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를 이용한 소통의 거장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 ‘forever’에서 최초 한글 작품 선보여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BARBARA KRUGER: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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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이스=허중현 기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지난 40여 년 동안 차용한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병치한 고유한 시각 언어로 세상과 소통해온 현대 미술 거장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BARBARA KRUGER: FOREVER’를 선보인다.

미국 출신의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한 광고 형식의 작업들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로 그의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일명 ‘크루거 스타일’은 1981년에 발표한 작품 <무제(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부터 확고해졌다. 이후 1996년도 설치작품 <무제(데이즈드 앤 컨퓨즈드를 위한 프로젝트) Untitled(Project for Dazed and Confused)>는 흑백의 모델 초상 위에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씨가 들어간 글 상자가 배치, 각각의 글 상자에는 인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비꼬듯 이야기하는 대사들을 집어넣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간결하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상징적 서체와 간결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동시대 사회의 메커니즘과 대중매체 속 권력, 욕망, 소비주의, 젠더, 계급 문제를 비판적으로 담아내며, 보편적 관념이나 신념, 고정관념 등 우리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생각의 틀에 의문을 제기하며 관람자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대형 설치, 영상 등 작가의 다양한 작업 유형을 고루 포함 총 42점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바바라 크루거가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담아낸 첫 한글 설치 작품인 <무제>, ‘충분하면만족하라’(2019)와 ‘제발웃어제발울어’(2019) 두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최초 개인전을 위해 작가가 제작한 신작이다. 미술관 로비 바깥 유리에 ‘Plenty should be enough’가 8개의 거대한 유리벽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 되어 설치되었다. ‘Plenty should be enough’는 크루거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구로, 소비지상주의와 욕망에 대한 비판적 코멘터리이다. 사진: 허중현기자
로비 안쪽에 ‘Plenty should be enough’의 영어 텍스트의 한글 버전인 ‘충분하면만족하라’를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한글 작업으로, 높이가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수직 텍스트의 압도적 조형미가 공간 및 건축의 특징을 더 잘 드러낸다. 사진:허중현기자

또한, 건축과 공간에 대한 바바라 크루거의 오랜 관심을 집약하고 있는 <untitled(forever)>(201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는 작가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재디자인한 작품으로 이 작품은 강렬한 시각 경험을 주는 거대한 텍스트로 방 하나를 도배, 관람객은 작품의 텍스트 속을 거닐며 다양한 질문과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untitled(forever)>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실 내부를 흑백의 텍스트로 가득 채운 이 작품은 2017년에 처음 공개되었던 장소특정적 설치로, ‘영원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당신(YOU)’이 거대한 사이즈로 새겨진 타원형의 볼록 거울 이미지 속에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라는 문장이 들어가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한 바닥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한 문장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가 가득 채워져 있다. 크루거가 문학 작품을 직접 차용한 예외적인 작업이며, 나머지 두 벽면의 텍스트와 함께 사회구조, 권력, 정치, 욕망의 메커니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텍스트의 조형성이 극대화되어 건축적으로 구축된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거대한 텍스트에 둘러싸인 채 문자 속을 거니는 몰입적인 경험을 통해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질문하는 행위자가 된다. 사진:허중현기자

이 외에도 가공되는 진실 또는 상황에 의해 달라지는 진실의 속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는 최근 작품 <무제(진실의 최신 버전)Untitled(The latest version of the truth)>(2018)을 비로하여 작가의 대표작들의 ‘원형’이 되는 초기 페이스트업(paste-up) 작품 , 등 80년대 초기 콜라주 시리즈 16점과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Supreme)’의 붉은 박스 로고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바바라 크루거의 오리지널 작품까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선보인 바바라 크루거의 40여 년간의 주요 작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전시장에 마련된 ‘아카이브룸’에는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에서 잡지, 신문, 거리의 광고판, 포스터, 작가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영상, 잡지와 신문에 기고한 작업 등 우리가 생활 가까이에서 접하는 매체를 활용하여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6월 27일부터 12월 29일까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