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라는 점에서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아토스처럼 농밀한 확신에 가득 찬 땅은 아마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 그들에게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신에 가득 찬 리얼 월드인 것이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 아토스의 이질적인 문화와 경관을 ‘ 확신에 가득 찬 리얼 월드 ’ 라는 반어법으로 표현했다 . 반어법이 겉으로 표현한 내용과 진의를 서로 반대로 말함으로써 독자에게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법이라는 점에서 하루키의 문장은 아토스를 완벽하게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 아토스는 리얼 월드다 .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를 향해 떠나는 순례의 여로는 우라노폴리스로부터 시작된다 . 우라노폴리스는 아토스 반도의 뿌리 부분에 붙어 있는 바닷가의 작은 리조트 타운이다 . 이곳은 전 세계 해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영복 차림의 여성과 최신 팝송 , 작은 호텔과 주점이 있는 현실의 세계다 .
이곳에서 아토스의 입구인 다프니까지는 배를 타고 가면 약 두 시간이 걸린다 . 그리고 그 두 시간의 항해에 의해 여행자가 서 있는 세계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갈라져버리게 된다 .
이제부터는 여자도 없고 , 팝송도 없으며 주점도 없다 . 아토스는 다른 세계를 보는 듯 한 착시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 두 시간이라는 짧은 항해 시간동안 투명하고 , 강렬하게 푸른색을 띠는 지중해를 건너면서 여행자는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
이제 경계를 넘어서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아토스에 발을 딛게 된다 .
금녀 ( 禁女 ) 의 땅 , 성지 아토스
아토스지역은 지금까지 우리가 세계라고 규정한 개념과는 크게 동떨어진 장소다 .
이 지역은 그리스의 영토이면서도 그리스정교의 성지로서 완전한 자치를 그리스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 아토스 반도에는 스무 개의 수도원이 존재하고 , 만여 명의 주민들 가운데 약 2000 명 이상의 수도사들이 그곳에서 엄격한 수행을 닦고 있다 .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수도에 지장을 주는 여자의 입산이 전면적으로 금지된다 . 심지어 동물도 암컷은 이 땅에 들어올 수 없으며 수컷들도 모두 거세된다 .
이러한 이유로 이 땅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외무성으로부터 특별 비자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 당연하게도 우르르 몰려오는 여행객들도 수도사의 명상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이유들로 볼 때 이 땅은 어쩌면 여행자의 긴 여로에서 꽤나 불편한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 자연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그리스 유일의 처녀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교통 인프라나 여행객을 위한 제반시설은 너무도 불편하다 . 어디를 가든 자신의 발로 일일이 산을 넘어가야만 하는 상황은 그 누구에게나 고역이다 .
여행자는 아토스의 입구인 다프니 항구에 도착한 후 아토스지역의 수도라 불리는 카리에로 곧장 이동해야 한다 . 그곳에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체류허가증이 나오기 때문이다 . 체류허가증을 받고 나면 이제부터는 울창한 숲과 초원으로 가득 찬 아토스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만 남았다 .
끊임없이 이어지는 낯선 경험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해서 아토스에 있는 수도원들은 그다지 볼만한 것이 못 된다 . 우리네 절밥보다도 못한 먹을거리나 온종일 기도만 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무료하기 때문이다 . 석벽으로 이뤄진 수도원의 장엄함이나 깎아지른 듯 한 절벽에 위태로이 서있는 몇몇 수도원의 모습은 가끔씩 눈길을 사로잡지만 , 화려하고 자극적인 문화에만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에게는 적응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
그렇지만 이곳으로여 여정을 계획했을 때 하와이나 몰디브와 같은 여행지를 꿈꾸며 일정을 잡진 않으리라 본다 .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아토스로의 여정은 지금까지의 세계와 작별을 고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이다 . 다시 말해 이곳으로의 여행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험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
추천하고 싶은 수도원은 아토스에 있는 스무 개의 수도원 중에 세 번째로 큰 이비론 수도원이다 . 카리에에서도 가깝고 규모도 크기 때문에 많은 순례 객들이 찾는 곳이다 . 이비론 수도원은 바닷가 절벽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요새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 벽은 높고 , 창문은 작고 , 이중으로 된 문은 두껍고 무겁다 .
이탈리아나 독일 교회들의 정교하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익숙해진 눈에는 한없이 단순하고 모양도 단조롭게 보이지만 오히려 때 묻지 않은 수도원에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
캅소카리비아는 특이한 촌락이다 . 급한 경사면에 만들어진 이 마을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독특한 지형을 자랑한다 .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족히 50 여 미터의 고저차가 나는데 한번 내려왔다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꽤나 많은 체중 감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 아토스의 출구라고 할 수 있는 아기아 안나로 가는 배편을 타기 위해서는 조용한 이 마을의 부두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 이곳 마을조차 무채색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이게 바로 아토스의 매력일지 모르겠다 .
여행이란 새로운 관념으로의 이동
채도가 전혀 감돌지 않는 듯한 수도원과 적막한 마을은 아토스를 둘러싸는 푸른 녹음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지중해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 마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작은 틈새와 같은 이러한 풍경은 그저 아름답다는 단어의 묘사로는 부족하다 . 눈에 익숙치 않은 그런 미 ( 美 ) 는 외려 아름다움을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온다 .
잡지 화보나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눈부시고 아름다운 해변이나 여행지와 달리 조용하고 고요한 이 고대신의 땅은 평범한 가치관의 방문객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 그것은 정신적인 변화든 아니면 실제 현실의 뒤바뀜이든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은 매우 생경한 체험이다 .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그리스 . 올림픽과 올리브가 유명한 이 나라는 태양빛을 전혀 다른 형태로 반사함으로써 우리의 두 눈에 다른 식의 삶의 형태도 있음을 보여준다 . 우리가 실재한다고 여기는 또는 부재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사실 오감이 전달하는 주관적인 정보일 뿐이다 . 아토스의 거리에서 우리는 두 눈을 감고 , 두 귀를 닫고 진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 .
글:정인태 기자 사진:Visit Greece,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