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월인천강지곡 권상’ 등 8건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 , ‘ 월인천강지곡 권상 ’ 등 8 건 국가지정문화재 ( 국보 · 보물 ) 지정 예고
(미디어원=강정호 기자) 문화재청 ( 청장 나선화 ) 은 ‘ 월인천강지곡 권상 ( 月印千江之曲 卷上 / 보물 제 398 호 )’ 등 2 건과 ‘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 ( 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 )’ 등 6 건을 각각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

월인천강지곡 권상 ( 月印千江之曲 卷上 / 보물 제 398 호 ) 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지어져 활자로 간행된 점에서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 비록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 출판 인쇄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 국보로 승격 지정할 가치가 있다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 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 / 보물 제 139 호 ) 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며 , 균형 잡힌 안정된 자세와 적절한 비례를 갖추고 있다 . 보관과 귀걸이 , 팔찌 , 가슴 영락 ( 瓔珞 , 구슬 목걸이 ) 장식 등 세부표현도 화려하고 섬세하다 .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국보 제 48 호 ) 의 남쪽 전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자세라는 점에서 ,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하나의 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 이와 같은 탑전 ( 塔前 ) 공양보살상은 이전에는 찾기 힘든 고려 전기적 특징인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도상과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

현재 보살상과 함께 조성된 팔각 구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 석조보살상은 보물로 별도 지정되어 별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 이미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묶어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 조성 당시의 조형적 ,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 ( 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 ) 은 태조 이성계 ( 李成桂 ) 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많은 신하와 함께 발원한 사리장엄구로서 1932 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 이 석함 안에서 사리외기 ( 舍利外器 ) 인 백자대발 ( 白磁大鉢 ) 4 개 ,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기 ( 銀製鍍金 喇嘛塔形舍利器 ), 이 사리기를 안치한 은제 팔각당형사리기 ( 銀製 八角堂形舍利器 ), 그리고 청동발 ( 靑銅鉢 ) 등이 발견되었다 .

이 유물 중에는 발원자와 발원 목적과 내용 , 제작 장인 등 조성경위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 명문이 갖는 사료적 가치 외에도 출토 장소 ,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이 시기에 사용된 공예기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 예술적 , 학술 가치가 크다 . 특히 , 백자사리기는 기년명 고려백자라는 점과 제작자가 ‘ 방산 사기장 심룡 ( 方山 砂器匠 沈竜 )’ 이라는 도공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자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
국새 황제지보 ( 國璽 皇帝之寶 ), 국새 유서지보 ( 國璽 諭書之寶 ), 국새 준명지보 ( 國璽 濬明之寶 ) 는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된 것을 2014 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2014.4.25.~26.) 당시 돌려받은 문화재이다 . 황제지보는 고종이 1897 년에 제작한 대한제국 국새이고 , 유서지보는 1876 년에 제작한 관리 임명에 사용했던 국새이며 , 준명지보는 1889 년에 제작한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되었던 국새이다 . 이러한 황제지보 , 유서지보 , 준명지보는 환수문화재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국가 행정용으로 사용된 역사성 , 왕실공예품으로서의 공예사적 예술성 , 의궤 등 다른 자료들과 상대 비교할 수 있다는 자료적 학술성 등 문화재적 지정 가치가 있다 .

협주명현십초시 ( 夾注名賢十抄詩 ) 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요를 염두에 두고 , 권람의 교정을 거쳐서 간행한 한국 ( 신라 ) 과 중국의 시인 30 명의 시선집이다 . 내용은 각 시인의 작품 중에서 7 언 율시 각 10 편씩 총 300 편을 뽑아 주해 ( 註解 ) 를 붙인 것이다 . 이 책은 경상도 밀양부에서 간행한 지방관판본으로서 , 한국인이 그 대상을 선정하고 직접 주해한 최초의 한 · 중 시선집으로 매우 귀한 사례이자 고려 시대의 한문학과 지방 출판사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

박동형 초상 및 함 ( 朴東亨 肖像 및 函 ) 은 1728 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 전신좌상본 ’ 및 1751 년에 그려진 ‘ 반신상본 ’ 과 각 함 ( 函 ) 이다 . 박동형 (1695~1739) 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중 하나인 박필현의 포획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공신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

두 초상은 동일 초본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신좌상은 유소 ( 流蘇 , 매듭 장식 ) 를 비롯해 옛 장황 ( 裝潢 , 서화의 표지 장식 ) 을 간직한 상태이고 반신상은 최근 장황을 새로이 바꾼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 초상들의 보관함은 처음 초상 제작 때 것으로 보인다 .

오사모 ( 烏紗帽 ,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 ) 에 단령 ( 團領 ), 소매 안으로 처리한 두 손 , 배경 없이 교의 ( 交椅 ) 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 , 쌍학흉배 ( 雙鶴胸背 ) 와 학정금대 ( 鶴頂金帶 ), 표피가 덮인 교의 , 족좌 위에 놓인 두 발 등 일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태로 그린 화가의 기량을 알려주는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품이다 .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 ( 국보 · 보물 ) 로 지정 예고한 월인천강지곡 권상 등 8 건에 대해 30 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 계의 의견을 수렴 ·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