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고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진 문명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나라다 . 힌두교 , 불교 , 자이나교 , 시크교 , 이슬람교가 각각 독자적으로 문화의 꽃을 피우며 동양 정신문화의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 축제 역시 열광적이고 화려해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을 가슴 설레게 한다 . 12 년마다 열리는 쿰브멜라 축제는 40 여 일간 열리는데 축제 참가자만 7 천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축제다 .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 축제로 차분한 명상과 절대자를 향한 열정이 한데 어우러진 행사다 .
인도 힌두교 최대 성지인 바라나시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갠지스 강이 흐른다 . 바라나시를 인도에선 카시 (Kasi)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뜻은 “ 영적인 빛이 충만한 도시 ” 다 . 인도의 힌두교인들이 그들의 생애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바라나시를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곳에 갠지스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
엄격한 카스트 제도 아래 살고 있는 힌두교인들은 아무리 지은 죄가 많아도 갠지스강에서 깨끗이 몸을 씻으면 저승에서 지은 죄가 감해진다고 믿는다 . 또한 죽은 후에 더 좋은 계급에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갠지스강을 찾아 열심히 기도드리고 몸을 씻는 것이다 .
붉은 해가 떠오르고 밝은 햇살이 비치기 시작할 때가 가장 큰 축복이 내린다고 하여 갠지스 강변에는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
원래 인도는 무더운 곳이지만 이른 새벽 갠지스강은 춥기 때문에 긴 팔옷을 준비해야 할 정도이다 . 이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인들은 남녀를 불구하고 거의 벗은 몸으로 물속이나 강변에서 목욕을 하거나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 남자들은 도티라고 하는 간단한 천으로 아랫도리만 가린 채이고 , 여자들은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은 모습이다 .
갠지스 강변에는 석조 신전과 사원 , 화장터 , 목욕을 하는 곳 등이 있다 . 어딘지 우중충한 건물들도 많이 보인다 . 대개 이런 건물에는 여관 . 상점 . 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 주변 양노원에는 병자와 노약자들이 많이 있다 .
이들은 이른 아침이면 으레 강가에 나와 죽음을 기다린다 . 그들에겐 이곳에서 죽음이 큰 영광인 것이다 . 또한 이곳에서 화장되어 자신의 몸을 태운 재가 갠지스강을 흐르는 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긴다 .
갠지스강의 아침 풍경을 보는 외국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 강변 한쪽에서는 죽은 사람을 태우고 , 그 재나 타다만 인간의 시신이 갠지스강을 둥둥 떠간다 . 그런데 멀지 않은 강변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 목욕을 하거나 물속에서 기도를 드린다 . 양극화된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이곳이 천당인지 , 지옥인지 (?) 정신이 가물가물해진다 .
세계 최대의 종교축제인 쿰브멜라
쿰브멜라 (Kumbh Mela) 축제란 매 3 년 마다 열리며 특히 12 년 단위로 크게 열리는 힌두교인들의 축제다 . 쿰부는 ‘ 주전자 ’, 멜라는 ‘ 축제 ’ 란 뜻이다 . 힌두교도들은 축제 기간 동안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어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고 , 내세에는 좀 더 나은 계층에서 태어날 것을 굳게 믿고 있다 .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갠지스강과 야무나강 그리고 전설 속 ‘ 지혜의 강 ’ 사라스와티 등 3 개의 강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 이곳으로 가려면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기차로 12 시간 떨어진 작은 도시인 알라하바드로 가야한다 . 다음 걷거나 자동차 편으로 갠지스강으로 향한다 .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이므로 우리나라 여의도 (8.4 ㎢ ) 의 10 배 규모인 강변 모래사장 위엔 수천 개의 텐트들이 들어선다 .
축제 날 갠지스강에서 행사는 단순하다 . 수심 1-2m 정도의 강물에 몸을 담그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차례대로 잠시 몸을 담그고 나온다 . 물에 들어갈 때에도 축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2 루피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종이로 만든 겐더라고 부르는 꽃을 사서 물에 띄운다 . 6 주간 벌어지는 축제기간 중 많은 사람들이 성 ( 聖 ) 스런 목욕을 하기 위해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이른 새벽부터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차가운 강물에서 자신들의 몸을 담구며 죄를 씻어낸다 .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에서는 물론 해외의 힌두교인들도 대거 몰려든다 . 잘 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 구분 없이 참가하며 직업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한다 . 이곳에 못오는 사람을 위해 강물을 병에 담는 일도 흔하다 .
불교 최고 성지인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대탑
인도 북동부에는 부다가야라는 아담한 도시가 있다 .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으로 얼마 전 이곳을 여행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깊은 감동을 느꼈다 .
델리와 갠지스강을 거쳐 보드가야로 온 필자는 아침 안개에 신비스런 자태를 드러내는 마하보디 사원의 대탑을 보고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대탑의 높이는 55m 로 워낙 높아서 평원 지대인 보드가야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은 5 세기 경 아쇼카 왕에 의해 세워졌다 . 후기 굽타 시대의 건물로 전체가 벽돌로 만들어진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초기 불교사원 중 하나이다 .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 불교 성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 불교도에게는 대탑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뒤에 있는 보리수 아래일 것이다 .
수행자 싯다르타가 성도하여 부처가 된 것이 바로 이 보리수 아래 서였기 때문이다 . 전 세계의 많은 불교도들이 찾아오는 이곳에 서면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 든다 . 세상에 불교를 창시한 위대한 사람의 자취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며있기 때문일까 ? 그 옛날 싯다르타에게 그늘을 제공해주었던 보리수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다 .
성도한 곳에는 장방형 대리석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금강보좌가 놓여 있고 , 마하보디 대탑 내부에는 석가모니의 성도상이 모셔져 있다 . 약 2500 년 전에 샤카 족의 태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인간의 번뇌를 알게 된 후 득도의 길을 찾아 출가하여 엄격한 고행과 단식을 계속했다 .
오랫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던 싯다르타는 문득 자신의 육체를 괴롭힘으로써가 아니라 도리어 체력을 선용함으로써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 그는 그날부터 단식을 중단하고 음식을 먹기로 작정한다 . 이때 그전부터 가까이서 함께 고행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들은 크게 실망하고 그의 곁을 떠나면서 불평했다 . 일찍이 그 누구도 참고 견디기 어려운 고행을 하고서도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는데 ,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라고 …… .
고행을 그만둔 싯다르타는 마을 처녀인 수자타가 공양한 우유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다 . 이때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 금세공사 춘다가 올린 음식과 함께 부처님 생애 중의 2 대 공양으로 불린다 . 오랜만에 음식을 들고 나서 싯다르타는 나이란자나 강에서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하게 씻는다 .
강가 언덕 가까이에 한 그루의 무성한 보리수가 있는 것을 보고 , 보리수를 향해 공손히 합장을 한 다음 동쪽을 향해 나무 아래에 풀을 깔고 앉는다 . 그리고 이렇게 맹세한다 . “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빠져도 좋다 .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상관없다 .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바른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긴다 . 시간을 잊은 명상 속에서 이윽고 길고 어두운 밤이 걷히는 여명에 밝디 . 밝은 깨달음의 빛이 석가의 마음속에 찾아들었다 .
비로소 싯다르타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 및 고통과 즐거움의 모든 의문으로부터 벗어나 부다 ( 깨달은 사람 , 생각하는 사람 ) 가 되었다 . 훗날 이 깨달음의 내용은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으로 정리되어 불교의 전파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의 빛이 되어주고 있다 .
글: 권호준 기자 사진:이정찬 기자 Copyright strictly appl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