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박예슬 기자) 남양주시와 재단법인 고려문화재연구원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조선 제 21 대 임금인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의 소생인 화협옹주의 이장되기 전 무덤이 남양주시 삼패동에서 확인됐다 . 화협옹주의 현재 묘는 남양주 평구마을로 이장된 상태로 남편인 신광수와의 합장묘이다 .
화협옹주 ( 和協翁主 , 1733 ∼ 1752 년 ) 는 사도세자의 친누나이며 , 조선 22 대 임금 정조의 친고모로 11 세에 옹주로 봉작 ( 封爵 ) 되었으며 영의정 신만의 아들 영성위 신광수 ( 永城尉 申光綏 ) 에게 하가 ( 下嫁 ) 하였다 . 옹주는 어머니 영빈 이씨를 닮아 미색이 뛰어났다고 하며 후사 없이 20 세에 홍역으로 사망하였다 .
옹주의 묘지로 확인된 남양주시 삼패동에서는 지난해 8 월 목제 마 ( 馬 ) 와 석함 1 개가 발견된 이후 같은 해 11 월에 1 차 긴급 조사 이뤄지면서 석함 1 개와 백자명기 등이 추가로 수습되었다 . 올해 12 월에는 남양주시에서 문화재청의 긴급 발굴 조사비를 지원받아 2 차 조사가 진행되었다 .
2차 조사에서 화협옹주의 장지라는 것을 증명하는 묘지 ( 墓誌 ) 와 죽은 이의 인적사항이나 무덤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 또는 도판지석 ( 誌石 ) 을 뜻하는 지석 , 청화백자합 10 점 , 분채 ( 粉彩 ) 1 점 , 목제합 3 점 , 청동거울과 거울집 , 목제 빗과 직물류가 수습되었다 .
묘지는 회곽묘의 오른편에 ‘ 유명조선화협옹주인좌 ( 有名朝鮮和協翁主寅坐 )’ 라고 쓰여 있는데 회를 정사각형으로 만들고 글자 안에 먹을 채워 넣었다 .
1 장의 석판으로 이루어진 지석의 앞면과 뒷면 , 옆면에는 총 394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옆면에 ‘ 어제화협옹주묘지 ( 御製和協翁主墓誌 )’ 라는 글이 있어 아버지인 영조가 직접 지은 글임을 밝히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애틋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
명기는 죽은 이의 내세 생활을 위해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기물로써 화협옹주의 묘에서는 화장품류로 추정되는 내용물로 채워진 청화백자합과 분채 등이 발굴되었다 . 유기물 자료가 드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실물자료가 거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이번에 발굴된 자료들은 내용물 감정과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조선 시대 왕실 여인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특히 화장도구로 추정되는 기물도 남아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
작년에 긴급조사로 수습된 석함 2 개와 순백자명기 , 칠기명기와 이번 2 차 조사 성과물인 묘지와 지석 , 석함 1 개 , 회곽묘 등을 통해 사대부가와 혼인한 왕녀의 상장례를 알 수 있고 영조가 직접 쓴 묘지와 화장품 안료 , 용기 등을 수습할 수 있어 학술자료로서도 매우 큰 성과로 평가된다 .
한편 문화재청과 남양주시는 앞으로도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화협옹주묘를 더 세밀히 조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