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과 물 그리고 푸른 가슴를 찾는 곳, 우이동 용덕사

374

2 월말이니 겨울의 끝자락일터인데 추위는 가시지 않고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눈발을 흩뿌리기 시작한다 .
우이동 버스 정류장을 조금 지나 사이길로 들어서 얼마지 않아 용덕사 입구에 다다른다 .

그 잠깐 사이 눈발은 더 짙어지고 함박눈이 내리는 작은 산길 초입에서 스님을 처음 뵙는다 .

‘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 길이 미끄러우니 찬찬히 살피며 올라가시지요 ’ 짧은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먼저 산길을 짚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

용덕사 입구는 소형차 한 대가 다닐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우이동계곡의 들머리이다 . 바로 지척에 세속의 화려함과 번잡함이 그득하지만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이 곳은 벌써 인간계와 다른 세상인 듯하다 .

천천히 걸음을 놓는 스님의 회색 승복 위에 눈꽃이 피어난다 . 회색보다 더 맑고 밝은 흰 눈꽃은 인간의 번뇌와 회한처럼 잠시 머물다가 흩어져 사라진다 .
우산을 내미는 보살의 청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어깨 위에 눈꽃들을 얹고 더욱 짙어진 눈발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

‘ 바위 형상이 묘하지 않습니까 ? 오랫동안 용덕사를 찾았던 보살이 알려주더군요 . 두꺼비바위랍니다 .’ ‘ 이리로 오십시오 . 여기서 보시면 좀 더 두꺼비 같을 겁니다 .’ 스님이 가리키는 바위는 영락없는 두꺼비 모양을 하고 있다 .

전래로 두꺼비는 복을 상징하였으니 흐벅지게 내리는 눈 사이로 보이는 두꺼비바위의 형상이 마음을 더욱 푸근하게 한다 .

‘ 용덕사 주변에는 재미있는 모습의 바위들이 많습니다 . 이 곳을 오르내리며 코끼리 여우 등의 이름을 붙여 준 바위들이 제법 있습니다 .’ 스님의 말씀을 듣는 사이 계곡의 오른쪽에 자리한 용덕사의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

산사 입구의 작은 길을 걸어온 10 분 남짓의 시간은 몇 리 산길을 걸어야 겨우 당도할 수 있는 깊은 산속의 맑은 암자를 턱하니 펼쳐 보인다 .

‘ 우선 목부터 좀 축이시지요 . 이물은 보약보다 좋다는 서출동류수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릅니다 . 동쪽이 서쪽보다 지세가 높기 때문이지요 . 이 물은 서출동류인데 , 마시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귀한 물입니다 .’

스님이 물 한 그릇을 바가지에 담아 권하시면서 설명을 한다 .

‘ 어느 가뭄이 심하던 해에 계곡물이 마르고 스님들이 마실 물을 찾아다니던 중 바로 작은 굴 같은 곳에 몽실몽실 스며 나오는 맑은 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 서출동류에 석간수이니 이만한 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

용덕사는 우이동에 위치한 작은 절이다 . 높이가 10 미터에 이르는 바위에 음각한 약사마애불로 유명한 곳이고 불자라면 한번쯤 다녀 가야 할 영험한 곳으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

‘ 터가 좁아서 큰 불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 그저 마애불을 정갈한 마음으로 몇바퀴 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요 . 경전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세속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청정도량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온갖 상념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중생의 상처는 치유받을 것입니다 . 그것이 도를 터득하는 것일 겁니다 .’

‘ 아직 마애불을 온전히 돌며 마음을 닦을 수는 없습니다 . 조금 안타깝습니다 . 이곳저곳이 막혀있습니다 . 봄이 오고 조금 형편이 좋아지면 한번 일을 저질러볼까 합니다 . 이 작은 절을 천리길 멀다않고 찾는 분들을 위해 해야할 도리니 서둘러야지요 .’ 마음 잡수신 일이 쉽지만은 않음을 내비치시듯 스님은 말끝을 흐린다 .

마애불 몇걸음 뒤로는 토굴이 자리하고 있다 . 산신각이다 .

‘ 예전에 이 일대에서 사신 분들은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냈습니다 . 마을에 행운과 복록이 넘쳐나고 액운을 멀리할 수 있도록 빌었던 곳입니다 .’ 요즘도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습니다 .

말씀을 마치자 공양이나 하자며 먼저 걸음을 놓으신다 . 노스님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으실 연세시겠지만 걸음걸이며 목소리 그리고 움직임으로는 나이를 어림잡기 어렵다 .

몇 가지 나물반찬으로 점심 공양을 하며 스님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
‘ 동진출가한 터라 설움이 많았어요 . 내가 어릴 때는 절이 참으로 빈한했어요 . 탁발을 해서 노스님들과 나누어 먹었지요’
‘ 탁발을 다니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뒤를 쫒아 다녔어요 . 아이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으며 탁발을 하노라면 촌로들이 아이들을 나무라며 “ 대사 , 곡차 한 사발 하고 가시오 .” 라며 위로를 해주곤 했었어요 .’

화범스님은 시서 (詩書 ) 에 능하신 분이다 . 시인으로 등단을 하셨고 서예와 서화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스님으로부터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뜻은 슬며시 접어버렸다 . 어떤 연유에서인가 스님은 그리 내켜하시지 않는다 .

‘ 그저 그때는 화 (火) 가 좀 많았습니다 . 어린 시절 그 힘든 시간들이 가슴에 화를 조금 남겨 두었었나 봅니다 . 시를 쓰고 그림을 배웠던 것은 화를 벗어내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 가진 것도 없고 가질 필요도 없는 중이니 이루고자 하는 것도 없습니다 . 용덕사를 찾는 분들이 조금 더 편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고 머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입니다 . 서울시내에서 불과 삼십분 이내의 거리에 이런 산사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지요 .
들어 보십시오 . 바람소리 물소리 풍경소리 ……. 마음이 잦아들지 않습니까 ?

다시 바랑을 걸치고 나설 채비를 하신다 . 우산을 챙겨주시던 노보살은 스님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못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배웅에 나선다 .
‘ 나오지 마십시오 . 내 또 다시 옵니다 .’

내려오는 길은 제법 눈이 쌓였다 . 겨우내 보지 못한 설경을 용덕사에서 제대로 담아 놓았다 .

‘ 자주 오십시오 . 혹여 마음이 산란하시거든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 더운 밥 한 그릇 , 찬이 없어도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 용덕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

신기하게도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펑펑 내리던 눈이 어느새 멎었다 .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맑게 갠 짙푸른 하늘 아래 , 바로 사람들 사는 마을이다 .
글 사진: 이정찬/ 미디어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