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여섯시. ‘잉글리시 비치(English Beach)’로 갔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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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여섯시 . ‘ 잉글리시 비치 (English Beach)’ 로 갔던 이유

#.01

밴쿠버에선 자전거 페달 밟는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곤했다 .
자전거 대여 비용이 만만치않았지만 크게 게의치 않았다 .
다운타운의 콜하버 (Coal Harbor) 에서 스탠리파크 (Stanley Park), 잉글리시비치 (English Beach),
선셋비치 (Sunset Beach) 그리고 펄스크릭 (False Creek) 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자전거도로를 두고도
자전거를 타지않는것은 꼭 죄를 짓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
‘ 꼭 가봐야 할 곳 ‘ 을 정해두지는 않은채


#.2

페달 밟는것 자체가 여행이 되곤했지만 매일 같은 시간 , 반드시 멈추게 된 곳은 있었다 .
스탠리파크가 끝나는 지점부터 이어진 잉글리시 비치였다 .

따뜻한 햇살을 가득 머금은 숲을 지나 바다에 닿으면
너른 잔디밭과 모래사장이 평행을 이룬채 두 눈 가득 펼쳐졌다 .

가슴보다 눈이 뻥 뚫리는 풍경이라는거 , 여길두고 하는 말일까 .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과 금빛 수면 , 사람들 마다의 긴 그림자가 아니었다면
그저 입체적인 그림으로 착각할뻔 했다 .


#.03

‘ 징 – – – – – – – -‘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 체인이 길게 감기는 소리가 멈출때쯤 , 해변 진입로가 나왔다 .
진입로를 찾지못해 두리번대던 고개도 멈췄다 .

아 ! 찾았다 .

#. 04
불과 며칠전에 밴쿠버 불꽃축제가 끝난터라 해변은 분주했다 .
축제기간동안 쳐져있던 높다란 철골구조물을 해체하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

축제 안내부스는 어느덧 자취를 감췄고 , 이제는 뼈대뿐인 관중석만이 썰렁하게 남았다 .
그마저도 내일이면 작업이 모두 마무리 될것 같았다 .

열광의 축제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은 빨랐고 차분했다 .
분주한 인부들 뒤로는 밴쿠버 시민들의 일상이 덤덤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 , 내게 주어진 매일을 차근히 갈무리하며 살아야지 .


#. 05

내친김에 그들이 현재를 대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
해변가에 놓인 길다란 통나무에 자전거를 세운채 널부러져앉았다 .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 , 독서를 하거나 쉬는 사람들 .
혹은 해 지기전 마지막으로 물놀이 하는 사람들 .
같은 시간 , 또 같은 공간을 즐기는 방법은 제각각이었지만 하나같이 행복함에 젖은듯한 얼굴이다 .

내심 부러웠다 .

일상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는지 .. 그리고 삶을 어떻게 즐기는지를 아는 것 같아서 .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에서 여행자의 마음을 그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엔 언제나 많은 생각과 결심 , 숱한 벽들이 따르곤 했다 .
그러다보면 어느새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란 어려웠다 .

그 순간 순간이 내 삶이고 역사인것을 , 그렇게 생각만하다 허망하게 흘려보낸거다 . 우울한 생각들은 얼마가지 못해 사라졌다 .
결국 지금을 즐기는 것만이 현재에 충실한 삶의 태도일거라는 생각에서다 .

온 세상을 노랗게 덧칠한 잉글리시 비치의 노을진 풍경도 그런 생각에 불씨를 지폈다 .

눈앞에 놓인 멋진 풍경을 애써 모른척 하며 고민에 빠져있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거리가 아닐까 .


잉글리시 베이 뒷편으로 지는 태양 .
반짝이는 모래톱과 수면 .
햇빛 가득 머금은 나무 .
그리고 그 자연 속의 캐나다 사람들 .
이 멋진 풍경을 보고있으면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
실타래처럼 꼬였던 생각과 고민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완전히 사라졌다 .

매일 저녁 여섯시 .

페달을 밟아 잉글리시 비치에 와야만 했던 이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