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뒷담화,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8일

[ 영화 ‘ 사도 ’ 뒷담화 ② ] 하와이국제영화제 개막작 ‘ 사도 ’ 해외팬 반응 ‘ 주목 ’

[(아시아엔 =편집국) 지난 9 월 개봉된 이준익 감독의 < 사도 >(The Throne) 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비운 ( 悲運 ) 의 죽음을 맞는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비극 ( 悲劇 ) 적인 8 일간의 기록을 고스란히 영화로 담았다 .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늘이 맺어준 관계이기 때문에 천륜 ( 天倫 ) 이라고 한다 .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은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다 .

< 사도 > 가 11 월 12~22 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제 35 회 ‘ 하와이국제영화제 ’ 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 지난 1981 년 시작한 하와이국제영화제는 6 개의 하와이 섬에 위치한 12 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전세계 영화 200 여편을 상영하는 북미 최대 규모의 영화제 중 하나이다 .

1762 년 ( 영조 38) 영조가 자신의 외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죽게 만든 참변을 일으킨 것은 왕세자 ( 후일의 사도세자 ) 를 둘러싸고 표면화된 갈등이다 . 즉 노론 일부의 불만을 수습하기 위해서였건 , 일부 궁중세력의 모함 이였건 , 이상성격으로 인해 임금이 되기에 부적절한 인물이어서 미리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간에 영조로서는 고통과 좌절을 받았다 .

‘ 뒤주 ’ 는 곡식을 담아두는 궤 ( 櫃 ) 로 통나무나 널빤지로 짜서 만든다 . 통나무로 만드는 것은 밑동과 머리에 따로 널빤지를 대어 막고 , 머리 부분의 한쪽을 열도록 문짝을 달아 곡식을 넣거나 퍼낸다 . 널빤지를 짜서 만드는 뒤주는 네 기중을 세우고 벽과 바닥을 널빤지로 마감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머리에 천판을 설치한다 . 천판은 두 짝으로 만들어 뒤편의 것은 붙박이로 하고 앞쪽으로 여닫는다 . 여닫는 데는 쇠 장석을 달아 자물쇠를 채운다 . 가정에서는 대개 대청마루에 두고 곡식 , 주로 쌀을 담아두었다 . 필자도 1950 년대 중 ㆍ 고등학생 시절 우리 집 대청마루에 있던 뒤주를 기억하고 있다 .

영화 ‘ 사도 ’ 는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있던 8 일 동안 그의 성장과정 , 아버지 영조와의 심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 영조는 아들을 뒤주에 가둔 후 쇠못을 박아 죽게 하여 엽기적인 방식으로 집행된 측면이 있다 .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경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다 . 이에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을 추구한 임금이다 .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한다 . 어려서부터 총명한 세자에게 큰 기대를 가졌으나 , 자라면서 무예와 그림에 더 흥미를 보이고 아버지의 기대를 부담스러워한다 . 또한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 이에 비극적인 가족사가 전개된다 .

영조는 조선 후기 가장 위대한 성군 ( 聖君 ) 중 하나로 꼽히며 조선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 (52 년 ) 동안 옥쇄 ( 玉碎 ) 를 쥐고 있었다 . 그러나 영조는 뒤틀리는 게 있으면 임금 자리를 사도세자에게 양위하겠다고 했다 . 즉 , 왕위를 후계자에게 계승시킨다는 양위 ( 讓位 ) 선언을 5 번이나 했다 . 양위파동은 때로는 신하들의 충성도를 시험해 보기도 하고 , 때로는 과거 자신의 치부 ( 恥部 ) 를 덮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 사도세자는 양위파동과 대리청정으로 인하여 극심한 불안증세를 나타냈다 .

글: 박명윤 < 아시아엔 > ‘ 보건영양 ’ 논설위원 ,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