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건 화백의 글과 그림] 생명의 암반수

생명의 암반수

언제부턴가 마음을 무겁고 착잡하게 짓누르는 슬픈 이야기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 지난날 약년기의 철없던 시절에는 사나이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이야기들을 꽤나 좋아했었더랬는데 … 슬픈 영화 , 슬픈 연속극 , 슬픈 소설 그리고 슬픈 사회면기사들 등등 … 그러한 이야기에는 항상 눈언저리에 이슬 같은 눈물을 맺히게 하며 가슴속을 맑게 정화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어느 정도 알아차리게 된 후로부터는 , 인간사로부터 비롯된 모든 눈물이란 자신들에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한낱 추잡스런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체 세상사 인간들이 지어내는 슬픈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

그리곤 청정도에 따라 하천에는 급수가 있듯이 눈물에도 급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사랑과 미움을 떠난 눈물 , 경제적 손익관계라던가 이해관계를 떠난 눈물 , 그러니까 자연과의 교감으로부터 얻어지는 눈물이야말로 1 급수 하천보다도 청정한 생애 최고의 맑은 눈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그 눈물은 비록 옷깃을 적시지는 않지만 영혼을 촉촉이 적셔 육신을 대지에 평화롭게 누이는 생명의 암반수와도 같은 에스프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

밤길을 지나다 만나는 산골짝 독립가옥의 불빛이라던가 ,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는 고기떼들 , 소나무 끝에 이는 눈보라 , 하늘을 나는 새 , 방태산에 빗긴 저녁노을 , 달려와 품에 안기는 닭 , 편지를 물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개 , 하늘에 떠 있는 구름 , 밤새 강변에서 천식을 앓고 서 있는 억새 풀꽃이라던가 때로는 단목령으로부터 새벽이 발돋움하여 내려와 나의 창가를 엿볼 때 , 어느 날 밤 문득 바람이 멎자 하늘의 별들이 극명하게 반짝일 때 곧잘 나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곤 하는 것이다 .

자유롭고 싶다 . 부디 자연의 소리에만 간절히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싶다 . 자연과의 언어소통이 이루어질 때라야 비로소 주어진 원죄의 하중으로부터 벗어나 한 마리 자유로운 새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 수 있을 것 같다 .

글 그림: 최용건 화백
http://blog.naver.com/hanlbat

그림 – 부산 태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