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도네시아] 세계최대 단일 불교사원, 보르부두르’의 평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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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바 섬 중부에 있는 세계적인 불교유적지 보로부두르

적도를 중심으로 인도양과 태평양과 접해있는 인도네시아는 1 만 3000 개 정도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 300 여 종족이 살고 있는 나라로 풍속과 문화가 종족마다 달라 오지로 갈수록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이라도 대화가 어려운 곳이다 . 복잡한 사회 구성에서 빚어져 나오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이 나라의 매력이다 .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 시간 정도 걸리는 자바섬 중앙부에 위치한 요그야카르타 ( 현지에서는 족자카르타라고도 부른다 ) 는 한국의 경주에 비견되는 고대 문화유산 도시로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보로부두르 불교사원과 프람바난 힌두사원 유적지가 자리한다 . 인도네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적지로 유네스코는 1991 년 이 둘을 각각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

인도네시아 최대의 힌두 유적지인 프람바난 사원
요그야카르타에서 북서쪽으로 42km 떨어진 곳에 보로부두르 불교사원 유적지가 있고 , 남쪽 17km 지점에 프람바난 힌두사원 유적지가 있다 . 따라서 하루에 두 곳을 다 돌아볼 수는 있지만 좀 억지고 최소한 하루 정도는 숙박해 찬찬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

족자카르타의 불교유적은 건축학적, 종교학적인 가치는 물론 신비로움도 갖고 있다.

요그야카르타 시내에는 왕궁 , 목욕탕 유적 , 야시장 등 볼 만한 곳이 널려있다 . 불교사원과 힌두사원들도 곳곳에 있으며 두 양식을 혼합한 사원들도 도처에 보인다 . 규모의 장대함과 조각의 섬세함은 보는 이를 감탄하게 한다 . 찬란한 불교 문화는 두말할 나위 없고 , 우아하고 화려하며 섬세함을 고루 갖춘 아름다운 석조예술은 이곳을 찾는 이방인으로 하여금 더없는 황홀경에 젖어들게 한다 .
세계 7 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힐 만큼 신비스런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은 요그야카르타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40 분 걸리는 곳에 있다 . 주변은 메라피 산을 비롯한 3000m 높이의 화산들로 둘러싸인 녹음이 짙은 평야지대이다 . 보로부두르사원의 이름은 보로와 부두르의 합성어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 보로는 산스크리트어로 승방이라는 뜻이고 , 부두르는 자바 언어로 높게 쌓아 올린 곳 , 즉 언덕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 언덕 위의 승방 ’ 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
보로부두르 사원 벽면에 새겨진 배를 탄 모습의 돋을새김

보로부두르 사원을 방문하게 되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석조건축물과 거기에 새겨진 무수한 부조들이다 . 천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조각된 부조는 보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 또한 이렇다할 연장도 없었을 옛 시절에 어떻게 이처럼 큰 돌을 수천 개나 올려다 쌓았는지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
보로부두르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누가 , 언제 , 왜 만들었나 하는 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수수께끼였다 . 아직까지 뚜렷한 해답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조상의 숭배와 대승불교의 덕을 펴기 위해 8, 9 세기에 걸쳐 사일렌드라 왕조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

사일렌드라 왕국은 전형적인 불교 왕국으로 무역도 활발히 하여 당시 인도 등 주변국가와도 교류가 잦았던 나라이다 . 자바섬에서 번영을 누리던 사일렌드라 왕조가 멸망하면서 보로부두르 불교사원 역시 모습을 홀연히 감추었다 . 보로부두르 사원의 이러한 소멸에 대해서는 화산폭발로 인한 자연재해로 발생했다는 설과 이민족이 침입하여 파괴했다는 설 등 여러가지가 있다 .
황혼 무렵의 보로부두르 사원

수백년간 사람들의 이목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14 년 발굴 및 탐사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 이 작업은 당시 보로부두르 지역을 통치했던 영국의 스탬포드 래플스 (T.S.Raffles) 총독이 역사적인 기록을 보고는 문화적인 가치가 높다고 판단 , 유적 발굴지시를 내려 이루어진 것이다 . 1835 년에는 네덜란드 총독인 하르만의 명령으로 복원 공사도 이루어졌다 .

유럽인들이 보로부두르 사원에 좋은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 일부 몰지각한 유럽인들은 불상의 머리와 손을 절단하여 돈을 받고 다른 나라로 유출시켰다 . 이로 인해 보로부두르 사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로 많은 불상의 목과 손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발굴 후에도 풍화작용과 뜨거운 햇볕으로 붕괴의 우려가 있었다 . 하지만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유네스코가 자금을 지원 , 10 년간의 복구공사를 하여 1983 년부터는 한결 다듬어진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 아득한 옛날 이처럼 장려한 건축물을 만든 것도 신비스럽지만 발굴되기 전까지 어떻게 천년 이상의 세월을 남국의 흙더미 속에서 파묻혀 있었을까도 큰 의문점이다 .

종 모양의 스투파. 그안에 불상이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구조를 살펴보면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3m 인 정사각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 해발 280m 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면적은 약 5129 ㎡ 이다 . 단단한 안산암 ( 安山岩 ) 을 다듬어 9 층까지 쌓았으며 꼭대기에는 커다란 종모양의 불탑인 스투파가 세워져 있다 . 기단에서 6 층까지는 정사각형 구조이며 그 위의 3 층은 원형으로 만들어져있다 .
보로부두르 사원의 제 1 층에서 6 층까지 복도의 벽면에는 정교한 릴리프 ( 부조 ) 가 많이 나타난다 . 특히 3 층에서 6 층까지에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태몽하는 모습과 석가모니가 성장하는 다양한 모습 등 2000 점에 달하는 부조가 벽면에 새겨져 있다 . 석가모니와 왕족 , 보살과 서민 등 다루어진 사람 수만 모두 1 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 중간 중간에는 숲 , 동물들도 조각되어 있어 한층 조화로운 모습을 나타낸다 .

글 사진: 강정호 기자/미디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