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관객 사로잡은 우리의 여인들, 그 3년만의 귀환 ‘트로이의 여인들’ 강인함과 용기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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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립창극단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예술감독 유수정이 이끄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트로이의 여인들’이 지난 6일 오후3시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16년 국립극장 초연 이후 싱가포르예술축제·런던국제연극제·홀란드 페스티벌․빈 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의 무대에 오르며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국내 무대는 2017년 11월 공연 이후 3년 만이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기획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작품으로, 국내외 최고 제작진이 만나 성공적인 시너지를 발휘한 협업 사례로 손꼽힌다. 싱가포르 출신 세계적 연출가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으며, 작가 배삼식이 에우리피데스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창극 극본을 탄생시켰다.

판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고 평가받는 음악은 우리 전통음악계를 대표하는 대명창 안숙선이 작창하고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했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된 무대 위 모든 시각 요소들 또한 창극의 바탕이자 핵심인 소리 이외의 군더더기를 과감히 덜어내고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는 데 일조했다.

3천년 전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우리 고유의 판소리를 만나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극’으로서 해외 유수 무대에서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과 환호를 이끌어냈다. 빈 페스티벌 공연 당시 오스트리아의 공영방송 ORF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한국 판소리의 조화가 훌륭했다”라며 “관객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비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라고 호평한 바 있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국내외 최고 제작진이 만나 성공적인 시너지를 발휘한 협업 사례로도 손꼽힌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창극에 도전했던 싱가포르 출신 세계적 연출가 옹켕센은 “판소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지닐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힘을 갖고 있다”라고 밝히며 창극의 순수성과 판소리의 정수를 부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무대 역시 창극의 바탕이자 핵심인 ‘소리’ 이외의 요소를 최대한 걷어내고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는 데 일조했다. 조명 디자이너 스콧 질린스키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이 무대와 영상의 디자인을 맡았고, 동양적 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온 브랜드 무홍(MOOHONG)의 디자이너 김무홍이 의상을 맡아 미니멀리즘 미학에 완성도를 더했다.

전쟁의 비극 속 소외됐던 평범한 여인들을 바라보는 배삼식 작가의 시선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어 동시대 관객들에게 깊은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였다. 헤큐바 역의 김금미, 안드로마케 역의 김지숙, 카산드라 역의 이소연, 헬레네 역의 김준수를 비롯한 주요 배역들이 각자의 에너지로 극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여덟 명의 코러스들은 등퇴장 없이 공연 내내 무대를 지키며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했던 트로이 여인들의 강인함과 용기를 전했다.

또한, 극의 시작과 끝에는 잠들지 못하는 혼령, 고혼(孤魂)이 등장해 전쟁과 인간의 우매함을 꾸짖고 상처받은 여인들의 고통을 위로하였다. 우리 고유의 말과 소리로 들려주는 위로의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관객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며 묵직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