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6단계 맥주 테이스팅 by 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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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김원하 기자) 감춰져 있는 희미한 뉘앙스를 끌어내 풍미를 분석하고 ‘제대로 된’ 테이스팅을 통해 맥주라는 존재에 대한 한층 깊은 숙고와 이해를 얻는 일은 맥주 애호가들에게 무척 보람 있는 일일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수제 맥주 초심자들은 가끔 그런 테이스팅이라는 행위에 조금 주눅이 들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생각하는 맥주 테이스팅이란 얼마 만큼 차가운지 알아보는 것 아니면 어차피 소주랑 섞을 건데 무슨 테이스팅이 필요 하냐 하는 수준이라면 오늘 이글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

맥주 테이스팅이 멋진 이유는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그게 어떤 것이든 당신이 느끼고 기억한 아로마와 풍미는 당신만의 것이니까. 누군가는 빵의 풍미를 느꼈는데 당신은 건초 향기를 느꼈다면 그중 하나만 맞고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① 단계:따르기

테이스팅을 하려면 일단 깨끗한 유리잔이 필요하다. 캔 채로 마시면 아로마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맥주 캔 뚜껑이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항상 유리잔에 따르자. 맥주를 따를 때는 잔을 기울여 옆면에 닿게 부으면서 헤드정도를 보고 따르는 속도를 조절한다. 다 따랐을 때 손가락 굵기 두 배 정도의 거품이 생기도록 해보자.

② 단계:보기

헤드의 거품이 어느 정도인지 슬쩍 보자. 두께가 얇고 거품이 적은 편인가? 두텁고 거품이 많은가?맥주의 빛깔은 맥주 스타일과 사용한 몰트 종류에 따라 흰색부터 연한 갈색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바디 또한 스타일에 따라 희뿌연 것부터 맑은 것까지 다양하다.

③ 단계:잔을 흔든 다음, 향을 들이마시고,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셔라.

맥주의 아로마는 대개홉(과일, 허브, 향신료, 송진의향)과 몰트(달콤함, 빵맛, 초콜릿, 로스팅의풍미)에서 나오며 좀 더 섬세한 스타일의 경우 효모(바나나, 클로브, 펑키한흙냄새)의 아로마를 품은 것도 있다.

들이마시기 전에 잔을 몇 번 돌리 듯이 흔들어 주면 맥주안의 탄산화물이 올라오면서 아로마를 잡아두게 된다.

헤드위로 몇 센티미터 올라온 자국이 잔에 남아 있다면 제대로 흔든 것이다. 맥주잔을 코에가까이 대며 몇 번 킁킁향을 들이켜 보라. 단, 한 번에 너무 세게 들이마시지 않도록 주의.

코에 들어오는 아로마에는 맥주를 마셨을 때 느껴질 풍미의 힌트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으니시간을 두고 아로마를 음미하자. 인간의 후각은 기억과 강한 연관을 갖고 있으니 테이스팅중에 과거 경험이 연상 되는 것을 부끄러워말고 끄집어내라. 브라운에 일을 마셨더니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주던 음식 맛이 떠올랐다면 완벽한 예가 되겠다.

④ 단계:살짝 맛보고, 깊이 음미하라

살짝 맛을 볼 때는 처음 느껴진 감각에 집중하라. 달콤한가? 쌉쌀함이 강조되었나? 아니면 신맛이 강한가?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풍미에 집중하면 된다. 약간 익숙해졌으면 조금 더 깊이파고 들어보자. 그 맛이 마음에 들었다면 어떤 점이 좋았는지(별로였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자. 맥주에서 과일 향이 느껴진다면 조금씩 더 나가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과일풍미→감귤류→오렌지→발렌시아오렌지

로스팅풍미→초콜릿→70% 다크쵸컬릿

⑤ 단계:입안에 채우라

맥주가 입으로 들어가 혀를 둘러 싸고 있을 때 느껴지는 질감을 Mouthfeel이라고 표현한다. 질감은 부드러운 임페리얼 스타우트나 뉴잉글랜드 IPA처럼 묵직한 것에서부터 페일에일처럼 중간 정도인 것, 깔끔한 필스너나 세종처럼 가벼운 것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맥주에 ‘물탄 것 같다’라는 표현은 피하는 게 좋다. 거의 모든 맥주가 95% 이상의 물을 함유하고 있으니 바디가 가벼운 맥주들은 물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바디가 가벼운 게 꼭 단점인 것도 아니다.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풀 바디의 필스너가 있다면 상쾌하고 목넘김이 좋은 그 맥주 특유의 미묘한 밸런스를 잃은 것이니까.

⑥ 단계:마무리

맥주가 시원하게 목을 넘어가고 나면 아직 입안에 남아 있는 잔 맛에 집중해 보자. 끈적이는 듯한 달콤함이 남아 있는가? 톡 쏘는 쓴맛이 느껴지는가? 잔향이 꽤 오래입안에 남아 있는가? 아니면 별인상 없이 급히 사라지는가?

맥주한잔을 놓고 천천히 마시면서 냉기가 옅어져 감에 따라 맛이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 지도 살펴보자.어떤 풍미는 낮은 온도에서는 감춰져 있다가 온도가 올라가면서 극적인 임팩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

냄새, 맛, 질감, 마무리 등을 염두에 둔 채로 천천히 테이스팅을 진행하고 결론을 몇 번 재평가 해보라.

서울브루어리 헤드부루어 조쉬 이스턴

◇거품101

맥주잔에 생기는 헤드는 보리몰트에서 유래된 단백질이 이산화탄소거품과 함께 위로 올라오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위로 올라온 단백질은 이산화탄소거품을 둘러싸 막을 형성하고 맥주의 덮개 역할을 한다. 물론 그밖에도 분자수준에서 발생 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핵심은보리에들어 있는 단백질이라는 점 을알아두자. (설탕이나 옥수수 같은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맥주의 헤드가 약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헤드가 왜 중요할까?

혹시 맥주거품만 맛을 본적이 있는지, 그랬다면 그 아래에 출렁이는 맥주보다 그 맛이 훨씬 쓰다는 걸 알 것이다. 단백질이 위로 올라오면 홉에서 나온 쓴 성분과 결합하는데 그것이 거품의 톡 쏘는 쓴맛을 낸다. 홉에는 쓴 성분과 함께 아로마도 포함되어 있어 맥주의 아로마를 한층 증폭 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우리가 맥주를 테이스팅할 때는(다른 무엇을 맛볼 때도 마찬 가지지만) 처음에는 대개 ‘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지하는 맛이 대부분 우리의 후각 기관을 통해서 먼저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적당한 거품이 덮인 맥주에는 아로마가 많이 남아 있고, 아로마가 많은 맥주에서는 다양한 풍미가 느껴지게 된다.

◇거품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는?

물론 맥주 거품의 양을 결정 하는 다른 요소들도 많이 있다.

▴맥주 안에 녹아 있는 천연 오일은 거품 형성에 영향을 준다. 커피나 코코넛 같은 첨가물은 맥주 안에 오일을 많이 남기기 때문에 거품의 양을 감소시킬 수 있다.

▴알코올과 산은 단백질 화합물이 거품을 형성 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요소다. 그래서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나 사워에일 같은 맥주에는 거품이 적은 경우가 많다.

▴립스틱, 입술보호제에 들어 있는 왁스 성분은 맥주거품의 지속력을 감소시킨다.

▴기름진 음식도 립스틱의 왁스 같은 역할을 한다.

▴질소가스를 첨가한 맥주에는 풍부하고 부드러운 헤드가 형성 된다. 질소는 이산화탄소에 비해물에 용해되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따를 때 맥주에서 쉽게 빠져나와 미세한 거품을 많이 형성 한다. 그 결과 우리가 유명한 맥주들에서 보는 ‘거꾸로 폭포’효과처럼 많은 거품이 생긴다.

◇ 집에 가져가는 맥주

담은 맥주에 거품이 있다고 화내지 말자. 위에서 살펴본 대로 헤드는 우리가 맥주를 즐기는 데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신의 용기에 맥주를 가장 잘 담는 방법은 손가락 굵기 두 개정도의 거품이 위에 얹어진 만큼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전에 입안에 담고 아로마를 느껴보는데 시간을 들이는 걸 잊지 말자.

장성민 작가

글 사진: 조쉬 이스턴 (Josh Easton), 정성민 /서울브루어리 헤드부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