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강정호 기자) 문화재청 ( 청장 나선화 ) 은 ‘ 조선왕조의궤 ’ 등 10 건을 국가지정문화재 ( 보물 ) 로 지정 예고하였다 .
‘ 조선왕조의궤 ’ 는 조선왕조에서 길례 ( 吉禮 )· 흉례 ( 凶禮 )· 군례 ( 軍禮 )· 빈례 ( 賓禮 )· 가례 ( 嘉禮 ) 를 비롯한 여러 대사 ( 大事 ) 를 치를 때 후세의 참고를 위하여 그와 관련된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 의궤는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되었으나 , 조선 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한 것이다 .
조선왕조의궤는 제작 방식에 따라 손으로 쓴 필사본 ( 筆寫本 ) 과 활자로 찍어낸 활자본 ( 活字本 ) 으로 구분할 수 있고 , 열람자에 따라 임금이 보는 어람용 ( 御覽用 ) 과 춘추관 · 지방 사고 ( 史庫 ) 등에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 ( 分上用 ) 으로 나누어진다 . 이번에 지정 예고된 조선왕조의궤 1,760 건 2,756 책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제작된 의궤로서 어람용 의궤 , 분상처가 확인되는 분상용 의궤 , 분상처가 확인되지 않는 의궤 중 필사본 등이 해당된다 . 조선왕조의궤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서 , 예법을 중시하고 기록을 철저히 보존하려는 조선 시대의 우수한 기록문화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으며 , 2007 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 는 1307 년에 작가 노영 ( 魯英 ) 이 흑칠한 나무 바탕 위에 금니 ( 金泥 , 아교에 갠 금박가루 ) 로 그린 금선묘 ( 金線描 ) 불화이다 . 앞면에는 아미타여래와 팔대보살을 표현하였고 , 뒷면에는 고려 태조가 금강산 배재 ( 拜岾 , 절고개 ) 에서 담무갈보살에게 예경 ( 禮敬 ,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드림 ) 하였다는 전설을 그렸다 . 앞면은 엄격한 상하 2 단 구도 , 섬세하고 우아한 귀족적인 인물표현과 유려한 선묘 , 단아한 형태미를 기반으로 하는 고려불화의 특징을 잘 담았고 , 뒷면은 뚜렷한 윤곽선과 치형돌기 ( 齒形突起 ,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 모양으로 돋아난 부분 ), 침형세수 ( 針形細樹 , 나무를 바늘 모양으로 표현하는 기법 ) 등에서 북송대 이곽파 ( 李郭派 ) 화풍을 반영하였다 . 고려 시대 사경화 ( 寫經畵 , 불교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한 그림 ) 를 연상시키는 뛰어난 금선묘 기법과 높은 완성도 , 작가와 조성연대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고려 불화와 산수화풍 연구에 있어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
‘ 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 ’ 는 1776 년에 천은사 대법당 ( 극락전 ) 중단 ( 中壇 ) 에 봉안하기 위해 화련 ( 華連 ) 등 14 명의 화승 ( 畵僧 ) 이 제작한 것이다 . 삼장보살도는 수륙재와 관련된 불화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16 세기 이후 많은 수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 천은사 삼장보살도는 18 세기 후반기 불화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 현존하는 삼장보살도 중 유일하게 화기 ( 畵記 ) 란에 흰색 글씨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낱낱이 기록해 놓아 삼장보살의 도상 ( 圖像 )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
‘ 구례 천은사 관세음 · 대세지보살좌상 ’ 은 보살상의 복장 ( 腹藏 , 불상을 만들 때 뱃속에 봉안하는 사리 등의 물건 ) 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태능 ( 太能 ) 과 영원 ( 靈源 ) 의 발원으로 조각승 현진 ( 玄眞 ) 을 비롯한 5 명의 조각승들이 1614 년 6 월에 조성한 불상이다 . 이 2 구의 보살상은 중생을 닮은 듯 실재감 있는 얼굴 , 힘 있는 선묘 , 늘씬한 비례감을 갖춘 17 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
‘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 은 2012 년 6 월 석탑의 해체 수리 시 지대석 윗면에 마련된 사각형 홈에서 발견된 것이다 . 불감 ( 佛龕 ) 은 지붕의 네 면의 모를 죽인 녹정형 ( 盝頂形 ) 으로 , 정상에는 2 개의 고리가 달려 있고 , 중앙 벽면에는 타출 ( 打出 ) 기법 ( 금속의 안팎을 두드려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기법 ) 으로 아미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장엄하게 나타내었으며 , 문비 ( 門扉 , 문짝 ) 에는 역동적인 금강역사가 지키고 서 있다 . 불상은 모두 7 구인데 , 아미타여래 · 관음보살 ·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삼존상과 2 구의 여래와 관음 · 지장보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 불상들은 여말선초 때에 원 · 명대 라마 불교 양식을 수용하여 제작된 외래적 요소가 강한 불상들로 , 외래 양식의 전래와 수용 과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 또한 ,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불감과 7 구의 불상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
‘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 은 42 수 ( 手 ) 천수관음상으로 , 1894 년에 작성된 ‘ 흥천사사십이수관세음보살불량시주 ’ 현판 기록을 통해 늦어도 19 세기부터는 흥천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천수관음신앙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성행하였으나 불상으로 제작된 예는 극히 드물다 . 이 천수관음보살상은 가늘고 긴 신체 위에 표현된 정교한 영락장식 , 화려한 문양이 투각된 원통형의 보관 ( 寶冠 ), 보발 ( 寶髮 ) 의 가닥이 섬세하게 새겨진 보계 ( 寶髻 ), 신비감이 드는 얼굴 등에서 고려 중 · 후기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판단된다 . 천수관음보살상은 고려 ~ 조선 초에 제작된 매우 드문 예로서 천수관음 도상과 관음신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 익재난고 ’ 권 6~7 및 ‘ 역옹패설 ’ 은 고려 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 益齋 ) 이제현 ( 李齊賢 , 1287~1367 년 ) 이 지은 책이다 . ‘ 익재난고 ’ 권 6~7 은 시문집으로 전 10 권 가운데 2 권 1 책본이며 , ‘ 역옹패설 ’ 은 시문평론집으로 4 권 1 책본이다 . 이들 판본은 1432 년에 강원도 원주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인출 ( 印出 ) 한 목판본으로서 , 조선이 개국한 지 40 년이 지난 후임에도 고려의 국왕과 원 ( 元 ) 의 천자를 높이기 위한 개행 ( 改行 ) 과 간자 ( 間字 ) 의 방식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고 , 고려본의 문집에서 자주 보이는 행초 ( 行草 ) 의 혼용 , 그리고 같은 자가 반복될 때에 쓰이는 기호인 ‘ ⺀ ’ 표도 자주 쓰이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 한문학연구와 서지학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 퇴계선생문집 ’ 및 ‘ 퇴계선생문집목판 ’ 은 퇴계 이황 ( 退溪 李滉 , 1501~1570 년 ) 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 더욱이 그 내용의 풍부함이나 분량의 방대함 , 그리고 이를 편집하고 간행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문집편집의 방법과 성과는 조선 후기 문집의 편집과 판각의 전범 ( 典範 ) 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 ‘ 퇴계선생문집 ’ 은 46 권 24 책 ( 본집 45 권 23 책 , 별집 1 권 1 책 ) 으로 경자년 (1600 년 ) 초간본이며 , ‘ 퇴계선생문집목판 ’ 은 752 매 ( 본집 709 매 , 외집 15 매 , 별집 28 매 ) 로서 초간본을 인출한 목판이다 . 한국 문집의 연구와 조선 중기의 목판 인쇄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 조선왕조의궤 ’ 등 10 건에 대해 30 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 ·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