유러피언투어와 아시안투어 , 션샤인투어 ( 남아프리카공화국 ) 등 3 개 투어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 대회는 상금이 100 만 유로 ( 약 11 억 7363 만 원 ) 이고 , 올해가 처음 열린 1 회 대회였다 . 하지만 처음 열린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골퍼들 관심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 못지않았다 . 물론 3 개 투어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회라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지상천국으로 알려진 모리셔스에서 열린 대회였기 때문이다 .
모리셔스는 아프리카대륙의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에서 동쪽으로 750km 가량 떨어진 인도양 한복판에 자리한 섬으로 , 크기는 제주도만한데 제주도가 그렇듯 휴양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 연평균기온이 20~27 도 수준이라 ,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돈 많은 북유럽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 소설 ‘ 톰 소여의 모험 ’ 과 ‘ 허클베리 핀의 모험 ’ 을 쓴 마크 트웨인이 1897 년 여행기 ‘ 적도를 따라서 ’ 에서 ‘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한 다음 천국을 만들었다 ’ 고 극찬한 바로 그 섬이다 . 산호초로 둘러싸인 177km 해안은 기막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유럽인의 겨울철 고급 휴양지이자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을 만큼 모리셔스는 특히 유럽인들 사이에 최고의 휴양지로 자리하고 있다 .
자연과 풍경은 천국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지만 모리셔스의 근대사는 아름다운 자연과는 대조적으로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 한때 유럽 열강이 이 섬을 차지하려고 서로 다퉜기 때문이다 . 1598 년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작 마우리츠 (Maurits) 가 이 섬을 식민지로 만든 뒤 이름조차 ‘ 모리셔스 ’ 가 됐고 , 1715 년에는 프랑스가 네덜란드 인들을 쫓아내고 100 여 년간 지배하면서 오늘날 지명 대부분이 프랑스어이며 , 19 세기에는 영국 지배를 받으면서 공용어가 프랑스어와 영어로 굳어졌다 .
천국 같은 땅인지라 산호초 해안선을 따라 줄줄이 들어선 리조트만 70 곳이 넘고 , 해안을 낀 골프장이 12 곳에 이른다 . 아프리카대륙에선 남아공이 450 곳으로 골프장이 가장 많지만 좁은 국토 면적으로 보면 모리셔스 또한 골프장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
섬 서북쪽 수도 포트루이스 남쪽에 위치한 짐카나클럽 (Gymkhana Club) 은 파 68 에 전장 5025m 의 짧은 코스인데 , 개장 연도가 1844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아프리카에서 최고 오래된 코스다 . 영국이 식민지를 넓혀가던 시절 , 영국 해군사령부 막사 인근에 지은 9 홀 코스가 그 시작 . 이후 1950 년대 9 홀을 증설해 18 홀 코스로 운영되고 있다 . 붉은 지붕의 2 층 클럽하우스가 옛 건물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영국에서 시작된 골프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를 따라 호주 , 인도 , 싱가포르로 진출했고 , 심지어 1898 년에는 동북아 끝 한국 원산이란 곳에도 6 홀 코스를 만들었다 . 영국 장교들이 주둔지에서 여가를 즐기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던 곳이 바로 골프장이었다 .
짐카나클럽하우스 벽에는 각종 대회 기록이 수없이 많은데 ,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1905 년 클럽챔피언전을 치렀다는 기록이다 ( 그해 한반도에선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됐다 ). 15 번 홀 오른쪽 벽을 따라 모리셔스 군용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 영국 해군이 막사 땅으로 썼던 곳이다 .
벨옴브르 리조트의 헤리티지골프클럽에서 열린 이번 아프라시아뱅크 모리셔스오픈에선 남아공 조지 쾨지가 덴마크 투르비옹 올레센을 두 번째 연장전에서 누르고 우승컵을 안았다 . 그 옛날 , 각 제국이 모리셔스 땅을 두고 쟁탈전을 벌였던 것처럼 3 개 투어의 선수들이 상금 쟁탈전을 벌였다 . 이 대회에 모리셔스 출신 선수는 단 한 명도 출전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