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평야 지역 고구려 벽화를 500여 컷의 디카 이미지로 디테일하게 살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2006년 봄, <남북 공동 고구려 벽화고분 보존실태 조사>에 참여 했던, 우리 시대의 미술사가인 이태호 교수가 당시 똑따기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들을 풀었다.
마치 무덤 안으로 들어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널길, 앞방, 곁방, 널방의 순서로, 그리고 눈길이 먼저 닿는 북벽, 동벽, 남벽, 서벽, 천정의 순으로 디테일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어둡고 습한 고분 안에서 저자가 오롯이 체험했던, 인물 군상들을 묘사한 생동하는 붓 선의 끌림, 사신도(현무, 청룡, 주작, 백호)의 웅장함과 섬세한 아름다움, 그리고 붉고 푸른 다채로운 색채의 황홀경을 함께 느껴볼수 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한국 미술이 보여 온, 색과 선 그리고 조형은 고구려 벽화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구려 벽화 유적이 남아 있는 백두산 인근 집안과 평양 지역으로 답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두 곳 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간다고 한들 벽화를 실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2006년 평양 지역 고구려 벽화고분을 답사했던, 미술사가 이태호 교수(명지대학교 초빙교수)가 500여 컷이 넘는 디테일 이미지를 책으로 엮어냈다. 그동안 큰 그림으로만 접해야 했던 고구려 벽화를 좀 더 세세하게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어떻게 평양에 있는 고분벽화를 촬영하게 되었을까? 2006년 봄, 안악3호분에서 강서중묘까지 평양 일대 8개 고분에 대한 <남북 공동 고구려 벽화고분 보조실태 조사>가 이뤄졌다. 이태호 교수는 벽화의 ‘미술사적 조사’를 위해 이 조사단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처음 구입한 똑따기 디지털카메라(라이카-루믹스 소형)를 메고 습도 90%가 넘는 고분 안으로 들어가, 그린 지 1400년에서 1600년이 지난 벽화를 실견했다.
“방문한 고분마다 머무는 시간은 짧았다. 처음 손을 타는 디지털카메라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된다면 어쨌든 찍어댔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이 1500컷이 넘었고, 그중에 500여 컷을 뽑아 책에 담았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로, 당시 전체 조사 사진을 맡았던 김광섭 작가(케이투사진 연구소장)의 대형 카메라와 이 교수의 똑따기 카메라의 코드가 일치했는지, 이 교수가 셔터를 누르면 김 작가의 카메라 조명이 터지는 일이 자꾸 생겨서 곤란했다는 사연을 전한다.
평양에 다녀온 조사단은 2007년에 조사보고서로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이 보고서에 이태호 교수의 디카 이미지들은 거의 실리지 못했단다. 이 디테일 이미지들은 2008년 일본 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 있었던 <고구려의 색, 한국의 색> 전시에 잠시 나왔다가 수업이나 강의에 부분부분 조금씩 보여졌다고 한다. 이태호 교수는 지금은 어렵지만, 남북 간에 평화 분위기가 더 익어가서 고구려인들의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 고구려 고분 벽화의 세계가 더 확실히 열릴 때까지 이 디테일 이미지들은 유효할 것(13-15쪽)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