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여행, 아니 그냥 ‘국수 따라 삼천리’라고 하자.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음식이 있다면 아마도 국수음식일 것이다. 중국의 수많은 국수요리와 이태리의 스파게티, 베트남의 쌀국수, 일본의 우동과 라멘 등 국수요리가 없는 나라가 없을 만큼 세계인들은 국수음식에 매료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얼마나 많은 전통국수요리가 있는 걸까? 대표적으로 강원 정선의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 포항의 모리국수, 제주도의 고기국수, 금강 옥천의 생선국수 등 지역마다 지리적 환경과 식재료에 맞는 국수요리가 있다.
퓨전이 아닌 우리나라 지역 토속음식으로 발달한 국수요리를 찾아, 여행의 첫행보를 강원도의 깊은 골짜기, 산중 척박했던 삶과 그 삶을 지탱시켜 준 옥수수와 메밀 그리고 감자의 대변신을 기대하며 떠나본다.
# 첫째날, 정선 아우라지를 찾아가다
여름휴가의 끝자락,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 또는 그들만의 피서지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은 돌아오고 있다. 사람들의 움집 속에 갇혀 떠밀리듯 묻혀가는 여행은 피하고 싶었다. 대신 쌀이 귀하던 시절, 배고픔에 먹던 국수음식이 요즘에선 별미가 되었고,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좋을 여름휴가 여행을 별미를 찾아 여름 끝자락에 시작한다.
먼저, 정선을 가기 전 정동진에 들러 바다구경을 해 보자. 고즈넉한 해안가 한자리에 앉아 이번 여행의 설렘과 기대를 맘껏 즐기며,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늦은 피서객들의 웃음소리에 흥을 돋궈본다.
도심의 일탈을 꿈꾸며 떠난 여행, 이제 본격적인 누들여행의 첫 출발지 정선을 향한다. 7번국도를 타고 동해시까지 내려와 42번 국도로 갈아탄 다음 백봉령을 넘는다.
백봉령은 동해, 삼척을 임계와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능선 고갯마루이다. 남쪽으로 치닫는 산세는 천하의 비경 무릉계곡과 금강산 아래 제일이라는 두타산을 일으켰다. 백봉령 고갯마루를 넘는 골골이 산세의 절경을 감탄하기 전, 이 깊은 산중에 그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에 그 삶이 얼마나 척박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정선아리랑도 일백여리 백봉령 구비마다 서린 가난한 민초들의 애환을 노래한다. 비옥한 평지가 아닌 산기슭의 화전 밭과 산비탈에 매달린 약초를 캐며 살아야 했을 화전민들의 고단했던 삶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잠시 도시인의 탈을 벗어버리고 사색에 빠져 마음의 회향을 느껴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묘미인 듯하다.
그렇게 정선 임계면에서 조금 더 가다보니 아우라지가 나온다. 정선 아우라지는 누추산, 상원산, 옥갑산, 고양산 등에 둘러싸여 경치가 아름답고 얼음알처럼 맑은 물과 때묻지 않은 자연의 푸근함이 여전히 나를 맞아 품어 주는 곳이다. 발왕산에서 시작된 송천과 중봉산에서 흘러내린 골지천이 합류하여 남한강 일천여 길을 흘러내린다.
구절리 송천과 임계면의 골지천이 어우러지는 곳이라 하여 ‘어우러지다’의 의미 즉, 아우라지라는 지명이 생겼단다. 강변의 조약돌과 개울 섶다리, 뗏목타고 한양간 님을 기다리는 처녀상 등 여량 8경을 사진 속에 담아본다.
또 하나의 명소가 생겼다. 아우라지에서 구절리까지 가면 1박2일에서 소개되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는 레일바이크이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나 연인들의 여행코스로는 새로운 재미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국수 따라 삼천리를 떠나온 이번 여행에선 올챙이국수를 찾아 바로 정선읍으로 발길을 옮긴다.
# 둘째날, 늙은 노모의 올챙이국수 한그릇
정선의 올챙이국수를 찾아, 지나는 길목마다 놓여진 간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내가 찾는 강원도 전통의 음식점을 찾기란 힘들었다. 피서객들과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모든 음식점은 도시의 음식점과 다를 게 없었고, 올챙이국수의 이름이 적혀 있어도 강원도의 정취가 빠져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듯했다.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찾아들 무렵, 곧 무너질 듯 허름한 너와지붕의 흙벽 집 입구에 할머니 한분과 나이든 아들이 나란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합판에 ‘국수 팜니다’라고 적어 세워두곤 하루에 한두명의 손님을 문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에서 내려 올챙이국수를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가 하나도 없으신 할머니께선 “돼요, 잡숫고 가요”라며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올챙이국수를 만드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요즘은 먹을 게 흔하니까 그렇지, 내 시집와서 이맘때가 되면 쌀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어서 수타 해 먹었어. 찰옥수수는 팔아야하고 찰기 없는 메옥수수를 밭에서 따다가 맷돌에 갈아 매일 끼니로 배를 채웠어.”
가난한 살림 탓인지 아니면 옛날 방식을 고수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도 맷돌에 옥수수 알을 갈아 올챙이국수를 뽑고 계셨다. 평지의 논농사가 없고 산간의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나갔을 이곳 사람들에게 올챙이국수는 우리네의 별미가 아닌 삶을 지탱시켜준 고난의 흔적이었다.
그 만드는 모습의 과정은 우선 옥수수 알을 맷돌에 물과 함께 갈아 전분을 가라앉히고 윗물의 맑은 물은 따라낸 다음, 가마솥에 옥수수 전분을 끓인다.
투명하게 익어가는 옥수수 죽의 빛깔은 TV에서처럼 노르스름하거나 흰색이 아니라 푸른 기가 돌았다.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뜸을 들인 다음, 차가운 지하수를 가득 담아 놓은 큰 그릇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채반을 올려놓고, 그 안에 끓인 옥수수 죽을 부어 국수 면을 뽑아냈다. 가늘고 긴 보통의 국수면발과는 차이가 많다.
무디고 제멋대로인 짧은 면발이 꼭 올챙이를 닮았다고 하여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김 가루와 간장을 고명으로 얹고 수저로 떠먹는 동안 할머니의 고단했던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올챙이국수에 서린 서민들의 한과 서글펐던 산촌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
배고픔에 설익은 옥수수를 따서 굶주림을 달래고, 끈기나 찰기도 없는 국수 한그릇의 온기가 가시기도 전, 또다시 배고픔에 허리끈을 졸라매야 했던 설움의 국수가 올챙이국수였던 것이다.
# 셋째날, 동강 칠족령에서 만난 콧등치기국수
여행을 시작하고 드디어 정선의 백미 동강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녘, 강원도의 능선을 타고 흐르는 바람에 동강의 물안개가 부스러지고 있다. 백운산 뼝대능선 자락을 따라 휘어진 동강의 물길을 쫓아 제장마을로 들어선다.
강원도 여느 마을과 같이 화전에 고추며 도라지, 옥수수가 심어져 있다. 그래도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라 너와집의 모습은 사라지고 조립식 현대가옥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제장마을에서 20여분, 마을 위로 올라가는 등산객들을 따라 철족령 전망대에 올랐다. 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동강의 모습은 장엄했다. 아래 강변에서 느꼈던 잔잔한 흥얼거림의 노랫소리가 웅장한 교향곡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백운산에서 뻗어나온 뼝대능선의 모습은 기암절벽 천길 아래로 동강을 휘감고 있다. 이 깊은 산중에, 논이라곤 볼 수 없는 이 산중에서 무얼 먹고 살았을까? 쌀이 아니면 이 대지는 사람들에게 무얼 주었던 것일까….. 아름다운 동강의 절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에 ‘메밀국수 전문’이라고 적힌 한 식당을 들렀다. 메뉴판에 적힌 거라곤 콧등치기국수 한가지였다.
설렘과 흥분으로 콧등치기국수 한그릇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주인장에게 이것저것 콧등치기국수에 관해 물어본다. 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간지방에 메밀은 유일한 식량이었다고 한다. 일교차가 크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었던 메밀은 이 지역사람들의 사계절 식량이었고, 메밀로 만든 음식들이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콧등치기국수도 그런 음식 중의 하나다. 우리가 먹던 메밀국수나 메밀냉면과 달리 순메밀만을 이용하여 국수 면을 만들기 때문에 찰기가 없고, 뻣뻣하며 거칠다.
그래서 뻣뻣한 국수 면을 먹을 때마다 콧등을 친다고 해서 콧등치기 국수라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한 멸치육수에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메밀향이 입안가득 퍼지는 맛은 외지 사람들에게 별미로 느껴진다.
철조령 전망대를 오르며 허기졌던 배고픔이 메밀향 가득한 콧등치기 국수 한그릇에 사라졌다. 콧등치기국수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주인장은 감자옹심이를 조금 나줘 주었다. 투명한 새알 수제비 같은 모양새의 감자옹심이 역시 강원도 토속음식이란다. 자연과 풍경은 사진 속에 담고, 음식의 맛과 주인장의 인심은 가슴에 담아 식당 문을 나섰다.
강원도 산간지역 서민들의 굶주리고 힘겨웠던 삶이 나은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가 지금은 별미가 되었지만 그 옛날 화전민들의 한이 서린 음식이었음에 돌아오는 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만항재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강원도 정선아리랑의 애환도 다시금 느껴본다.
글 구윤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