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 모레인 호수 ’ 에 가야만 하는 이유
캐나다 밴쿠버에서 밴프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긴 건 저만치 길어진 그림자였다 .
“ 아이고 삭신이야 .”
자그마치 열일곱 시간 .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버스에 꼼짝없이 갇혀있느라 팔이며 다리며 안 아픈 곳이 없다 . 아닌 게 아니라 ‘ 아이고 ’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 로맨틱도 좋고 , 경비 절약하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진작부터 알았으면 돈 좀 더 들여서 비행기를 타고 올 걸 그랬다 .
“What’s your name?”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 한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 신기하게도 그가 내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어디서 왔느냐가 아닌 , ‘ 이름 뭐야 ?’ 였다 .
그의 이름은 Gilliam.
영어 발음이 조금 이상하다 싶더라니 사는 곳이 캐나다 동부의 퀘벡이란다 .( 퀘벡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함께 쓴다 .)
‘ 너나 나나 영어발음 안 좋기는 비슷하네 ’ 라는 공감대가 생기고 나서야 .
혓바닥 아래에 감춰둔 콩글리시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
더 신기한건 , 내가 개떡같이 콩글리시를 내뱉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것 .
그런 그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 여행 하며 처음으로 200% 의사소통이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
“ 내일 같이 갈래요 ?”
줄곧 유쾌함으로 중무장했던 그의 화법이 조심스러워진 것은 내일 여행 계획을 물었을 때였다 . 퀘벡에서 이곳 , 밴프까지 오로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했다는 그의 매일 매일의 여행은 동행자를 구하면서 시작된단다 .
자신의 목적지보다는 동행자의 목적지를 우선적으로 맞추는 게 그 나름의 철칙이라 이곳까지 탈것을 얻어 타오는 데만 무려 두 달이 걸리더라는 게 그의 부가설명이다 . 그런 그에게도 목적지가 없을 리 없다 . 내일 당장 레이크루이스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야하는데 마땅한 교통편이 없으니 그 속은 얼마나 답답할까 .
“Jeon, 혹시 차타고 여행할거야 ? 그럼 나도 좀 태워주면 안 돼 ?”
당장 내일의 동행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그의 동행 제안은 그의 것만은 아니었다 . 렌트카 여행 첫날을 함께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말해준 게 오히려 고맙더랬다 .
“ 내 뺨을 때려 ! 촵촵 !”
‘ 따르 르 르르릉 ’
어젯밤 . 윌리엄 그리고 그의 친구 올리비엑과 밤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느라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해가 중천이다 . 옆 침대 누군가의 알람이 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날 하루는 공쳤을 게 뻔하다 .
비몽사몽 . 급한 마음에 눈에는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채로 세수도 안하고서 운전대를 잡았다 .
“Jeon, 운전면허증은 있는 거지 ?”
두 손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내가 아무래도 불안해보였던지 계속해서 운전면허증은 있는지 , 면허는 언제 땄는지 , 운전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묻는 윌리엄이다 .
“ 놀라지마 윌리엄 . 사실 , 운전 3 년 만에 하는 거 같아 … . 괜찮겠어 ?"
“ …… ”
캐나다에서 네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것도 불안했지만 , 무엇보다 불안한건 가뜩이나 아침잠 많은 내가 운전한다는 것이었다 .
“ 윌리엄 . 혹시라도 내가 졸면 날 좀 때려줘 . 이렇게 !”
윌리엄과 몇 번의 예행연습까지 하고나서야 일단 안심이다 .
( 아닌 게 아니라 , 그의 손은 생각이상으로 매웠다 .)
록키의 산자락을 휘휘 돌아 모레인호수로 향하는 길 . 밴프 시내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을 못 찾아 시내를 몇 바퀴나 돌고 돈 끝에야 겨우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 , 깊은 한숨 쉴 겨를도 없이 장엄한 록키의 산자락이 펼쳐진다 .
분명 어제 밴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본 그것과도 다를 게 없는 풍경임에도 내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서 거대한 자연 속을 누비는 기분은 색다르다 .
몇 개나 될지도 모를 록키의 고봉들을 뒤로하고 꽤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모레인호수 진입로에 들어서고 보니 지금껏 스쳐간 로키산자락이 발아래 펼쳐진다 .
그런 풍경을 그저 스쳐지나가며 감상하기엔 아쉽던 나머지 , 차 두 대가 겨우 지나칠 만큼 좁은 도로에 차 세워둘 공간만 있다면야 어김없이 차를 세워야 직성이 풀렸던 우리였다 .
“ 말할 필요도 없어 ”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겨우 주차해두고서 모레인 호수에 걸어 도착했을 때 , 그동안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던 우리 둘의 입은 약속이나 한 듯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
10 개나 되는 뾰족뾰족한 록키의 산봉우리가 지그재그 모양을 하며 나열되어있고 , 옥빛의 빙하호는 오후의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 족히 2 천 미터 이상의 산중임에도 바람 한 점 없다 .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풍경에 ‘ 우와 ’ 라는 그 흔한 감탄사마저 뱉지 못한 것은 비단 나 혼자의 일은 아니었다 . 이곳을 처음 접한 여행자들 대부분은 한참이나 말문이 막혀 있다가 풍경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나서야 ‘ 아 !’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다 .
모레인 호수의 아름다움은 ‘ 말 할 필요도 없는 것 ’ 으로 정리하고 싶다 . 아닌 게 아니라 , 어느 정도껏 아름다워야 ‘ 꿈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 ’ 이라고 이야기할 텐데 , 내 상상력이 부족한 건지 견문이 좁은 것인지는 몰라도 꿈속에서 조차 만나본 적 없는 풍경이다 .
이쯤 되면 눈으로 직접 보는 것 이상으로 표현해낼 재간이 없는 것은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일터 .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모레인 호수에 가야만하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
하늘에 닿을 듯 말 듯한 돌산을 올라서 , 모레인 호수 바로 옆의 커다란 돌산을 오르면 전망대가 있는데 , 이곳에서 보는 모레인 호수는 가히 압도적이다 . 하늘로 곧바로 이어진 듯한 돌산을 올라가다보면 어느덧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
호수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10 개의 봉우리가 일렬로 쭉 나열되어있고 , 그 아래로 끝없는 침엽수림과 바닷물보다 더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 ( 지금은 신권이 나왔지만 ) ‘ 캐나다 20 달러 뒷면 ’ 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단다 .
( 한참이나 20 달러를 요리조리 살펴봐도 모레인호수가 없기에 윌리엄에게 물어봤더랬다 .)
“ 맥주 한 캔 할래 ?”
가뜩이나 술 좋아하는 윌리엄에겐 이렇게 멋진 풍경까지 있으니 안주가 필요 없는 모양이다 . 주섬주섬 가방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물마시듯 한 모금 마시고선 내게 한 캔을 건네는 그다 . 정말 마음 같아선 몇 캔이고 마셔주고 싶은 마음인데 , 곧 운전을 해야 한다며 한사코 마다하는 내 마음은 오죽할까 .
캐나다 렌트카 여행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 운전면허를 따놓은 것을 후회했던 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있었다 .
모레인호수에서는 다람쥐도 친구 !
풍경감상에 넋 놓고 있는데 , 뒤편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 줄곧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던 사람들이 한곳에 우르르 몰리더니 , 바위사이로 뭔가를 던지기 시작한다 . 대체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가 있기에 모레인 호수가 뒷전인가 싶어 가까이 가봤더니 , 살이 오른 다람쥐들이 관광객들이 건네는 아몬드를 받아먹는다 .
늦게야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나와 윌리엄은 그제야 가방에 있던 피넛을 꺼내 들어봤지만 , 이미 먹을 만큼 먹어치운 다람쥐의 눈길을 잡아끌진 못했다 . ‘ 하기야 , 캐나다에선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건 엄연한 불법 ’ 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쉬이 감춰지지 않는다 .
“ 그럼 사진이라도 찍어야지 !”
꽤나 씁쓸한 표정을 짓던 윌리엄이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다람쥐에게 살며시 다가갔을 때 , 무슨 일인지 다람쥐가 휴대폰에 관심을 보인다 . 다람쥐는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가까이오더니 냄새를 맡고 몇 번 만져보더니 그제야 먹이가 아님을 알아차렸나보다 . 움켜잡았던 휴대폰을 내동댕이치고는 한달음에 달아나는 녀석이다 .
“ 이제 그만 돌아가자 ”, 그 말 한 마디가 왜 그렇게 힘들던지
다람쥐와 악수도 했고 , 모레인 호수 풍경도 실컷 봤고 , 호수주변 산책도 정도껏 했으며 맥주도 다 마셨는데 , 더 이상 할일이 없을 것만 같은데 , ‘ 이제 그만 돌아가자 ’ 그 말 한 마디가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
왠지 지금 돌아서면 영영 보지 못할 풍경일 것 같고 , 그러다가도 오늘 본 풍경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해서 .
모레인 호수에서 몇 시간을 머물렀음에도 내 표정에는 ‘ 안타까움 ’ 이 적혀있었던지 , 윌리엄 역시 내게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눈치다 .
“ 윌리엄 , 게스트하우스 가야하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나야지 마음먹은 것은 좋은 풍경도 좋지만 ,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윌리엄과 저녁식사 한 끼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 모레인 호수야 내일이고 모레고 다시오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
다시 와야겠다 . 모레인 호수 ( 모레 in 호수 )
해질 무렵 모레인호수를 만나본적 있나요 ?
모레인 호수를 처음 만난 후 이틀 뒤 , 나 혼자 모레인 호수를 다시 찾았다 . 늦은 오후의 모레인이 그토록 아름답더라는 올리비엑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 올리비엑의 말마따나 모레인의 해질 무렵 풍경은 오후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
해질 무렵 . 햇빛이 낮게 스며들 즈음이면 , 모레인호수의 풍경은 또다시 달라진다 . 옥빛으로 영롱히 빛나던 호수 물은 코발트색을 띄고 , 역광으로 떨어지는 햇볕은 호수를 둘러싼 열개의 봉우리를 비춘다 .
마치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 아름다움을 넘어선 신비로움이 감도는 것도 해가 산 뒤 편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
모레인 호수 (Moraine Lake)
* 찾아가는 법 : 대중교통편이 거의 없다 . 렌트카가 거의 유일한 교통편 . 레이크루이스드라이브 (Lake Louise Drive) 를 따라 가다가 모레인레이크로드로 진입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10 여 킬로미터 . ( 위험한 구간이 제법 있으니 과속하거나 한 눈 팔지 말자 .) 워낙 도로표지판이 잘 되어있어서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
※ 9 월 중순부터 5 월까지는 진입로가 눈에 덮여있어 진입이 통제된다 . 따라서 모레인호수를 볼 수 있는 시기는 6~9 월 초순까지 !
※ 주말이나 성수기 시즌에는 일찍 가지 않으면 차 세워둘 공간이 마땅찮다 . 될 수 있으면 이른 시간에 찾아가는 것이 편하다 .
※ 자동차로 10 여분 거리에 레이크루이스가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정리하는 게 좋다 .
* 입장료 :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