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o’Story] (15) 나는 항공기 조종사다
항공기 조종사란 승객이나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비행기, 전투기, 헬리콥터 등을 직접 운전하며 다룰 줄 아는 전문인을 뜻한다. 1887년 최초로 Aviator(비행사, 조종사)란 단어가 등장한다. 라틴어로 새를 뜻하는 Avis에서 유래했다.
비행 시뮬레이터 제작사인 캐나다 CAE Inc.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엔 약 290,000여 명의 상업용 비행기 조종사가 근무하지만, 항공산업의 발달과 함께 앞으로 약 250,000여 명이 더 요구될 거란다. 조종사의 평균 연령은 40대 중반이다. 보잉(Boeing) 항공기 제조사는 2036년까지 약 41,000여대의 새로 취항하는 항공기를 조종할 조종사가 북미(18%)와 유럽(17%) 그리고 아시아(40%)에 필요하다고 예측하고 있다.
상업용 비행기 조종사(CPL)가 되려면, 우선 최소한 40시간을 강사와 비행해 초급자격을 딴 후, 경비행기로 20여 비행시간을 수료하고, 계기비행 증명, 다발엔진 비행증명, 조종 교육증명 등 과정이 단계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여러 단계를 충분한 이수하고 마침내 항공기 조종사 자격(ATPL) 등 자격증을 받아야 조종사의 꿈인 상업용 항공기 기장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내 생활기록부의 장래 희망란엔 조종사란 단어가 차지했다. 단 한 번도 조종사 외의 꿈을 꾼 적이 없었다. 고교를 졸업 후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말레이시아 공군 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반대했다. 말레이시아 인종 폭동 때 정글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위험한 공군 조종사보다는 좀 더 안전하고 편한 직업을 갖길 원했던 것이다.
다른 동양인처럼 부모님께 순종하는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난 부모님의 뜻에 따랐다.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해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시아 금융 위기란 먹구름이 뒤덮었다. 매일 큰 기업들의 파산과 실직 뉴스가 들려오는데 새내기 건축기사로 취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쯤 한 항공사의 조종사 채용공고가 눈에 박힌다. 그리고 난 곧 말레이시아 항공사 조종사 후보생 시험에 합격했다. 내 꿈의 첫걸음이 다가왔다.
2000년부터 2년간 난 말레이시아 항공 학교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항공기 조종사는 비행 중에 전기, 기압, 공기압력 등등 수많은 조그만 원인으로 항상 작동 불능 상태와 직면할 수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작동 불능 상태가 된다면 수백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의 생명은 끝이다. 그래서 계속되는 실제 비행과 시뮬레이터를 통한 비행 가상훈련은 강도가 셌고, 강사들도 엄격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날이었다. 비행 가상훈련과정을 마치던 마지막 날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한 비행기가 비행하다 세계무역센터 트윈타워와 충돌했다. 비행 교관은 그 소식을 전하며 조종사가 실수하면 대형사고를 유발한다고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2001년 9월 11일 시작된 미국을 향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무자비한 테러의 시작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을 이수한 덕에 난 약 15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탈 수 있는 보잉 737기의 부기장석에 앉을 수 있었다. 승객과 화물 목록을 보던 중 시신 한 구가 특수화물 목록에 포함된 걸 알았다. 그때 긴장한 첫 비행이라 착륙할 때 기체가 유난히 덜컹거려 그분(?)에게 지금도 미안함을 느낀다. 보잉 737기를 약 2년 넘게 타고, 2004년 난 약 270여 명을 태우고 11,000km 넘게 비행할 수 있는 에어버스 330 조종사로 진급했다.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중국 본토에서 남지나 해 상공을 비행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할 때다. 비행 중 난 기장에게 조종석 창문에 서리가 꼈다고 보고했다. 이 현상은 비행 동체 전체에 살얼음이 꼈다는 의미다. 약 5분 후 상상도 못 한 일이 터졌다. 갑자기 자동조종장치가 꺼지며 계기판의 숫자들이 모두 사라졌다. 감지기마저 차단됐다. 우리는 당황해 계기판을 수동으로 조작했다. 몇 년 같았던 몇 분이 지나고 갑자기 거짓말처럼 먹통이었던 자동조종장치가 켜지며 계기판의 숫자들이 나타났다. 감지기도 다시 작동했다. 그 순간들은 생과 사의 깊은 낭떠러지 사이에서 깜깜한 밤에 눈감고 외줄 타기를 한 느낌이었다.
그때 우리는 행운이었다. 불행히도, 2009년 같은 원인으로 브라질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447기가 대서양 남쪽 상공에서 추락했다. 2년 후 대서양 바다에서 사고기 잔해 등을 수거해 블랙박스를 조사해 보니 기장과 부조종사 등은 비행 장치가 얼어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나타나자 자동조종장치를 끈다. 그러나, 비행 장치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어도 조종사들은 비정상으로 착각하고 계기를 조작해 결국 추락한다. 당시 승객과 승무원 등 22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5년 난 아부다비에 본부를 둔 아랍 에미리트 연합(UAE) 국영 에티하드(Etihad)항공사로 옮긴다. 그리고, 현재까지 장거리용 에어버스 320, 330, 340, 보잉 777과 787 등을 조종하고 있다. 훈련 교관과 조종사 면접관 등을 거쳐 2009년 드디어 조종사의 꿈인 기장으로 승진도 했다. 비행이 8시간 이상이면 3~4명의 조종사가 탑승한다. 그리고, 조종석 뒤 간이침실에서 교대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8시간 정도면 2명이 조종간을 잡는다.
조종사의 비행 일과를 보자. 비행 전 이 메일로 비행 계획서를 받아 검토한다. 기상 정보와 비행 여정, 승무원명단부터 승무원들이 묵을 기착지 호텔 정보 등까지 포함된 서류들이다. 공항에 도착해 먼저 부기장 등과 비행 일정과 연료 등을 상의한다. 그리고 객실 승무원 등 다 같이 비행기 상태와 승객 정보 등 비행 브리핑을 한다. 이 단계가 끝나야 비행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비행기가 한번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바쁜 손길이 필요하다. 우선 지상 요원은 화물 상황 및 경유 항공편 승객 통관 여부 등 특이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정비사는 기장과 비행 기체에 관한 상태와 비행에 필요한 연료 정보를 확인한다. 객실 승무원들은 안전한 비행이 되도록 기내 청결 상태, 비상용 안전장치와 기내 물품 등을 확인한다. 객실 사무장은 기장에게 기내 청소 상태와 기내식 확보 등을 보고한 후 승객 탑승 허가를 받는다. 그리고, 기장의 승인과 함께 승객의 탑승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비행을 마친 승무원들은 기착지에서 다시 비행에 들어가기 전 최소한 12시간의 휴식이 보장된다. 그래서 대부분 비행 기착지에서 휴식, 관광, 쇼핑 등 자유 시간을 누린다. 파리, 런던, 뉴욕, 뉴델리, 싱가포르, 홍콩, 시드니, 마닐라, 요하네스버그, 도쿄, 서울 등 많은 기착지에서 얼굴이라도 볼 지인이나 친구가 있다면 큰 행운이다. 대부분 조종, 승객 응대와 시차 등 피곤함을 혼자 또는 승무원들끼리 그렇게 보낸다. 다음 비행이 12시간 이상 후가 돼야 음주도 가능하다.
결혼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에 딸이 하나다. 우리 애들은 고향인 말레이시아보다 여기 아부다비에서 자란 세월이 더 길다. 애들은 중동의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나는 항상 자녀들에게 동양인의 전통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다행히도 우리 애들은 두 문화 속에서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 난 비행기 기장이라 집을 떠날 때가 많다. 그러나, 내 아내가 아빠와 엄마의 두 몫을 혼자서도 잘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기부는 항공기 조종과 더불어 내 두 번째 꿈이다. 오래 전부터 캄보디아의 학생들을 돕고 있다. 처음엔 우연히 캄보디아의 한 지방 어린 학생들에게 컴퓨터 몇 대를 후원해 주자고 시작했다. 때마다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선물할 새 컴퓨터 몇 대 살 비용을 부탁하자 기꺼이 들어준 지인과 친구들 마음 씀씀이에 감사한다. 그 덕에 지금까지 기부를 계속할 수 있다. 지금은 용돈을 아낀 우리 애들까지 내 후원자가 되었다.
5년 연속 월드 드래블 어워즈(World Travel Awards)의 ‘세계 선두 항공사(World’s Leading Airline)’에 선정된 에티하드 항공사는 아랍 에미리트 연합의 두 번째 항공사로, 2003년 대통령 셰이크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나흐얀(HM Khalifa bin Zayed Al Nahyan)의 칙령으로 수도 아부다비에서 설립됐다. 그해 11월부터 상업항공 비행을 시작했고,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온 약 2,000명의 조종사와 8,000명의 객실승무원이 승객과 화물을 싣고 지구상 80여 개 도시를 쉬지 않고 날아다니고 있다. 에티하드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최상의 급여와 근무조건을 제공하는 항공사 중 하나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목적지에만 집착하는 거 같아.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는 우리 인생 속에서 예정된 곳이자 우리의 운명의 종착점인데. 비행은 그 목적지를 향한 인생과 같지.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가지만 때로는 늦게 도착하거나, 중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기류의 위험을 겪거나, 좌석에서 불편한 일을 겪는 등 기타 예상치 않은 여러 경험을 겪지. 우리가 인생이란 여행을 소중히 생각해 순간을 즐기며 목적지를 도착한다면 진짜 행복을 느낄 것 같아.” – 파드힐(Mohamed Fadhil Abdullah), 에티하드 항공사 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